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을 찾아 이른바 ‘구급차 뺑뺑이’를 돌며 ‘표류’하는 환자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밤을 새워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오늘도 고민한다.
응급의료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도 나서 필수의료 지원 대책과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일반적인 외래 진료와 달리, 중증 응급환자일수록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숙련된 다수의 보건의료 인력들이 집약적으로 필요하다.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등 다양한 보건의료 직역과 협력없이 응급의학과 의사 혼자서 양질의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인력들과 의료장비, 수술실 중환자실 입원실과 같은 병원 시설, 즉 의료 자원은 한정돼 있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의 큰 틀 안에서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의료 자원 가운데, 과연 응급의료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어느 정도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수가 등 지불보상 체계가 달라 비교가 불가한 선진국의 응급의료 체계와 나란히 놓고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문제를 의사 수 부족으로만 돌리기엔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병원이나 의사 개인의 선의에 기대어 응급의료 문제를 해결할 단계도 이미 지났다. 환자 ‘표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낡은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이 이제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수준에 걸맞게 변화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어떤 규제나 채찍만으로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는 없다. 현재 입법예고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응급환자 수용 거부를 병원 사정과 상관없이 아예 금지하도록 했다. 이로 말미암아 의료계에서는 향후 응급실에서 환자 수용 가능 문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는 이유로 전공의나 전문의가 처벌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환자들의 ‘표류’를 막기 위해 최종 진료가 가능할 정도의 진료 역량이 충분한 응급의료기관들이 지역마다 돛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응급의료기관은 책임감을 갖고 환자를 수용하고 119구급대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직접 의료지도 아래서 환자를 평가하고 중증도를 올바르게 분류해 사전에 응급의료기관에 연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부터 응급의료기관까지 단계별 보건의료 제공자의 책임성과 역량 확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응급의료 부문에 정교한 정책 설계, 집행과 함께 과감한 재정 지원이 이번 기회에 시작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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