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람이 갑자기 큰 병에 걸리면 당혹스럽다.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제야 건강 관리를 시작한다. 대체로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한다. 혹은 헬스클럽에 등록하거나 수영장 회원권을 끊는다. 또 다른 운동 종목을 찾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 다음이 문제다. 초기 결심은 금세 잊고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운동을 거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주일을 건너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 만에 운동을 포기한다.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61)는“다이어트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그렇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뇌 과학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에도 자신이 있단다. 그는 자신만의 다이어트 방법을 확립하기 위해 그동안 국내외 다이어트 관련 서적 100여 권을 탐독했다. 그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들어봤다.
●“내게 맞는 다이어트, 직접 설계”
2010년경 김 교수의 선배 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치료가 잘돼 그 선배는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그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 이후 두 사람은 늘 함께 출근했다.
여러 해를 그 선배와 출근을 같이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냉정하게 말하면 김 교수 자신도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체중은 이미 80㎏대 중반에 육박했다. 누가 봐도 비만이었다. 혈압도 꽤 높았다. 2015년부터는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수치 모두 정상 기준을 훌쩍 넘었다. 게다가 가족력도 있었다. 김 교수의 모친은 뇌중풍(뇌졸중)으로 60대 중반에 돌아가셨다.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김 교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결심을 하지 못해 시간만 끌었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당부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그런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2019년 설 연휴 때였다. 김 교수는 비로소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가장 먼저 비만 관련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맞는 다이어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김 교수는 간헐적 단식과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병행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다만 간헐적 단식이 당뇨병 환자에게는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혈당을 체크해야 했다.
●3개월 만에 16㎏ 뺀 비결은?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게 체질량지수(BMI)다. 일반적으로 국내 성인 남자의 경우 BMI 수치가 23~24㎏/㎡일 때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를 넘으면 과체중, 혹은 비만으로 규정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당시 김 교수의 체중은 83㎏이었다. BMI를 기준으로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16㎏을 빼야 했다. 김 교수는 16㎏ 감량을 목표로 정했다.
16시간 동안 굶는 간헐적 단식을 시도했다. 점심 식사로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고, 저녁에는 종전과 비슷한 양의 식사를 했다. 오후 9시 이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16시간이 지난 다음 날 오후 1시가 돼야 식사를 했다.
탄수화물 섭취량도 줄였기에 다이어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하지만 체중 감량 속도가 기대한 만큼 빠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일주일에 이틀을 굶는 방식으로 바꿨다. 김 교수는 “번역본이 아닌 원전을 들여다보니 5일을 먹고 2일을 굶는 방법이 간헐적 단식의 원형이었다”고 말했다.
5일 동안은 탄수화물은 가급적 줄이되 넉넉히 먹었다. 나머지 2일에는 커피와 물만 마셨다. 효과는 훨씬 좋았다. 체중 감량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다만 식사를 하지 않는 날에 주변 사람들과의 저녁 모임이 어려워졌다. 새로운 스트레스였다. 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사회적 건강’의 중요성은 무척 크다”고 말했다.
다시 다이어트 방법을 바꿨다. 1일 1식 다이어트다. 식사 횟수를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되 식사량을 제한하지 않는 방법이다. 덕분에 모임에서도 맘껏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체중 16㎏ 감량 목표는 다이어트 3개월 만에 달성했다. 김 교수는 1일 1식 다이어트가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이라 확신했다. 물론 현재도 이 방법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땅콩, 아몬드, 고구마 같은 간식을 가끔 곁들이는 ‘여유’도 누린단다.
●“건강 수명은 운동에 달려 있어”
김 교수는 “건강 수명은 운동에 달렸다”고 했다. 체중 감량은 식사량 조절로 가능하지만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교수 또한 2019년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동시에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단 오르기를 했다. 일부러 10개 층을 매일 두 번씩 올랐다. 하지만 계단 오르기는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만뒀다. 김 교수는 “운동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작해서 그런지 계단 오르는 게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 야외로 나갔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종종 산책했다. 별도로 가급적 매주 2회 정도는 집 근처 산책로에서 걸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매일 적게는 5000보, 많게는 1만5000보 이상 걷는다. 요즘은 여기에 주말 등산도 추가했다. 산에 오른 날에는 2만 보를 훌쩍 넘는다.
지난해부터는 필라테스를 추가했다. 매주 2, 3회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1시간씩 땀을 흘린다. 다른 종목도 많은데 왜 필라테스일까. 김 교수는 “나이가 들면 유연성이나 균형감이 떨어지기 쉽다”며 “이 점을 보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유는 또 있다. 혹시 부족해질 수 있는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만약 주 2회 걷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에는 필라테스의 운동량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간헐적 단식과 운동의 결과는 흡족했다.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혈당도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당뇨병 전 단계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수시로 ‘다이어트 일기’를 쓰는 의사
김 교수의 다이어트 성공 비결은 또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성하고 있는 ‘다이어트 일기’다.
김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부터 잰다. 이어 혈압과 혈당을 측정한다. 모든 과정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저장한다.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을 때에도 음식을 촬영한다. 이 데이터 또한 휴대전화에 저장한다. 운동할 때마다 운동량을 휴대전화에 적는다. 이렇게 수시로 휴대전화를 열어 데이터를 기록한다.
김 교수의 휴대전화에는 2019년 이후 날짜별로 이 모든 데이터들이 정렬돼 있다. 김 교수는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이렇게 해 놓으면 식습관과 운동 상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변동 상황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록 습관은 다이어트 효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를 ‘자각 효과’라 했다. 사실 김 교수 또한 다이어트로 건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독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번 놓치면 옛날 습관으로 한 달 만에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런 기록 습관은 뇌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빛을 보는 게 평균적으로 100일 정도다. 새로운 습관을 수시로 기록하면 뇌가 더 수월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 점을 다이어트에 활용하라고 그는 권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체중부터 재세요. 그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꾸고 다 기록해 두면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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