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화-간암 손재신 씨-최동호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
B형 간염 수십년 동안 방치, 최악의 상황 치달아
간 이식이 최선…아들이 간의 60% 떼어내 공여
수술 후 전성기 체력 회복…4개월마다 건강 체크
간은 ‘침묵의 장기’, 고위험군은 정기 검사 필수
피아노 조율사 손재신 씨(67)는 ‘선천성 B형 간염 환자’다. 임산부였던 어머니로부터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전염됐다. 출산할 때 혹은 출산 직후 어머니의 혈액 등에 있던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자식에게 전달되는, 이른바 수직 감염이다. 같은 이유로 손 씨의 형제 모두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이런 경우 간암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손 씨는 그러지 못했다. 먹고 사는 게 더 급하던 시절이었다. 당장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잊고 살 수 있었다.
수십 년이 흘렀다. 언젠가부터 몸이 조금씩 나빠졌다. 피로감이 극심했다.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다리의 붓기와 통증도 심해졌다. 그래도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곧바로 달려갔다. 일을 끝내고 나면 더 힘들어졌다. 몸이 힘드니 짜증도 늘었다. 황달 증세도 나타났다.
하지만 병원에는 차마 가지 못했다. 의사가 큰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내릴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만 끌었다. 2016년 가을, 보다 못한 아내가 그의 팔을 잡고 병원에 갔다. 무려 30여 년 만의 병원 방문이었다.
● “간경화에 간암 겹쳐, 간 이식이 최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의사는 손 씨의 부은 다리를 살피고는,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눌린 부위는 곧바로 복원되지 않았다. 간경화가 꽤 진행됐을 때 나타나는 증세다. 간 기능이 심하게 떨어지면 알부민이란 단백질 수치가 낮아진다. 그러면 수분의 양이 조절되지 않아 소변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이때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붓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간에서 혹이 발견됐다. 간암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암은 초기 단계였다. 의료진은 일종의 항암 치료인 간암 색전술을 시행했다. 간암 세포와 연결된 동맥에 항암제를 투입해 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진척이 없는 듯 했다. 한 달 뒤 손 씨는 최동호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를 찾았다. 최 교수는 치료법을 놓고 고민했다. 간암 색전술을 다시 시행하거나 암이 있는 부위만 절제하는 수술도 고려했지만 간경화가 심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간 이식 수술만이 간암과 간경화 모두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최 교수는 손 씨와 가족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손 씨에게 간을 공여할 가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간 이식은 성공률이 높지만 공여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했다. 설령 가족이라도 자신의 장기를 선뜻 내어주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간 이식 수술이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아들이 아버지에 간 공여, 당연한 일”
손 씨에게는 장성한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최 교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둘째 아들 영석 씨(36)가 간 공여를 자처했다. 당시 대학원 때부터 전공해 온 음악과 영상 촬영 분야에서 한창 일을 하던 시점이었다. 수술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의료진이 이식 수술로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자식으로서 간을 떼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남편과 자식, 두 사람을 수술대로 보내야 했던 어머니가 더 걱정이 됐단다.
2016년 12월, 손 씨와 아들 영석 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최 교수는 아들의 간 60%를 절제해 아버지에게 이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회복기를 거친 후 손 씨는 ‘정상인’이 됐다. 무려 60여 년 만에 간 질환에서 완전 해방된 것이다.
아들의 간을 받은 아버지는 늘 미안하다. 손 씨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 미안하고, 배와 가슴에 L자 형태로 나 있는 수술 자국을 보면 죄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석 씨는 수술 흉터를 ‘훈장’으로 생각한다.
사실 간을 절반 넘게 잘라내도 큰 문제는 없다. 최 교수는 “(간은) 크기는 작아지지만 제 기능을 다 한다. 게다가 1주일에서 한 달 사이에 원래 크기의 80% 정도까지는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들 영석 씨는 1주일 만에 원래 크기의 90%까지 간이 자라났다.
투병하는 동안 가족의 결속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손 씨가 수술하기 전까지는 가족이라 해도 각자 사느라 바빴다. 손 씨는 “가장 큰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웬만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커졌다. 모두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웃었다.
● “간암 완치돼도 4년마다 정기 검사해야”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이식 거부 반응이 심하게 온 것이다. 원래 간 이식 거부 반응은 흔하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후 1년 이내에 한 번 정도는 ‘으레’ 거친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뿐이다.
손 씨는 달랐다. 이식 수술이 끝나고 3년이 지날 무렵 이식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황달 증세부터 시작해 예전의 여러 증세가 도졌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손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래도 의료진을 믿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제제를 써서 면역 반응을 무력화시켰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손 씨는 암에 걸린 간을 완전히 들어냈기에 따로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물론 간경화 합병증도 모두 사라졌다. 이식 수술이 성공하면서 동시에 간암 완치 판정을 받은 셈이다.
올해로 완치 7년째를 맞은 손 씨는 전성기 못지않게 활기차게 일한다. 하지만 4개월마다 최 교수를 만나야 한다. 간 기능을 체크하고, B형 간염의 재발 여부를 살핀다. 면역 억제제는 평생 복용해야 한다. 이 또한 주기적으로 투약 분량을 조절해야 한다. 너무 많으면 신장 기능이 떨어지거나 면역 기능이 지나치게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적으면 면역 반응이 일어나 장기가 공격받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간암 환자는 완치 이후에도 평생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손 씨는 ‘모범 환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약 복용을 빠뜨린 적이 없다. 다만 최근 들어 지방간이 나타나면서 운동 부족을 지적받는다. 최 교수는 “완치 후 5년을 넘기면서 몸이 좋아지면 방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우 재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 씨는 앞으로 운동량을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 “간암, 증세 나타나기 전에 예방해야”
최 교수는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했다. 간암에 걸려도 악화되기 전까지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피로, 무기력, 오른쪽 윗배 불편, 체중 감소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경우 이미 암이 꽤 진행된 후일 수도 있다.
따라서 평소 간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특히 B형 간염, C형 간염, 알코올 간 질환자와 같은 고위험군일수록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간암 환자의 70% 이상은 이런 고위험군에서 발생한다.
우선 고위험군이 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B형 간염 예방 백신을 접종해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C형 간염은 주로 혈액이나 성관계로 감염된다. 아직 예방 백신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혈액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손톱깎이나 면도기, 칫솔을 공유하지 않는 게 좋다. 문신이나 피어싱을 할 때도 1회용 장비인지 확인해야 한다. 알코올 간 질환의 경우 절주나 금주가 필수다.
고위험군이라면 암의 조기 발견을 위해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최 교수는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 간암 발생 위험을 낮춘다. 의사와 상의해서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간암은 재발률이 비교적 높은 암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간암 수술 환자의 절반 정도는 3년, 70%는 5년 이내에 재발하거나 새로운 암이 발생한다. 하지만 동시에 치료 효과도 높아지고 있다. 최 교수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믿고, 평생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치료하면 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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