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구기관 보유기술 사업화’ 총괄하는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20여 년 만에 기술 사업화 ‘새 틀’… 연구기획 단계부터 민간 참여 확대
기술 ‘독점 이전’ 허용해 투자 독려… 사업화 지원 3조원 민관 펀드 조성
연구자 창업 위한 6년 휴직제 도입… 사업화 도와도 현금·주식 별도 보상
이과 인재의 의과대학으로의 쏠림을 우려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크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술을 갖춘 반도체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조차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첨단 기술의 축적이 없으면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의 해법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시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일자리를 창출할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갖추면 된다. 정부는 2000년 공공(대학, 정부출연연구소 등) 기술 사업화 정책을 시작했다. ‘기술 이전·사업화 촉진 계획’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3년마다 갱신된다. 작년 말 8번째로 새로 마련됐다. 민간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전받을 수 있게 되고, 창업을 위해 연구자들에게 최대 6년이나 휴·겸직이 허용되는 등 20여 년 만에 획기적인 틀을 마련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특허청 등 17개 부처에 걸친 사업이다. 이 정책을 총괄하는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57)을 14일 만나 연구 기술의 사업화 정책의 변화와 그 함의에 대해 들었다.
―제8차 기술 이전·사업화 촉진 계획 중에서 예비 창업가나 스타트업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중요한 제도적 변화는 뭔가.
“20여 년 만에 공공연구기관 기술 이전·거래 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지금까지는 공공연구기관 보유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더라도 독점적으로 넘길 수 없었는데, 이를 폐지했다. 기술 특성, 민간의 현장 수요, 활용 계획 등을 고려해 독점 이전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에 민간이 과감하게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연구자가 기술을 직접 사업화할 수 있도록 창업 여건을 크게 개선했다. 공공연구기관 연구자가 최대 6년간 휴직이나 겸직을 할 수 있고, 사업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창업 기업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도 마련키로 했다. 사업화 대상 기술과 관련해 권리화되지 않은 지식(노하우)이나 정보, 연구기관 시설의 사용 등을 허용했다. 지금까지 이해충돌 문제 때문에 창업이나 사업화를 주저했던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기술이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의 기술 이전·사업화 촉진 계획을 되돌아본다면….
“2000년에 제1차 기술 이전·사업화 촉진 계획을 세우면서 기술 거래 인프라, 사업화를 위한 연구개발(R&D), 기술금융, 기술의 판로 개척 등 기술 거래에 관한 전체 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기술 이전 건수로 보면 최근 5년간 6%씩 증가해 2021년의 경우 1만5383건이 기업에 이전됐다. 기술이전율(공공연구기관 보유 기술 대비 이전 실적)도 꾸준히 증가해 2021년에 처음으로 40%를 넘었다. 지금까지 신규로 개발한 기술 10개 중 4개 이상이 이전됐다는 뜻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술이 중소기업에 이전(76%)됐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중소기업의 기술 발전에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우리 산업과 사회에 보다 뚜렷한 이득을 가져다줄 경제적 임팩트가 있는 기술을 이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는 앞으로 이에 더 신경을 쓸 것이다.”
―왜 공공 기술 사업화가 중요한가.
“기업에는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새 혁신기술을 도입해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업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그에 필요한 기술은 외부에서 조달하는 방식이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지금 시대에 맞는 방식이다. 미국 등 창업 선진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보편화돼 있다.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소 등 공공연구기관은 기술 이전과 자체 창업으로 더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위한 아이디어와 자본을 만들 수 있다. 연구자에게는 더 많은 보상 혹은 창업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이공계 인력이 의대로 쏠리는 현상도 막을 수 있다. 수백억 원의 기술이전료를 받는 연구자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 2021년 기준 기술 이전 계약 건당 이전료는 2580만 원에 불과했다. 앞으로 연구소와 연구자는 기술이전료 외에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해 주고도 현금, 주식, 채권, 스톡옵션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공공 기술 사업화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민간 수요 중심의 기술 개발과 민간과 함께하는 사업화다. 앞으로는 연구개발 과제를 정할 때부터 민간의 수요를 반영할 계획이다.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수요를 파악해 이를 개발할 연구자와 스타트업이 협업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식이다. 향후 이들이 대기업에 기술을 파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장 재직 때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와 대기업 기술 개발 담당자들을 연결하는 모임을 만든 경험이 있다. 쌍방 모두에게 그런 교류가 절실하다는 걸 느꼈다.
벤처캐피털 및 사업화 전문기관 등 민간이 먼저 발굴한 프로젝트에 정부가 연구개발 자금을 우선 투자하는 방식(민간투자 연계형 R&D)은 더 확대한다. 아울러 기술의 사업화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3년간 3조 원 규모 민관 합동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기술을 사업화하는 혁신 스타트업 등에 대기업과 중견기업, 일반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과 산업에 초점을 맞춘 기술을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딥테크와 함께 달리기(Colab4DeepTech) 프로그램’도 중요한 시도다. 기업과 공공연구기관, 투자자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출한 솔루션에 대해 비즈니스 모델 수립 단계부터 R&D 투자, 민간 투자 유치까지 전(全) 주기를 지원한다. 민간 수요 중심의 시장 친화적인 개발 및 사업화로, 경제적 임팩트가 있는 기술이 일자리로 이어지도록 하겠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은 기술 사업화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해 1980년에 베이돌 법(法)(Bayh-Dole Act)을 제정했다. 대학과 연구기관에 특허 등 연구 성과의 소유·활용권을 보장하고, 기술 사업화 전담조직(TLO)을 적극 지원 중이다.
기술 선진국들은 개발한 기술의 단순한 이전뿐만 아니라 공공연구기관이 직접 사업화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시행 중이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내부 인력이 사업화를 직접 지원하고,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일본 도쿄대는 출자회사를 두고 사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민간 전문회사를 통해 사업화를 지원하는 방식도 있는데 독일 헬름홀츠 연구소 등이 그렇게 한다.
우리도 이번 계획에 사업화 민간 전문기관의 참여를 높이는 등 공공 연구기관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화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 출연연 같은 공공 연구기관을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닌 창업의 요람으로 변화시키고, 꾸준한 제도 개선과 인센티브를 통해 ‘스타 연구자’나 ‘기술백만장자’가 배출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겠다.”
공공 보유 기술 알아보려면…
국가기술은행에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소 등이 보유한 기술 정보가 망라돼 있다. 현재 32만8000여 건의 정보가 등록돼 있다. 회원 가입 후 로그인을 하면 인공지능 기반의 기술 관계망 그래픽을 볼 수 있다. 키워드를 넣으면 연관 기술들로 연결된 기술 관계망이 보이는 방식이다. 특정 기술의 특허 정보와 판매자 연락처 등도 나오고, 대략의 기술 가격도 알 수 있다. 작년 기준으로 일평균 방문자는 6만4000명 정도다. 아직 연구원들 중심으로만 알려져 있어 정부가 예비 창업가와 대학생 등 창업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기술의 완성도를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계속 보완할 계획이다.
장영진 차관은…
2022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에 임명됐다. 직전에 한국전자기술연구원장, 그 이전에 산업부 기획조정실장, 산업혁신성장실장, 산업기술융합정책관, 주미 대사관 경제공사 등을 지냈다. 행정고시 35회. 뉴욕주립대 경제학 석사, 경희대 학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