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위치한 한국에너지공대(KENTECH·켄텍). 장광재 입학센터장이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양성’ ‘육성’은 학생이 수동적으로 교육을 받고 길러진다는 뉘앙스를 준다고 했다.
“학생들 스스로 날아다닐 수 있게 날개를 지원하는 곳이 대학입니다. 마치 ‘아이언맨 슈트’를 공급하는 것과 같죠. 그 슈트가 역대급으로 진화한 것처럼 대학도 학생들에게 갈수록 양질의 날개를 제공해 줘야 합니다. 그들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느냐는 것은 학생의 역량입니다. 따라서 대학은 날개와 역량이 시너지를 내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해 3월 개교한 켄텍은 학생들의 ‘자발적 학습’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첨단 하드웨어 강의실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능동 학습 플랫폼, 학습자의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는 다중 학습 분석 시스템 등 창의성 교육을 정착시키려 한다.
장 센터장의 설명을 듣고 2층으로 올라가 강의실을 확인하니 칠판이 없다. 책도 없다. 당연히 분필도 없다. 수성 매직펜도, 복사기도 안 보인다. 대신 강의실 사방에 설치된 모니터와 카메라만 기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 입학 면접이 수업의 시작
2학년 장현규 씨는 입학 면접에서부터 낯선 경험을 했다. 면접관 2명이 바짝 다가와 앉더니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면접을 준비해 왔는지 그 과정을 듣고 싶다고 했다. 뜻밖의 요청에 장 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중에 입학센터장님한테 ‘왜 이런 면접을 하셨냐’고 물어봤죠. 그냥 문제를 풀라고 하면 채점하기 편하잖아요. 그랬더니 성적에 맞춘 학생을 원하는 게 아니라 수업 과정을 잘 따라갈 수 있는 학생을 찾는다는 답을 들었죠.”
장 센터장은 “면접은 학생들이 학교를 평가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면접관들에게 ‘학생의 말을 충분히 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면접이 아니다. 그들이 질문하는 것을 돕고, 답을 찾아가는 것을 같이 고민해 주면서 학업 성취 과정을 보는 것”이라며 “면접관과 학생이 접점을 찾는 역발상 면접을 통해 학생들은 이 대학의 창의성 교육을 가장 먼저 체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교 안팎으로 면접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다. 장 센터장은 “여러 고교에서 켄텍 면접 방식에 관심을 보여 노하우를 전부 보내줬다”며 “합격한 학생이 나를 찾아와 ‘면접을 보고 나서 초중고교를 다닌 12년을 보상받는 심정으로 대학을 다니면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 학생이 수업 중에 교수한테 이모티콘을 보낸다?
켄텍 에너지공학부장인 김경 교육혁신센터장이 수업 중에 강의실 사방의 모니터로 학생들의 표정과 대화 내용을 세밀하게 살핀다.
학생들은 AI 분석 기술이 구현된 액티브 러닝 클래스룸(Active Learning Classroom·ALC)’에서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은 소그룹을 짜서 특별한 책상에 앉아 있다. 토론 주제가 주어지자 학생들은 라이브 세미나, 토론을 하고 나중에 교수의 코칭(피드백)이 이뤄진다. 학생들이 원형으로 앉을 수 있는 책상의 스위치를 누르면 모니터가 올라온다. ALC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학생들을 포커싱한다. 태블릿과 PC로 자료 검색, 협업 문서 작성, 웹사이트 업로드, 비디오 재생 등이 가능하다.
켄텍은 국내 최초로 미국 미네르바 프로젝트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도입했다. 융합형 커리큘럼과 능동형 학습을 극대화한 플랫폼에서 학생 주도 토론 등의 학습이 이뤄진다. 수업 전 과정은 녹화돼 학생 참여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켄텍이 자체 개발한 30여 가지 AI 모니터링 시스템은 학생들이 수업 중에 나누는 대화 내용을 추적해서 학생의 지식 구조를 추출해 교수 태블릿으로 보내준다. 주로 누가 토론을 주도하면서 어떤 키워드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학생 개인의 관심 분야와 역량을 파악할 수 있다. 기존 팀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을 놓치면서 팀 퍼포먼스만 주목받는다. 하지만 ALC에서는 개별 학생의 의식적인 시그널을 전부 감지하면서 학습 데이터를 모으기 때문에 선택적, 맞춤형 피드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팀 플레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정까지 AI가 체크한다. 팀 수업을 하다 보면 기분의 변화가 있게 마련. 수업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거나 막히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그때 학생들이 짓는 불편한 표정과 동작을 카메라와 AI가 감지하면 김 교수가 바로 ‘핀 포인트 소통’을 한다.
