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美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재··· '기로에 선 한·미 반도체 기업들'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5월 22일 17시 52분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이 미국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판매 중단을 단행했다. 지난 21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CAC 온라인 안전심사실은 화웨이 판매 제품에 탑재되는 마이크론 반도체가 심각한 네트워크 안전 문제에 대한 숨겨진 위험을 초래하고, 더 나아가 국가 안전에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구매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네트워크 안전에 대한 숨겨진 위험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마이크론 로고 및 빌딩. 출처=마이크론

마이크론 판매 중단 사태는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을 겨냥한 첫 제재다. 마이크론은 성명을 통해 “중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CAC의 판매 중단 통지를 받았다”라면서, “우리는 결론을 평가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이 이 결정에 항소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중국 당국과 계속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미·중 반도체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분위기다.

미·중반도체 분쟁, 반도체 및 과학 법 서명으로 시작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지난해 8월 9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연방 법령이다. 반도체 및 과학법은 미국 내 첨단 산업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으로, 미국 영토 내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는 것에 대해 390억 달러의 보조금과 장비 제조 비용에 대한 25%의 투자 세액 공제, 반도체 연구 및 인력 교육을 위한 130억 달러 지출 등이 포함돼 있다. 쉽게 말하자면 미국 내에서 반도체 사업을 하려면 미국 내에 공장을 지으라는 말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마이크론 뉴욕 주 반도체 공장 설립 기념식에서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론 CEO 산자이 메로트라(Sanjay Mehrotra)와 함께 서 있다. 출처=마이크론

이 법안은 인공지능 및 첨단 산업의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국의 기술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의도가 크다. 이미 인텔이나 글로벌 파운드리,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반도체 및 과학법이 통과되기에 앞서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확정했으며, TSMC나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대만과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 내 사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또한 반도체를 구매하는 기업들도 미국 내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도입하겠다고 결정하고 있다.

반도체 및 과학법은 직접적으로 중국의 첨단 산업을 겨냥하고 있다. 반도체 및 과학법을 통해 연방 지원금을 받은 기업들은 향후 10년 간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우려 국가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늘릴 수 없으며, 28nm 이상의 구형 반도체만 취급할 수 있다. 게다가 법안 통과에 앞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도 중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됐으며, 엔비디아와 AMD 역시 인공지능 연산에 필요한 반도체를 중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됐다.

자구책 마련하는 중국 정부, 다음 타격 준비하는 미국

중국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 SMIC 사무실 앞에 오성홍기가 가장 높게 걸려있다. 출처=SMIC

첨단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반도체를 수급할 수 없게 되자 중국은 자체 반도체 생산으로 눈을 돌린 상황이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양쯔메모리(YMTC)는 미국 직원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공급망 정비를 시작했으며, 중국 파운드리 기업 중신궈지(SMIC)도 ASML 장비 없이 7nm 공정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는 등 자구책을 펼치고 있다.

화웨이와 바이두, 알리바바 등의 기업도 구형 반도체를 활용한 인공지능 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국 현지 매체 신랑재경은 작년에만 중국 웨이퍼 업체 5천746곳이 등록을 취소하거나 말소했다고 보도하는 등 상황은 여의치 않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 첨단 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반도체 및 과학법에 이은 ‘중국 경쟁 2.0’ 법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월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및 민주당 소속 상임의원장들은 기자회견에서 생명공학과 바이오 제조 등 투자가 필요한 다른 주요 기술 분야를 선정하고, 동맹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할 초당적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초안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법안이 통과된다면 중국 내 첨단산업 전반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맞서는 중국, 돈줄 쥐고 흔든다

미국의 반도체 패권에 대항해 중국이 빼든 카드는 반도체 기업들의 돈줄이다. 이번에 제재 대상이 된 마이크론은 매출의 11%가 중국에서 나오며, 엔비디아나 인텔, 브로드컴 등의 주요 기업들도 의존도가 상당하다. 퀄컴의 경우 중국 매출 비중이 64%에 달할 정도다. 이들 기업에 제재가 들어가면 주가 등에 영향을 미쳐 연쇄 피해를 낳을 수 있다. 경기 부양으로 고심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도 우려할만한 부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 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우리나라 반도체 시장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 3위 기업이며, 1위와 2위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다. 마이크론의 중국 내 사업이 타격을 입는다면 당장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으나, 그 다음 차례는 미국 내 반도체 및 과학 법에 동조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모두 중국에 33~35조 원대 투자를 해놓은 상황인데, 현재 미국에도 공장을 새로 건설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양쪽에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나, 어느 한쪽은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결국 이번 마이크론 제재는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패권 싸움의 시작점이다. 특히 중간에 낀 우리나라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며, 두 국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경제가 아닌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데, 결국 모든 부담은 기업이 지는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닷컴 IT전문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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