2000년대 중반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가 국내에서 크게 유행했다. 밥이나 빵과 같은 탄수화물 음식을 안 먹는다면 고기나 햄, 버터 등 고지방·고단백질 음식만 먹어도 체중이 빠진다는 얘기였다. 고기를 양껏 먹는데도 살이 빠지니 황제 식사나 다름없다며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것이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의 원조다. 이 다이어트를 창시한 미국 의사 로버트 앳킨스는 2003년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다. 이후에는 변형된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에는 탄수화물을 전체 식단의 5% 이내로 제한하고 나머지 95%를 지방과 단백질로 채운다. 저탄고지 다이어트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당장은 괜찮아도 장기적으로 콩팥을 망치거나 심혈관계 질환을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의학계에서도 안전성과 효능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다이어트를 직접 시도한 의사가 있다. 강상희 고려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44)다. 강 교수는 이 다이어트의 한계와 부작용을 명확히 알고 있었지만 감행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 비만과 고혈압 잡으려 저탄고지 시작
2018년 나이 마흔이 될 무렵 건강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 체중은 점점 불어나다가 그해 4월 82kg을 찍었다. 체질량지수(BMI)가 고도비만에 가까운 수준인 30에 육박했다.
혈압도 치솟았다. 검사 결과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이 각각 160mmHg와 100mmHg로 나타났다. 고혈압 기준은 각각 120mmHg, 80mmHg 이상이다. 이미 고혈압 환자였던 셈이다.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수도 빨라졌다. 보통 성인의 정상 심박수는 60∼100회. 강 교수의 경우 100회에 육박했다. 가까스로 정상 범위를 지켰지만 더 빨라지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마침 수술을 집도할 때 봤던 비만 환자의 배 속 상태가 떠올랐다. 장기에 들러붙어 있는 지방은 염증을 유발한다. 암 수술을 하려면 지방부터 제거해야 한다. 강 교수는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란 점을 새삼 깨달았다.
이런 여러 이유가 겹치면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강 교수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는 다이어트 방법을 찾기 위해 의학 논문을 뒤졌다. 그러다 저탄고지 다이어트에 꽂혔다.
이 다이어트가 논란이 많고, 어떤 의사들은 절대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는 점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러 자료를 추가 확인한 후 ‘의학적으로’ 타당한 다이어트라고 판단했다. 체중이 최고점을 찍고 한 달이 지난 뒤 강 교수는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 “5개월 사이에 21kg 감량 성공”
가장 먼저 식단을 확 바꿨다. 밥, 빵, 면과 같은 탄수화물 위주 음식은 일단 끊었다. 고기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었다. 완벽한 저탄고지 다이어트인데, 다른 점이 있었다. 강 교수는 이 다이어트를 살짝 변형해 채소를 많이 먹었다.
하루 세 끼를 두 끼로 줄였다. 아침 식사는 건너뛰었다. 점심으로는 소시지 몇 점을 먹었다. 그 대신 저녁에는 고기와 채소를 양껏 먹었다. 얼핏 따져 보니 저녁에만 2인분 이상의 고기를 먹었다.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인 덕에 효과가 당장 나타났다. 일주일 만에 5kg이 줄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체중 감량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졌고, 코피가 나기도 했다. 만성 피로감도 느껴졌다. 강 교수는 “대체로 저탄고지 다이어트의 초기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했다.
부작용은 한 달 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운동을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3개월 만이었다. 퇴근 후 오후 10시 무렵 야외로 나가 걸었다. 처음에는 30분 정도를 느린 속도로 걸었다. 점차 걷는 시간과 속도를 늘렸다. 어떤 날에는 달리기도 했다. 이 습관이 자리 잡으면서 나중에는 평균적으로 주 3회 1시간 이상 운동을 했다.
이후 부작용도 사라지고 몸도 가뿐해졌다. 체중 감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5개월 사이에 21kg이 빠졌다. 그 전까지 입었던 옷이 헐렁해졌다.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얼굴과 몸매가 날렵해졌다. 목표한 체중까지 빠졌으니 다이어트 성공. 이게 끝일까.
○ “다이어트 변형하며 효과 유지”
사실 다이어트는 단기 효과보다 장기 효과가 중요하다. 초기에 반짝 체중이 줄었다가 다시 늘거나 혹은 더 불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저탄고지 다이어트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 교수는 다이어트 4년째 대체로 63kg 내외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 단점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일단 저녁 식사 위주로 넉넉히 먹는 습관은 고수했다. 다만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변화를 줬다. 음식 섭취량을 더 줄였다. 소식(小食)으로 바꾼 것이다. 저녁에 먹는 고기의 양을 2인분에서 1인분으로 줄였다. 대신 채소는 더 먹었다. 점심을 소시지에서 야채샐러드로 바꾼 것도 달라진 점이다.
장기 효과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나타나기 쉬운 저탄고지 다이어트에 다른 다이어트를 접목했다. 이를 위해 다이어트 초기에 완전히 끊었던 쌀, 빵, 면도 가끔 ‘특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체중 감량기가 아니라 유지 단계이기 때문에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기존 식단에 통곡물류 음식을 주 2회 정도 추가했다. 무기질이 풍부한 음식을 권하는 지중해식 식단을 추가한 것이다. 이와 함께 늦은 시간대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다음 날 낮이 돼서야 첫 식사를 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이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나면 다양한 방법을 자신에게 맞도록 변형하는 게 장기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강 교수가 신경 쓰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운동이다. 강 교수는 “아무리 좋은 다이어트라고 해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만 더 힘들 수 있다”며 “반드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시작하면 밀어붙이고 소량 섭취-운동은 필수… 보상 심리 충족돼야 지속
다이어트 실패 막으려면
지난해 12월 이후 올 4월까지 강상희 교수의 체중이 일시적으로 7kg 늘었다. 입덧하는 아내와 음식을 같이 먹느라 다이어트를 잠시 중단했기 때문이다. 올 6월 아기를 출산한 후 다이어트를 재개해 7kg을 뺐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 철학만 확고히 해 놓으면 이런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첫째, 다이어트는 단순히 체중을 빼는 게 아니라 삶을 바꾸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강 교수의 경우 찔끔찔끔 체중을 줄이기보다는 초기 효과가 큰 방법을 택했다. 일단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누군가 “이런 게 좋은 다이어트다”라는 식으로 말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둘째,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 넉넉히 먹으면서 살이 빠지는 방법은 없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음식은 없다”고 말했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덜 먹고, 얼마나 적게 먹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렸다는 뜻이다.
셋째, 다이어트를 지속하려면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식사량을 줄이면 우울해지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수 있다. 이때 운동으로 이런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 다만 운동을 다이어트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즐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넷째, 그는 “다이어트는 뇌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음식을 줄이는 대신 뭔가 뇌를 자극해 보상 심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얘기다. 가령 가끔은 비싸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거나 식비를 줄인 돈으로 여행을 가는 식이다. 보상 심리가 충족되면 그만큼 다이어트를 지속할 동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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