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들과 딸 중에 고를 수 있다면…’이 오래된 소망에 꽤 확실한 답을 주는 연구가 최근 나왔다. 3월 22일 지안피에로 팔레르모 미국 웨일코넬의대 교수팀이 아이의 성별을 미리 골라 인공수정하는 기술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원하는 성별의 아이를 가질 확률은 80% 정도였다.
아이의 생물학적 성은 정자가 가진 성염색체가 결정한다. 난자는 늘 성염색체로 X 염색체 하나를 갖고 있는데, X 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만나면 딸(XX)이 되고, Y 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만나면 아들(XY)이 된다.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X 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Y 염색체를 가진 정자를 구별하는 연구를 한 이유다.
● 아들과 딸, 정자의 ‘무게’로 선택한다
수많은 정자 속에서 X 염색체 정자 혹은 Y 염색체 정자를 찾고 싶을 때 사용하던 기준은 주로 ‘무게’였다. X 염색체가 Y 염색체보다 무거운 탓이다. 다만 둘의 무게 차이는 매우 작아서 눈으로 선별하거나 무게를 직접 재서 고르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정자의 운동성을 비교하거나 밀도 차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정자들을 구분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스윔업 테크닉’이다. 본래는 건강한 정자를 고르기 위해 쓰는 방법인데, 맨 아래층에 정액 샘플을 넣고 그 위에 배양액을 쌓으면 정자가 배양액 쪽으로 헤엄쳐 올라간다. 이때 위층과 아래층의 정자를 분리하는 식이다. 1999년 라파엘 쥬웰빅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팀은 이 기술을 정자의 성별 선택에 썼는데, 실험 결과 원하는 성별의 아이를 얻는 확률이 70% 이상이었다. 하지만 2019년 국제산부인과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스윔업 테크닉을 써도 배아의 성별은 거의 5:5 비율로 나와 큰 효과가 없었다.
또 무게에 따른 차이를 보려고 ‘밀도’를 비교하기도 했다. 농도가 서로 다른 용액을 층층이 쌓고, 맨 위에 정액 샘플을 넣으면 밀도에 따라 정자가 구분된다는 게 원리다. 어떤 용액을 쓰느냐에 따라 퍼콜, 피콜, 또는 알부민 용액 실험 등으로 불리며, 흔히 ‘밀도구배원심분리’라고 불린다. 이 방법은 동물의 정자 실험에 주로 쓰였는데, 용액에 따라 확률이 60%대에 그치기도 하고 배아의 성비에까지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 아들, 딸 고르는 정확도 80%
이처럼 X 염색체와 Y 염색체를 무게로 구별하는 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둘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도 이미 알려져 있었고, 무게로 둘을 분리하려는 아이디어도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최근 팔레르모 교수팀은 같은 아이디어를 변형해 실제 사람에게 적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또 정확도도 80% 정도로 높였다. 연구팀은 105 커플에 이 기술을 도입는데, 딸을 원한 59쌍에게 인공수정 시술 292회 시도해 231회(79.1%) 딸이 될 배아를 얻었다. 아들을 원한 46쌍에겐 인공수정 시술을 280회 시도했고, 그중 223회(79.6%)에서 아들이 될 배아를 얻었다. 그 결과 딸 16명과 아들 13명이 태어났다. 태어난 아기들은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다.팔레르모 교수는 씨즈와의 인터뷰에서 “환자들이 원하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우리가 할 일은 안정성을 확인하는 일이며 앞으로 정확도를 더 높이는 연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피할 수 없는 윤리적 논쟁
하지만 이번 연구를 놓고 윤리적 논쟁이 오간다. 찬나 자야세나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남성병학과 과장은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의 기술적 성과는 이 연구가 불러온 윤리적 우려에 비해 보잘것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나라마다 규제도 다르다. 한국을 포함해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12개 나라가 인공수정을 하면서 유전자 검사로 성별을 고르는 걸 금지하고 있고, 중국, 브라질, 일본, 싱가포르 4개 나라는 지침 정도로 약하게 금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이나 멕시코처럼 제한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doi: 10.1101/cshperspect.a036681)
의료윤리 전문가인 김준혁 연세대 치과대학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전질환에 대해서만 미리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며 “성별 선택도 의학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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