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부터 보급된 사무자동화(Office Automation)로 사무직 노동자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업무 처리의 속도가 빨라지고 처리량이 폭증한 것. 1990년대부터는 컴퓨터가 본격 보급돼 사무자동화에 속도가 더 붙었으며 주산, 부기와 필기구를 이용한 장부 수작업 기록 등의 업무는 거의 사라졌다. 계산, 통계, 데이터 저장도 PC가 대체했다.
이 때만해도 이것이 지식노동의 자동화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이 현상은 심지어 ‘정보 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얻기도 했다. 허나 이 또한 산업혁명부터 이뤄진 대대적인 기계화 과정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기계 자동화는 인간의 근력 노동 상당수를 기계로 대체했다. 결국 사무자동화도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 불과했던 것이다.
팩스는 문서 이동이라는 물리적 운동을 전기 신호로 대체한 것이고, 손으로 쓰거나 타자기를 때려 만들던 문서는 프린터가 대신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손가락 운동은 여전히 했다. 다만 근력을 더 약하게 쓰게 됐고 속도가 빨라졌을 뿐. 오피스 프로그램들은 자를 대고 그렸던 표나 그래프를 자동화해줬다. PPT는 붓펜이나 유성펜으로 만들던 차트(괘도)를 빛으로 보여준 것뿐이고.
진짜 사무자동화의 시작은 인공지능부터가 아닐까.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먼저 개념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낸 뒤 관련법이나 조례를 살펴보고 여러 자료를 종합해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식 노동의 과정이다. 팩스 보내고 복사하고 계산하는 것은 지식 노동, 아니 여러 사무 중 단순한 하나의 분야일 뿐이다.
이제 지식노동의 기본이 되는 정리, 종합, 법 검토, 판단 등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 아이디어나 판단까지는 인간이 한다 해도 최소한 자료수집과 법 검토 등은 인공지능에 맡길 수 있을 듯.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 때문에 사무직 일자리의 감소를 예측하곤 한다.
사진 촬영 자동화의 미래는?
인공지능이 사무를 자동화하듯, 사진 촬영도 어디까지 자동화할 수 있을까? 현재 AI 프로그램들은 사진을 잘 만들어 내고 있다. 실제 사진과 구별하려면 매의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AI가 만든 사진은 가상현실일 뿐 실재가 아니다.
사진이라기보다 회화에 가깝다. 회화는 현실을 따라 그린다 해도 상상이 먼저다. 사진, 특히 뉴스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실과 진실, 즉 실재에 기반한 매체이다. 그러므로 현재 AI가 만드는 사진은 회화에 가깝다. 회화는 창의성이 핵심인데 미술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기능을 갖췄다. AI는 엉뚱한 오류를 일으키기 십상인데 이 오류들이 때로는 새로운 창작기법으로 보일 수 있다. 또 화가의 붓 터치 근력을 자동화해 줄 수도 있다.
AI는 아직까지는 사진보다 컴퓨터 그래픽 산업에 훨씬 이용가치가 클 것이다. AI는 아직 사진가를 위협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사진가의 경쟁 후보는 CCTV와 블랙박스. 이들은 설치만 해두면, 월급도 바라지 않고 휴식 시간을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전기만 대주면 된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 댓수만 2천500만 대. 이 중 80%인 2천 만대에 블랙박스가 장착돼 있다고 가정하면, 기계적 사진가들이 2천 만 명(?) 있는 셈. CCTV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아마 자동차 블랙박스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아직은 저화질이 많은데 기기 값이 떨어지고 메모리 용량 등이 향상돼 고화질이 된다면 사진가들의 무서운 경쟁 상대가 될 것이다.
사진가라면, 인간의 창의적인 사진 작업을 기계가 찍은 것과 비교할 수 있냐고 화를 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 시장에 기계를 들고 와 기존의 화가들 일자리를 위협하고 뺏은 것은 사진가들이다. 당시에도 화가들은 사진가를 예술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기계의 위협을 원망만 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CCTV는 한 자리에 고정돼 있고, 블랙박스는 도로만 주행하며 찍는 다는 것. 즉 기계 사진가의 역할과 촬영 영역은 아직 한계가 있다. 이동 능력과 기동력에 한계가 있다. 사진 작업은 아직도 인간의 근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지런히 ‘몸으로 때우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아직은 시각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해 촬영까지 하는 능력이 기계에는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사진은 ‘근력’과 ‘해석’의 합작이기 때문.
** 사진 작업 = 근력 + 해석능력
하지만 CCTV가 촬영한 이미지나 동영상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기능은 이미 출시돼 있다. 사진 작업에 필요한 두 번째 능력인 ‘해석’ 부문에서 이미 인공지능화가 시작된 것이다. 군부대와 경찰청, 도로공사 등이 이미 활용 중이다. 사람이 하루 종일 CCTV 모니터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교통사고 같은 변고 상황과 평소와는 다른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분석해 실시간으로 알려 주는 기능이 있다. 즉 촬영한 시각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인공지능이 배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주변소리까지 동시에 포착해 좀 더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도 곧 생길 것이다.
AI에게 ‘풍경사진의 소재와 기법’, ‘다큐멘터리 촬영법’, ‘그림이 되는 앵글법’, ‘뉴스를 파악하고 핵심인물 표정 잡아내기’ 등등을 가르치고 학습 시킨다면 어지간한 사진가만큼 촬영 능력을 확보할 지도 모른다.
촬영 지능이 생긴 인공지능은 사진가의 근력을 어떻게 대체할까? 흔히 AI 끝판왕은 로봇이라고 전망한다. AI공학자들의 꿈은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것이리라.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카메라를 메고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며 촬영을 하게 될까?
비효율적이다. 가장 이상적인 카메라는 우주에 있는 제임스웹 망원경이다. 공중에 떠 있으며 광각부터 망원까지 다양한 앵글을 소화한다. 카메라가 로봇이고 로봇이 곧 카메라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카메라로봇에 가장 근접한 기계는 아직까지 드론으로 보인다.
드론은 수평이동 수직이동이 자유롭다. 직선이동 곡선운동 회전운동까지 모두 가능하다. 정화상이건 동영상이건 앵글 잡기에 가장 유리하다. 지미집 카메라(긴 막대기에 달린)와 달리 무선이다. 드론 기술이 어떻게,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 수는 없지만 시각정보를 분석해 스스로 이동하며 주요 장면을 촬영하는 능력을 획득한다면, 사진가들의 역량은 ‘드론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 드론 세팅 값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달리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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