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부모님을 위한 주거환경 개선팁
고령자에 더 치명적인 낙상 사고… 순간의 실수가 평생 후회 남겨
안전손잡이, 미끄럼방지 스티커… 작은 생활 환경 개선으로 예방
1000만 고령자 시대 코 앞… ‘살던 곳에서 나이들기’ 준비해야
“그냥 넘어지셨을 뿐인데…”
낙상(落傷), 떨어지거나 넘어져 다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사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젊은이라면 작은 타박상으로 끝날 일도 고령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고령자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고관절 골절은 수술을 하더라도 2년 이내 사망률이 30%, 방치할 경우 2년 이내 사망률이 70%에 이른다는 통계마저 있다. 흔히 ‘노인은 넘어지면 끝장’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고관절 골절, 수술해도 2년 내 사망률 30%
고령자는 하체 근력이나 평형 유지 기능이 약해진 데다 유연성이 떨어지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도 넘어지기 쉽다. 뼈와 관절이 약해져 있으니 작은 충격에도 부러지고 금이 간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혹은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등 일상생활 중 50㎝ 정도 높이에서 엉덩방아를 찧었을 뿐인데도 고관절 골절이 일어나기도 한다.
노년기 골절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오랜 시간 누워서 보내거나 활동량이 줄면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근육 손실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가뜩이나 80대면 60대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 근육이 한달 정도 누워서만 지낸다면 다시 그 절반까지 감소할 수 있다.
고령자 낙상이 가장 많은 장소는 항시 거주하는 집안이다. 한국소비자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8~2021년)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고령자 안전사고는 모두 2만 3561건에 이른다. 이중 62.7%(1만 4778건)가 낙상 사고였고, 장소는 주택이 74%나 됐다. 주택 내에서도 침실과 욕실에서 대부분 발생한다. 고령자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다리와 둔부 부상이 늘어난다.
<집안에서 고령자 낙상사고가 많은 장소>
연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합계
침실/방
956
1072
975
824
3827
욕실.화장실
869
872
999
953
3693
문제는 익숙한 장소일수록 방심하기 쉽다는 점이다. 일상 속 예방을 위해서는 집안 환경 개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의 노인가구중 78%는 노인단독가구(노인 1인, 노인 부부)이다 보니 자녀들이 신경을 써야 한다. 다행히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낙상을 대거 줄일 방법도 적지 않다. 물론 가장 가성비 좋은 낙상 예방 활동은 고령자 스스로 평소 가벼운 운동을 통해 근육과 평형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집에 대한 안전예방 활동은 거창하지 않다. 100세카페에 1월 말 소개했던 ‘우리동네좋은사람들’이 지난해 강남구에서 펼쳤던 활동을 다시 살펴보자. 핵심 장비는 안전손잡이, 미끄럼방지스티커, LED센서등의 3종세트 정도다.
1. 욕조 : 고령자가 욕조에서 움직일 때 안전손잡이가 큰 도움이 된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욕실을 가급적 건식으로 유지하는 게 좋다. 이를 위해 샤워 커튼이 권장된다.
2. 화장실 : 샤워의자는 고령자가 앉아서 샤워할 수 있어 낙상 예방에 도움이 된다. 욕실 바닥에는 미끄럼방지 매트를 깔거나 타일형 스티커를 붙인다. 욕실 물청소를 줄이기 위해 남성의 좌식소변 생활화도 권장된다.
3. 침대 안전손잡이 : 가정 내에서 고령자 낙상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는 침실과 화장실이다. 침실이라 해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오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침대 난간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하면 고령자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침대에서 일어설 때 의지도 된다.
4. 침실-화장실 간 LED 무선 센서등 : 고령자가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 전등 스위치가 멀면 불을 켜지 않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움직이면 자동으로 켜지는 무선 센서 등을 설치하면 쉽게 조도를 확보할 수 있다.
