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조직개편 관련 내부 갈등을 두고 본격적인 중재에 나서고 있다. 새해에 접어들며 차세대 누리호 사업, 발사체 고도화 사업 등이 본격적으로 추진돼야 하는 상황에서 담당 기관인 항우연의 표류가 길어질 수록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과기정통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2일 과기정통부와 항우연 등에 따르면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 29일 이상률 항우연 원장을 직접 만나 이번 조직개편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12일 항우연의 조직개편안이 발표되고 고 본부장이 항의의 뜻으로 사퇴서를 제출한 지 약 3주 만이다.
◆이종호 장관, 조직 개편 관련 고정환 본부장 의견 수렴…이상률 원장엔 “직접 만나 설득해달라”
고 본부장은 사퇴서를 제출한 이후 항우연 내부는 물론 외부와의 접촉도 삼간 채 잠행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과기정통부는 항우연의 인사 개편에 직접적인 관여가 어려운 만큼 양측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자체적 해결을 바란다는 입장이었으나, 내홍이 계속되자 이 장관이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으로 읽힌다.
이 장관은 고 본부장과 만나 조직개편과 관련한 고 본부장의 의견을 듣고, 새해에도 후속 우주 개발 사업이 계속되는 중요한 시점인 만큼 조직에 돌아와서 계속해서 중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본부장과의 회동 이후에는 이상률 원장과 만나 이 원장이 고 본부장과 직접 대면해 설명·설득하고, 이를 통해 합의를 도출해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는 전언이다.
항우연의 내홍 봉합을 위해 과학기술 부문의 총책임자인 과기정통부 장관이 직접 ‘매개체’로 나선 셈이다. 이 장관과 고 본부장, 이 원장의 회동에서 향후 조직개편안의 구체적인 변경 여부, 추진 방안 등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고 본부장은 올해 발사되는 차세대 발사체 중심의 조직 재편에 무게를 둔 것으로 전해졌다.
◆발사체연구소 개편 이후 내홍 본격화…“수족 다 잘라” vs “향후 사업 위해 불가피”
이번 항우연 내홍은 지난달 12일 항우연이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발사체연구소로 재편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불거졌다.
당시 고 본부장은 “항우연은 조직개편을 공표해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조직을 사실상 해체했다”며 “기존의 본부·부·팀 체계에서 부와 팀을 폐지하고 본부만 남겨 머리만 있고 수족은 모두 잘린 상태가 됐다. 250여명이 근무하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이번 조직개편으로 본부장 1명과 사무국 행정요원 5명만 남았다”고 성토했다. 고 본부장 외에도 누리호 개발을 주도했던 부장 5명 등 실무진들도 사퇴서를 제출했다.
올해부터 적용된 항우연의 새로운 조직개편안은 5개 부서와 산하 15개 팀으로 이뤄졌던 발사체개발본부를 2개실, 6개 부서, 2개 사업단, 1개 본부로 구성된 발사체연구소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향후 진행될 차세대 누리호 사업, 발사체 고도화 사업 등 대규모 사업들을 동시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조직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게 항우연의 입장이다.
◆새해부터 차세대 우주 사업 본격화되는데…
고 본부장의 사퇴 이후에도 갈등은 점차 커졌다. 발사체 개발을 주도해 온 고 본부장에 이어 발사대 운영·발사체 추적 등을 주도해온 옥호남 나로우주센터장까지 사퇴 의사를 밝힌 것. 누리호 성공 이후 후속 사업을 이어가야 할 책임자들이 잇달아 사퇴서를 던지면서 향후 사업 계획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고, 과기정통부의 조율을 바라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를 두고 이 장관은 지난달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조직 개편 과정에서 서로 의견 차이가 있어서 그런 일(내홍)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며 고 본부장에게 계속해서 중책을 맡아주길 당부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에서 우주개발을 비롯한 과기 부문을 전담하는 오태석 제1차관 또한 “(조직개편안 문제는) 원장 리더십 아래 조율하면서 서로 해결을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3차 발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차질 없이 조직을 정비해 달라”고 촉구했다.
장·차관이 모두 항우연 조직개편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갈등 해소를 두고는 ‘항우연의 자체 해결을 바란다’며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에 과기정통부가 항우연 내홍에 관망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번 이 장관의 적극 조율 행보 또한 과기정통부의 관망 비판, 새해 우주 개발 임무 추진 일정 조율 등을 고려하고, 갈등을 보다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은 올해 상반기 누리호 3차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2조132억원을 들여 누리호보다 진화된 차세대 발사체를 만든다는 목표다. 이같은 누리호 3차 발사는 지난해 6월 누리호, 12월 다누리의 성공에 이어 오는 2032년 독자 개발한 로켓에 독자 개발한 달 착륙선을 실어 우주로 보낸다는 장기 계획의 첫 단추가 될 전망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항우연 조직개편안 발표 이후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이 물밑에서 실무적으로 꾸준히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며 “큰 국가 사업들을 앞두고 양측이 우선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방향에 무게를 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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