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학교 폭력 피해를 입은 주인공이 성인이 돼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색약’을 앓는 것으로 나오면서 이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30일 세브란스 안과병원에 따르면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을 괴롭히는 학교폭력 가해자인 ‘전재준(박성훈 분)’과 전재준이 또 다른 학폭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 분)과 결혼해 낳은 딸인 ‘하예솔(오지율 분)’은 둘 다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약’으로 유추할 수 있다.
색맹이 한 가지 이상의 시세포 기능이 전혀 없어 한 가지 이상의 색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색약은 색을 보는 기능이 약간 떨어진 상태다. 드라마에서 전재준과 하예솔은 신호등의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여러 켤레의 분홍색과 초록색 구두가 섞여있는 상황에서 초록색 구두를 찾아내지 못한다. 또 벚꽃을 분홍색으로 색칠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 색약자들은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전재준과 하예솔의 이런 모습은 ‘극적 설정’이라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배형원 세브란스 안과병원 교수는 “전재준, 하예솔과 같은 적록색약자들은 색이 섞여 있을 때 구분이 어려운 것일 뿐 저마다 색에 대한 인식은 있어 색을 구분할 수 있다”면서 “빨간색과 초록색을 아예 구분하지 못하고 파란색으로만 벚꽃을 그리는 것은 드라마 속 설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세 가지 시세포가 모두 없는 전색맹을 제외한 대부분의 색각 이상자(색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 특정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호등을 감지한다.
다만 색이 섞여 있으면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배 교수는 “적록색약자의 경우 단독으로 놓인 초록색 구두는 알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여러 켤레의 핑크색과 초록색 구두가 섞여 있으면 초록색 구두를 찾아내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색각 이상이 무조건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 적록색각 이상은 X염색체에 의해서만 유전되기 때문이다.
XX염색체를 지닌 여성은 이상 유전자가 하나이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드라마속 박연진 역시 색약 유전자를 하나만 있어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하예솔은 색약자로 나온다. X유전자 두 개 모두 이상 유전자임을 미뤄 알 수 있다. 여성의 XX염색체 중 하나는 아빠로부터 받고, 다른 한 개는 엄마로부터 받는다. 하예솔은 아빠로부터 이상 X유전자 한 개를, 엄마로부터 이상 X유전자 한 개를 각각 받은 셈이다.
하지만 색약 유전자를 하나만 지닌 엄마와 적록색약인 아빠가 만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또 설령 둘이 만나게 된다 해도 색약인 딸이 나올 확률은 25%다.
XY염색체를 지닌 남성의 경우 무조건 증상이 나타난다. 전재준이 이에 해당된다. 실제 색각 이상자 중 남성 비율이 더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후천적 색각 이상의 경우 치료가 가능하지만 선천적 색각 이상은 현재 치료법이 없다. 배 교수는 “뇌에 문제가 생기거나, 시세포 혹은 망막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색맹이나 색약이 될 수 있다”면서 “이런 후천적 색각 이상은 원인 질환을 치료해 시세포 기능이 회복되면 어느 정도 치료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 선천적 색각 이상의 비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실제 색각 이상자를 위한 렌즈와 안경은 있지만, 널리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재준처럼 한 쪽만 착용하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잠시 착용한다. 색각 이상자들은 평소 색들에 대한 저마다의 인식이 있어 오히려 렌즈를 끼면 더 불편을 느낄 수 있어서다.
대부분의 색각 이상자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일부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 배 교수는 “항공기 조종사 같이 몇 가지 제한되는 직업군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운전면허를 딸 때도 신호등만 구분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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