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한 논문에 새로운 개념의 남성 피임약이 등장했다. 요헨 벅 미국 웨일코넬의과대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이다. 이 약은 성관계 직전 필요할 때 먹는 약으로, 정자를 3시간 정도 기절시키는 식이다. 3시간 뒤부터 정자는 서서히 깨어나 하루가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오래도록 남성용 피임약은 양치기 소년 신세였다. 새로운 남성 피임약이 나왔단 연구는 꾸준히 나왔지만 실제 약으로 출시된 건 아직 없다. 초기에 나온 남성 피임약은 모두 여성 피임약처럼 호르몬제로, 메스꺼움이나 구토, 성욕 감퇴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제약사들의 선택을 못 받았다. 그 뒤 개선된 호르몬제들은 요즘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9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임상 1상을 통과했다고 발표한 11-beta-MNTDC다. 하지만 이마저도 30명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5명은 성욕이 떨어졌고 2명은 가벼운 발기부전을 나타냈다고 보고됐다.
비호르몬제인 남성 피임약도 소식이 뜸하긴 마찬가지다. 임상시험을 거치고 있는 비호르몬제 젠다루사는 밤방 프라조고 인도네시아 아이랑가대 박사가 2014년에 처음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정자를 기절시킨다는 이번 피임약은 이전의 남성 피임약과 무엇이 다를까. 2월 20일, 이번 연구를 이끈 요헨 벅 미국 웨일코넬의과대 교수와 화상으로 만나 물어봤다.
아래는 요헨 벅 교수와의 일문일답.
Q. 기존에 나온 남성 피임약과 무엇이 다른가?
먼저 이전에 나온 남성 피임약은 대부분 호르몬제였다. 호르몬제를 먹으면 정자가 발달하는 과정을 막는 건데, 성욕 감퇴 같은 부작용이나 오랫동안 복용해야 하는 게 문제로 꼽혔다.
이번에 개발한 약은 일단 비호르몬제다. 그리고 필요할 때 먹으면 되고, 일시적으로만 작용하는 게 이전과 다르다. 성관계 30분에서 한 시간 전에 복용하면 정자가 운동을 멈추고, 24시간쯤 지나면 정자 운동성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Q. 정자는 여성의 몸 안에서 4~5일 정도 살아있을 수 있다고 알고 있다. 하루 뒤에 정자가 원래대로 움직이면 피임률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정자가 여성의 몸 안에서 4~5일 정도 살 수 있다는 건 맞다. 하지만 그건 굉장히 혹독한 환경인 질을 지났을 때의 이야기다. 남성의 몸 밖으로 나온 뒤 20분 정도 정자의 가장 큰 임무는 질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피임약은 정자가 질에 머무는 시간, 최대 40분 정도까지 정자가 못 움직이게 한다.
Q. 약이 작용하는 원리는?
정자가 정액으로 나올 때 ‘수용성 아데닐릴 사이클레이즈(sAC)’라는 효소가 정자의 운동성을 켜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개발한 약은 이 스위치가 켜지지 않도록 막는다. 스위치를 막을 수 있는 약물을 다양하게 시험해봤고, 그중 가장 효율이 높았던 건 TDI-11861이라는 물질이다.
Q. 부작용은?
sAC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사람의 케이스를 살펴봤다. 35~40세 사이 남성의 케이스였는데, 불임 문제 말곤 건강했다. 최소 35~40세까진 이 효소 없이도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한편 피임약은 평생 이 효소를 없애는 게 아니라 잠깐만 억제하는 것이라 부작용이 미미할 거라 예상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쥐 실험 결과를 이번 논문으로 발표했고, 토끼 실험 결과를 갖고 있다. 곧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엔 물론 임상 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임상 시험을 하려면 똑같이 sAC를 막는 물질 중 가장 알맞은 물질을 찾아내야 한다. 목표는 12개월 안에 사람에게 최적인 후보 물질을 추려내고, 다음 시험을 위한 FDA 승인을 받는 것이다. 그 이후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 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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