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생각할 질문 던지던 선생님 덕에 과학자가 됐다.”
“아침에 안 되던 거 자기 전 다른 방법 생각나면 신나서 잠이 안 와”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선생님이 ‘그럼 이건 왜 그럴까?’하고 물으시곤 했는데 나는 답을 알 것 같았어요. 그럼 그때부터 가슴이 막 두근두근했었죠.”
올해 삼성호암상 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수상자인 최경신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54)를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최 교수는 어린 시절 처음 화학에 빠졌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 갈색 뿔테안경 너머로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 덕분에 나는 과학자가 됐다”며 “아직도 성함이 기억난다. 권영자 선생님이셨고, 늘 수업에서 배우는 것보다 한 단계 더 생각해야 할 질문을 던지셨는데 그 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전기화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서울대 식품영양학·화학 학사와 화학 석사를 거쳐 미국 미시간주립대 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태양광을 흡수해 에너지를 내는 광전극 물질을 개발하고, 추수하고 남은 옥수숫대나 나무껍질 등 폐자원을 분해해 화석원료를 대체하는 등 친환경 연구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 교수는 “태양광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공짜니까, 효율이 높고 안정적인 광전극 물질을 만들어내면 여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일례로 원래 전기를 투입해 물을 분해해야 얻을 수 있었던 수소를 이제 전기조차 없이도 햇빛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가 입는 옷이나 플라스틱 물건들 모두에는 화석 원료가 들어간다. 버려지는 옥수숫대를 분해해 이 원료를 대체할 물질을 만들어내면 화석 원료를 채굴할 때 발생하는 오염을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과학자가 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최 교수는 “지금도 과학이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 전에 아침에 안 되던 걸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 이래서 안 됐던 건가? 저렇게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너무 신나서 잠이 안 온다. 그래서 자기 전에 실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학자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배우고, 어제까지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직업”이라고 자긍심을 보였다.
“의대 쏠림 현상, 학생들에게 책임 물을 일 아냐” “과학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구체적 진로 정보도 줘야”
최근 국내 이공계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내비쳤다. 최 교수는 “과학자의 길을 택한 학생들이 의사보다 더 좋은 직업 안정성과 처우를 받는다면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될 것이다. 이건 학생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공부하던 시절엔 우수 학생들이 서울대 물리학과, 화학과를 많이 갔다. 그러다 IMF가 터진 이후 순수과학 과제는 뒤로 밀렸고, 많은 과학자들이 내쳐졌다”며 “반면 미국의 화학과 박사 과정은 학비는 물론 월급과 의료보험료까지 대주면서 한 푼도 없이 학위를 딸 수 있는 구조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시기 백신 위기만 봐도 과학기술의 양성은 국가의 자립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문제”라며 “정치하시는 분들이나 행정가들이 국가의 미래를 걸고 과학자 양성에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위해 최 교수는 “고등학교에서 진로를 결정할 때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의사는 뭘 하는지 알지만 과학자는 뭘 하는지 모른다. 구체적인 진로에 대한 정보도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구를 좋아한다면 연구소의 길이 있고, 가르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면 교수를, 세상에 빨리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창업을 할 수 있다. 굉장히 많은 가능성이 있는 직업”이라고도 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묻자 최 교수는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모든 연구는 너무 재미 있지만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좀 더 고민해서 인류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인류의 환경 문제 해결책을 하나씩 하나씩 계속 찾아 해결해 나가는 게 제 꿈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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