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에도 MTB로 몬태나 산악 달려요” 스티븐스 전 미국대사의 자전거 사랑[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7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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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청남도 예산에 왔을 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죠. 한국을 알고 싶었죠. 시골길이지만 자전거는 저를 어디든 데려다줬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죠.”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5월 1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근처 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5월 1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근처 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한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70)은 “자전거를 타며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부터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에서 오빠, 남동생과 자전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시아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홍콩에서 공부할 때, 외교관이 된 뒤에는 방문한 나라를 자전거로 구석구석 돌아보며 풍경도 감상하고, 사람도 만나고, 문화를 직접 느끼며 배웠다. 중국, 유고슬라비아, 한국, 포르투갈, 인도 등을 거치며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는 “외교관은 그 나라를 잘 알아야 하는데 자전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평소 테니스도 즐기는 그에게 자전거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였다.

1980년대 주한미국대사관 정무팀장, 부산 미국영사관 선임영사로 한국에 왔던 그는 대사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자전거 투어를 많이 했다. 특히 4대강 자전거길이 만들어질 때인 2010년 ‘심은경(스티븐스 소장의 한국명)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주관하는 등 국내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누볐다. 그는 “한국의 강변 자전거 도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우수한 시설”이라고 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큰길과 자전거길도 달렸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면도로를 달리며 한국의 곳곳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봄이면 달래와 냉이, 쑥 등 나물도 볼 수 있고 개나리 진달래 등 꽃도 아름답다. 뭐든 주는 시골 사람들의 정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강원도 오대산 정상에 오르는 등 산을 달리며 한국의 자연도 즐겼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왼쪽)가 대사 재임시절 ‘심은경 대사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제공.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왼쪽)가 대사 재임시절 ‘심은경 대사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제공.
대사를 마치고 1년 뒤 다시 한국을 방문한 그는 경기 양평을 출발해 충주, 새재길, 상주, 구미, 대구, 창녕, 부산 등 한강과 낙동강의 전 구간을 종주해 4대 강 가운데 한강과 낙동강의 자전거 길을 완주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됐다. 스티븐스 소장은 경북 구미시 쌍암고택(중요민속자료 제105호), 대구 달성군 현풍도깨비시장 등을 돌아보며 한국의 멋과 문화도 느꼈다.

“낙동강변을 달릴 때는 6·25 전쟁 때 한국과 UN군이 북한을 치열하게 막았던 낙동강방어선전투의 현장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다시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재의 낙동강 구간은 매우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었습니다. 먼 옛날 신라와 가야의 싸움터인 가야진을 지날 때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느꼈습니다.”

스티븐스 소장은 2017년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미국대사관이 기획한 자전거국토종주단의 일원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달리기도 했다. “강원 철원에 아직 남아 있는 북한 노동당 건물을 보면서 6·25 전쟁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연을 맺고 있는 그는 “근 50년간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 지켜봤다. 정말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국민은 성실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정도 많다. 교육열도 대단하다. 창의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했다”고 회상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왼쪽에서 다섯번째)가 5월 14일 한국 지인들과 사이클 타기 전에 포즈를 취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왼쪽에서 다섯번째)가 5월 14일 한국 지인들과 사이클 타기 전에 포즈를 취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워싱턴에 살고 있는 스티븐스 소장은 연 1, 2회 한국을 방문하는데 올 때면 한국 지인들과 꼭 라이딩을 즐긴다. 5월 14일에도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61)와 마스터스 철인3종 강자 이명숙 씨(61) 등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당댐 넘어까지 왕복 58km를 함께 달렸다. 이번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수 김창완 씨와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역임한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도 스티븐스 소장의 라이딩 친구들이다.

한국의 어디가 가장 아름다울까? 스티븐스 소장은 “어머나 세상에…. 너무 아름다운 곳이 많아서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50년 가까이 한국을 지켜보며 서울 한강이 변해가는 모습도 봤다. 동해, 남해, 서해에 낙동강 등 4대 강도 멋지지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강은 시민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명소다”고 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제공.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제공.
미국에서 가족들을 만나도 자전거를 탄다. 그는 “오빠가 몬태나에 사는데 모이면 남동생과 어울려 MTB를 타고 산을 달린다. 몬태나에는 70세 넘는 노인들도 MTB를 잘 탄다”고 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망팔(望八)’인 그는 자전거 때문에 건강하다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탓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워싱턴의 모든 도로를 자전거 타고 달렸다. 워싱턴엔 미국 50개주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자전거 덕분에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자 건강의 도구”라고 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스포츠를 즐긴다. 홍콩에서 공부할 땐 하이킹을 했고 카누도 탔다. 외교관으로 사람들과 친해지기 가장 쉬운 게 스포츠 활동이다.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는 코로나 19 때 요가도 시작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5월 1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근처 도로에서 한국 지인들과 사이클을 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5월 1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근처 도로에서 한국 지인들과 사이클을 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스포츠 활동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도 챙길 수 있지만 리더십도 키울 수 있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도 배울 수 있죠. 그런데 한국의 아이들은 공부에 치여 운동을 많이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정말 대단합니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렇게 빨리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이 그 놀라운 교육열 덕분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열이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학생들하고 낙동강 변에서 자전거를 함께 탔는데 참 버거워하던 표정이 생각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중요합니다. 건강해야 공부도 더 잘하고 창의적이 됩니다.”

스티븐스 소장은 “건강하니 이렇게 한국도 자주 올 수 있지 않나. 아름다운 제주도를 많이 가봤지만 아직 자전거 타고 돌지는 못했다. 조만간 제주도 한 바퀴를 돌겠다”며 활짝 웃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사이클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사이클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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