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날 운동시키니”… 야구계 골프 고수 양상문의 70대 스코어 유지하기[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8일 12시 00분


양상문 감독이 롯데 감독 시절이던 2019년 당시 이승엽 해설위원(현 두산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DB
양상문 감독이 롯데 감독 시절이던 2019년 당시 이승엽 해설위원(현 두산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국 여자 야구 대표팀은 요즘 홍콩에서 열리고 있는 제3회 아시아야구연맹(BFA) 여자야구 아시안컵에 출전하고 있다. 이 대회에는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여자야구월드컵 출전권이 걸려 있는데 세계랭킹 10위인 한국은 일본(1위), 인도네시아(세계랭킹 집계되지 않음), 필리핀(14위) 등과 함께 B조에 속해 있다. 한국 대표팀의 목표는 조 2위로 아시안컵 슈퍼라운드에 진출한 뒤 8월 또는 9월에 열릴 야구월드컵 본선 그룹 경기에 나서는 것이다.

한국 여자 야구에는 엘리트 선수를 위한 학교 팀이나 실업팀이 없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트라이아웃을 통해 이번 대회에 출전한 대표선수 20명을 선발했다. 고교생과 대학생이 많고 학교 선생님과 가정주부 등 동호인 야구를 즐기는 다양한 선수들이 뽑혔다.

양상문 한국 여자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과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상문 감독 제공
양상문 한국 여자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과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상문 감독 제공

하지만 선수단과 달리 코칭스태프의 면면은 화려하다. 프로야구 LG와 롯데 등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양상문 감독(62)이 한국 여자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다. 투수코치는 LG에서 활약했던 이동현과 KIA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정용운이다. 타격 및 수비는 국가대표 2루수 출신 정근우가 지도한다. 배터리 코치는 롯데와 SK 등에서 뛰었던 허일상이다.

양 감독은 “얼마 전 상비군 여자 선수 60여명을 대상으로 레슨을 한 적이 있다. 열정적으로 배우는 그들의 모습에 너무 감동해 감독직에 지원했다”며 “내가 가진 야구의 모든 걸 전해주고 싶었다. 고생하는 선수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고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9년 롯데 감독직을 그만둔 뒤 양 감독은 2021년부터 SPOTV 야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엔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직도 맡았다.

여자 야구 대표팀을 맡으면서 양 감독은 주중과 주말이 없는 생활을 해 왔다. 주중에는 2~3회 야구 중계를 하고, 주말에는 경기 화성드림파크에서 열리는 대표팀 훈련을 지휘했다. 말은 대표팀 감독이지만 거의 무보수 봉사나 마찬가지다. 주말 훈련마다 10만 원의 일당이 나오는데 이를 코치들과 함께 나눈다. 사실상 기름값 정도다. 양 감독은 “우리 여자 선수들은 말 그대로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을 한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로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애완견 가을이와 산행을 다니는 양상문 감독. 양상문 감독 제공
애완견 가을이와 산행을 다니는 양상문 감독. 양상문 감독 제공

부산이 고향인 양 감독은 2019년 롯데 감독직을 그만둔 뒤엔 소위 말하는 ‘낙향’을 했다. 새로 터를 잡은 곳은 소백산 기슭에 있는 충북 단양 소백산 영춘면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구인사를 다녔는데 때마침 이곳 주변에 나온 땅을 구입해 전원주택을 지었다. 그는 맑은 공기와 좋은 기운을 가득 받으며 이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양 감독이 말하는 최고의 건강 비법은 등산이다. 등산이라고 하면 다소 거창하게 들리지만 집 주변의 야산을 가볍게 오르내리는 것이다. 집에 있을 때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산을 하는데 이유는 바로 애완견을 운동시키기 위해서라고. 양 감독은 “강아지 운동 삼아 약 6km 정도를 왕복한다. 처음엔 내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좀 지나서 생각해보니 강아지가 나를 운동시키는 거더라. 아내, 강아지와 함께 다니는 짧은 산행이야말로 내 건강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 시절 이대호와 함께한 양상문 감독. 양 감독의 조언으로 이대호도 산에 다니며 하체를 단련했다. 동아일보 DB
대표팀 시절 이대호와 함께한 양상문 감독. 양 감독의 조언으로 이대호도 산에 다니며 하체를 단련했다. 동아일보 DB

또 하나 그는 근력 강화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집이 산중에 있으니 딱히 피트니스센터 등을 갈 수도 없고 갈 이유도 없다. 7kg 무게의 아령 두 개가 그의 근력을 책임진다. 양 감독은 “야구 중계 등으로 출장을 갈 때도 아령 두 개는 꼭 챙겨서 간다. 숙소에서도 틈나는 대로 아령을 들곤 한다. 아령 두 개만 있으면 팔과 어깨, 허벅지, 허리 등 모든 부분의 근력 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각종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가 빼놓지 않는 건 골프 연습이다. 주 1회는 연습장을 찾아 샷을 가다듬는다. 지인들과는 한 달에 1, 2회 라운딩을 한다.

양 감독은 야구계에서는 알아주는 골프 고수다. 매년 열리는 야구인 골프대회에서 시상식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2009년 경기 남양주 해비치CC에서 열린 제28회 야구인골프대회에서 양 감독은 77타를 쳐 메달리스트(핸디캡 적용전 최소 타수상)을 차지했다. 생애 베스트 스코어는 2011년 기록한 68타다.

2013년 자선골프대회에서 류현진(토론토)와 함께 한 양상문 감독. 동아일보 DB
2013년 자선골프대회에서 류현진(토론토)와 함께 한 양상문 감독. 동아일보 DB

양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하던 1980년대 후반에 처음 골프를 시작했다. 기교파 왼손 투수였던 그는 좌우 밸런스에 도움이 될까 싶어 오른손 타석으로 골프를 쳤다. 반대쪽으로 쳐서 그런지 당시만 해도 90대 타수를 기록하는 평범한 골퍼였다.

효과는 오히려 야구에서 나타났다. 골프채를 세게 쥐면서 악력이 세졌고, 그 덕분에 구속도 빨라졌다. 양 감독은 태평양 소속이던 1990년 162와 3분의1이닝을 던지며 11승 9패 평균자책점 3.22를 기록했다. 무려 6차례나 완투를 했고, 완봉승도 4번이나 거뒀다. 양 감독은 통산 9시즌을 뛰며 63승 79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3.59의 기록을 남겼다.

골프가 만개한 것은 은퇴 후 왼손 타석으로 바꾸면서다. 그때부터 거리도 늘고, 정교함도 더 좋아졌다.

현역 선수 시절의 양상문 감독. 두뇌 피칭을 하는 기교파 투수였다. 동아일보 DB
현역 선수 시절의 양상문 감독. 두뇌 피칭을 하는 기교파 투수였다. 동아일보 DB

어느덧 60대로 접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싱글 플레이어다. 스스로는 “7자를 그리지 못하면 화가 난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예전에 비해 거리가 많이 줄었다”는 양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스코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내 스코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고 했다.

골프를 잘 치는 비결에 대해 그는 ‘체력’, 그중에서도 ‘하체’를 꼽았다. 양 감독은 “하체가 강해야 안정적인 스윙을 할 수 있다. 골프장에서의 샷 연습도 중요하지만 평소 꾸준한 유산소와 근력 운동 등으로 하체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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