5. 장애물 제거 및 동선 최적화 : 바닥에 늘어진 전선줄이나 카펫 모서리도 고령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흉기가 될 수 있다. 동선상의 장애물을 없애거나 재배치하고 불필요한 가구도 정리해 여유 공간을 확보한다. 부모님 집에는 출가한 자녀들의 물건이나 아까워서 못 버린 물건 등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이 많다. 이것들을 치우는 것도 부모님 낙상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일본서는 고령자 60% 이상이 욕실 개조공사
세계 최고 고령화율을 자랑하는 일본에서는 간병 이전에 간병받을 상태로 가는 것을 막는 ‘개호(介護·돌봄, 간병) 예방’이라는 개념이 널리 인식돼 있다. 이를 위해 개인도 국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예컨대 직장인이 정년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주택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오랜 세월 대출을 갚은 뒤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 주택의 문턱을 없애고, 미끄럼 방지 조치를 하며, 안전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고령자가 사용하기 쉽게 바꾸는 것이다.
그 마중물 노릇을 하는 것이 한국의 장기요양보험과 유사한 개호보험에서 지원하는 주택수선비용이다. 액수는 20만 엔(약 200만 원) 정도지만 여기에 지자체 지원 등을 합치면 최대 100만 엔까지도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것을 시드머니로 해 자신의 퇴직금을 더해 노후를 살아갈 집으로 고쳐나간다는 것이다.
실제 개호보험에서 보조금이 나오는 수리 항목은 안전손잡이 부착, 바닥의 단차 해소, 미끄럽지 않은 마루로 변경, 여닫기 쉬운 문손잡이로 개선, 변기 교체 등에 들어가는 돈이다. 일본 고령자 60% 이상이 욕실 개조공사를 벌인다는 통계도 있다. 주택 여건이 가능하다면 휠체어가 다닐 정도로 여유있게 확장하려 노력한다.
“초고령사회 욕실, 면적 키우고 건식으로 바꾸자”
2021년 12월 혼자 살던 77세 노인이 목욕을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무려 15일이나 갇혔던 사건이 발생했다. 문손잡이 고장 탓이었는데, 욕실에 휴대전화도 없이 들어간 것이 불운이었지만 수돗물을 마실 수 있었고, 한겨울 집안 난방도 후끈하게 유지됐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지인의 신고로 구조된 노인은 건강에 별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하튼 우리 인식 속의 욕실은 좁고 밀폐된 공간이다. 욕실전문기업 새턴바스 정인환 대표는 초고령 시대에는 비좁은 욕실을 거실로 내오는 일종의 ‘욕실문화 개선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욕실은 더 넓고 개방된 공간으로 끄집어내 주거 공간의 일부로 삼아야 합니다. 1인 또는 2인 가구 시대에 굳이 밀폐할 필요도 없지요. 요즘 고급 호텔에 가면 욕실을 키우고 거실과 일원화한 레이아웃이 적지 않아요.”
그가 보여주는 샘플들은 거실과 오픈된 형태로 사용하는 건식 욕실이다. 문 대신 칸막이 정도로 공간은 분리돼 있다. 아예 침실과 베란다를 트고 베란다에 프리스탠딩 욕조를 놓은 레이아웃도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가는 길은 벽을 따라 저절로 조명이 켜지는 안전바가 달려 있어 한방 중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는 100세 시대에는 아예 주택 설계단계부터 이같은 디자인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재건축 연한을 채운 아파트만 수십만 채입니다. 가구주 대부분이 40~50대 이상으로 10~20년 후 입주할 때쯤이면 고령자에 가까워지겠죠. 이 분들이 살 집을 30대 시절 살던 것과 똑같은 구조로 짓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1000만 고령자시대,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기’
각종 조사에서 고령자는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기(aging in place)’를 원하지만, 집에서 지내기 불편해지면 쉽게 요양기관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고령자 스스로가 자립해서 생활하고 또 누군가가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더욱 오래 자신의 집에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2025년이면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고령자는 1000만 명을 넘어선다. 요양시설을 아무리 지어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고령자들이 살던 집에서 보다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방안을 사회 모두가 찾아내야 한다.
주택 리모델링이든, 안전용구 설치든, 아니면 간단한 집안 정리든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김종훈 ‘우리동네좋은사람들’ 대표는 4월 초 서울 강남구보건소에서 열린 강좌에서 “어버이날 부모님께 낙상 백신을 선물하자”고 제안했다. 주사 한방으로 큰 질병을 예방하듯이 부모님댁에 낙상 방지를 위한 조치를 조금씩이나마 해드린다면 그 어떤 것 보다 좋은 어버이날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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