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의료계, 갈등보단 힘 합쳐야 ‘부모돌봄’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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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임순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나임순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돼 있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에 반발해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2020년 의사 파업 이후 의료 현장의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간호법안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커지게 되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도 커지고 있다.

간호법안의 제정 취지는 순수하다. 인구 고령화 등 시대 변화에 맞게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지역사회로 넓혀 집으로 찾아가는 간호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지난 3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숙련된 간호사의 확보가 국가적인 과제라는 것도 깨달았다.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제안 취지라고 본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안이 ‘부모 돌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부모님 돌봄은 간호사에게 맡겨 주십시오!’라는 구호 아래, 간호법안이 고령의 부모로 인한 가족 갈등과 고민, 희생을 막아 주는 ‘가족 행복법’이라고 말한다. 간호법안이 제정되면 우수한 간호 인력을 지역사회에 배치하고 장기근속을 유도해 어르신들의 돌봄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 또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짚어주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재택, 장기요양기관 등 지역사회에서 돌봄·의료 서비스 제공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25년에는 1000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게 어르신들을 잘 모실 수 있는 의료·요양·돌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간호법안이 시대적 요구와 조응하는 해법일까. 간호법안의 핵심이자 가장 큰 갈등 사항이 의료법에는 없는 ‘지역사회’ 문구가 간호법안에 처음으로 포함되는 것이다. 앞으로 막대한 시장이 될 의료·요양·돌봄 서비스 영역이 마치 간호사만의 전유물이 될 것을 많은 보건의료단체가 우려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독자적으로,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면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요양보호사단체, 간호조무사단체 등이 제기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지금 보건 의료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급증하는 의료·요양·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범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얻은 결과는 여러 직역의 협업이 있어야 의료·요양·돌봄 서비스가 온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왕진 의사, 방문 간호사, 재택 물리치료사, 요양보호사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협업을 해야 어르신들이 원하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그 시범사업을 통해 확인했다.

이처럼 미래에 다가올 의료·요양·돌봄 현장에서는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간호사, 의사 등이 함께 우리 부모님의 곁을 지켜야 한다. 다른 직역의 협조 없이 간호사만 홀로 ‘부모 돌봄’을 하겠다는 것은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의료·돌봄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간호법안만으로는 ‘부모 돌봄’도 ‘가족 행복법’도 되지 않는다. 최선의 대안이 아니다.

이제 초고령사회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줄여 건강보험 재정의 낭비도 줄이고, 어르신들의 삶의 질도 함께 높일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70년 된 의료법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자. 의료기관 밖에서, 재택에서 의료인들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나눠주고,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 돌봄·요양에 관한 법률도 함께 개편해야 한다.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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