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팀은 대표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우승 주역은 9전 5선승제에서 1, 5, 9경기를 모두 승리한 안재형 전 한국 대표팀 감독(58)이었다. 안 감독은 2년 뒤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유남규와 함께 짝을 이뤄 남자 복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 감독은 요즘 작년 1월 출범한 한국프로탁구리그 초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프로탁구는 전용 경기장인 스튜디오 T(경기대 수원캠퍼스 내)를 갖고 있고, 전 경기가 케이블TV와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되는 엄연한 프로리그다. 한국프로탁구리그는 14일 열린 내셔널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으로 두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1부 리그 격인 코리아리그에는 남자 8개팀, 여자 5개 팀이 참가했다. 2부 리그인 내셔널리그에는 남자 7개팀, 여자 8개 팀이 출전했다.
안 감독은 “‘맨땅에 헤딩’ 하듯이 출범했지만 막상 시즌을 치르고 보니 많은 분들이 잘했다고 얘기해 주신다. 두 번째 시즌은 관중들에게 더 재밌게 다가가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첫 시즌에 비해 두 번째 시즌엔 관중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3번째 시즌에는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은 관중분들이 찾아오시게 하려 한다. 현재는 한 곳에서만 대회를 열지만 여러 도시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경기를 할 수도 있다. 좀 더 팬 친화적인 리그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감독은 국가대표 탁구 선수, 국가대표 지도자를 거쳐 프로리그 위원장까지 맡은 ‘탁구 레전드’다. 그는 국가대표 선수 시절 중국 탁구 국가대표 선수였던 자오즈민(60)과의 국제결혼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던 두 사람은 5년간의 연애 끝에 1989년 결혼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과 중국은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라 갖은 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1989년 10월 제3국인 스웨덴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했고, 그해 12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안 감독은 또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안병훈(32)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자오즈민은 서울 올림픽에서 여자 복식 은메달과 여자 단식 동메달을 땄다. 안병훈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골프에 출전했으니 가족 모두가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올림픽 가족’이기도 하다.
안 감독은 안병훈을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잠시 ‘골프 대디’로 외도를 했다. 어린 시절 탁구보다 골프에 두각을 나타냈던 안병훈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로 골프 유학을 떠났고, 안 감독은 2007년 대한항공 감독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2009년 US아마추어골프챔피언십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안병훈은 대학 재학 중이던 2011년 프로로 전향해 유러피안투어(현 DP월드투어) 2부 투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안병훈인 2부 투어에서 뛰던 3년간 안 감독이 직접 아들의 캐디백을 맸다. 안 감독은 “전문 캐디를 고용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내가 직접 백을 맸다. 캐디만 한 게 아니라 숙소 예약, 운전 등도 하며 유럽 전역을 다 돌아다녔다. 고생스럽다기 보다는 재미있었던 추억”이라고 말했다.
안병훈은 2015년 유러피안투어 BMW PGA 챔피언십에서 6타차 우승을 차지하며 단숨에 세계적인 골퍼로 떠올랐고, 이후 PGA투어를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안 감독은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하며 다시 ‘탁구인’으로 복귀했다.
현장을 떠나 프로리그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 감독은 최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건물 5층에 탁구대 6~7개가 들어가는 조그만 탁구장을 열었다. 안 감독의 표현대로 하면 탁구인들을 위한 ‘놀이터’다.
안 감독은 “예전부터 탁구는 엘리트는 물론 생활 체육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생활 체육 에너지를 흡수해야 엘리트 탁구도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엘리트 선수든 동호인이든 내가 만든 놀이터에 와서 같이 놀고 즐기면 얼마나 좋겠다”고 말했다.
굳이 신촌에 자리 잡은 것은 접근성 때문이다. 도심에서 벗어나면 좀 더 넓은 탁구장을 열 수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탁구장을 열기로 했다는 것이다. 안 감독은 “신촌은 젊은이들의 거리다. 젊은 친구들도 와서 운동할 수 있고, 동호인들도 와서 운동할 수 있다. 엘리트 선수들도 언제든 와서 원 포인트 레슨도 해 줄 수 있다. 무엇보다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름은 ‘아이핑퐁 탁구클럽’으로 정했다. 아이는 중국어로 사랑이라는 뜻이고, 핑퐁은 영어로 탁구를 의미한다. “중국 출신 아내 때문에 중국어를 쓴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전혀 그런 건 아니다. 어감 때문에 쓴 것뿐이다. 내가 워낙 탁구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지었다”며 웃었다. 그는 또 “아이핑퐁에서 아이를 영어로 쓰면 ‘내가 곧 탁구’라는 뜻이 된다. 그런 의미도 꼭 담고 싶었다”고 했다.
탁구는 일견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쉽지 않은 종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안 감독은 여유를 갖고 천천히 접근할 것을 조언했다. 안 감독은 “탁구는 공이 작고 가벼워서 처음이 어렵다. 처음에는 공만 줍다가 끝날 수도 있다. 그 어려움을 알고 편하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3~6개월을 꾸준히 다니면 탁구공이 오고 가는 속도감을 알게 된다. 그걸 알고 치면 랠리가 된다. 일단 공이 오고 가기 시작하면 진정한 탁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탁구를 너무 경쟁적으로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안 감독은 “탁구를 치는 목적이 중요하다. 남을 이기려고 하면 몸을 혹사해야 하고, 그러면 몸이 괴로워진다. 하지만 탁구 자체를 즐기려고 하면 정말 오랫동안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때로는 목표를 낮게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실내 운동인데다 크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는 탁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은 운동이기도 하다. 안 감독은 “탁구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도 적합한 운동이다. 부상 위험이 적고 체력 단련에도 좋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면 더 즐겁게 오래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P.S) 안 감독은 선수 시절 말년이던 1990년대 후반 골프를 시작했다. 어린 안병훈을 골프 연습장으로 데려간 게 안병훈이 PGA투어에서 뛰는 시작이 됐다. PGA투어를 아들로 둔 안 감독의 골프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한동안 안 감독은 자신의 골프스코어를 85타 전후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는 70대 타수를 여러 차례 기록 중이다. 안 감독은 “한창 캐디백을 메고 다니고 국가대표 감독을 할 때는 골프를 치긴 해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편한 마음으로 쳐서 그런지 스코어가 잘 나온다”고 했다. 정작 아들과 함께 라운딩을 한 것은 2~3번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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