수업 진행은 쌍방향이다. 학생도 ALC에서 실시간으로 교수와 수업 평가를 한다. 학생이 바로 자리에서 ‘질문이 있어요’, ‘어려워요’ 캐릭터 이모티콘을 누르니 김 교수의 설명 피드백이 바로 온다. 이해가 잘 되면 학생들은 ‘좋아요’ 반응을 보낸다. 이런 식으로 수업 전 시간에 걸쳐 축적된 학생의 실시간 감정 표현과 피드팩은 자동으로 강의 평가가 된다. 이 데이터가 학생의 스토리로 저장되고 학교는 ‘창업 또는 연구’ 진로 선택의 지표로 활용한다. 김 교수도 학생들의 수업 시간 전체 이모티콘 패턴을 분석해 수업 난이도 등을 재조정하며 학생들이 더 만족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을 찾는다.
김 교수는 ALC 학습 분석 시스템 개발로 지난해 미국교육학회(AERA) 최우수 젊은 연구자상, 미국교육공학회(AECT) 최우수연구상, 최우수개발상을 수상했으며 관련 특허 등록도 마쳤다.
● 너도 나도 1등! 에너지 분야 특화 융합 ‘마스터’의 진로를 찾다
학부, 대학원생들은 모두 에너지공학부 소속이다. 켄텍은 세계 최초로 단일 학부 무(無)학과 체제를 운영한다. 세부 전공격인 5개 트랙(에너지 AI, 에너지신소재, 차세대 그리드, 수소에너지, 환경·기후 기술)을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
전공에 묶여 특정 루틴의 학습만 하게 되는 벽을 허물었다. 학생들은 자기 주도로 5개 트랙 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학생은 자신만의 연구 스토리 카테고리를 확장해 나간다.
1학년 김예은 씨도 입학 전에는 유전자 공학 연구를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식물 품종을 개발하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환경·기후 기술과 신소재 관련 융합 연구를 해서 친환경 섬유를 개발하겠다는 목표가 새롭게 생겼다.
학생들이 생각을 바로 실천에 옮겨 외부 공모전 수상을 하거나 학회에서 초청을 받는 경우도 있다. 김 교수는 “수소에 관심 있는 신입생이 데이터 수업을 듣고 지방자치단체별 수소자동차와 충전기 수 등을 조사해 보급 확산의 적절 유무를 따져내더라. 이 프로젝트로 수소 관련 학회에서 발표 초청까지 받았다. 학생들이 여러 분야 정보를 갖고 노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각자 다른 트랙을 공부한 학생들이 상호보완 관계로 뭉쳐 또 다른 융합 연구에 나서기도 한다. 학생들은 특화된 에너지 분야 예비 전문가로 수업과 프로젝트 등에서 자기만의 영향력을 갖는다.
당연히 시험 등수는 의미가 없다. 트랙 스토리가 다른 학생들은 ‘나도 너도’ 1등이다. 장현규 씨는 “똑같은 화학을 한다 해도 나는 배터리, 너는 촉매, 다른 친구는 소재를 공부할 수 있다. 시험을 보면 등수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친구에게 전부 알려줄 수 있다. 다른 대학에서는 선배들로부터 귀중하게 전해 내려온다는 시험 족보가 있다는데 여기서는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학기마다 받는 성적표도 다른 대학과 다르다. 학점뿐만 아니라 연구 행보를 알 수 있다. 성적표 앞면에는 교과목 학점이, 뒷면에는 지금까지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 풀 리스트가 기재돼 있다.
김 교수는 “학생이 다양한 연구 과정을 거쳐 4학년쯤 되면 특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재가 된다. 소위 ‘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에 이 친구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졸업을 할 때 1등부터 100등까지 학생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는 1등”이라며 “이것이 융복합, 자기 주도 학습의 성공 모델 실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에 대한 국가 경쟁력 개념이 에너지 보유에서 에너지 기술로 점차 이동해가는 시대에 발맞춰 데이터 기반 맞춤형 교육이 학생들의 에너지 분야 학습과 연구 동기를 잘 끌어내냈다는 평가다. 켄텍의 학생 데이터는 시험 결과 정보만 아닌 입학 면접과 강의, 교수와의 소통, 학생 커뮤니티 사교 활동 등을 망라해 얻어진 소스다. 김 교수는 “학교의 목표는 교육 데이터의 ‘성지’가 되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센터장도 “학생들이 창의적 교육을 경험하면서 학교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대학 입시는 학생 선발 경쟁에서 교육 경쟁으로 가야 한다. 켄텍이 변화를 주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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