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테크 스타트업 퍼밋에는 독특한 기업 문화가 있다. 임직원 대부분이 스마트팜 전문가인 동시에 농사 전문가라는 점이다. 이들은 근무 시간에 논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과일나무를 심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이도 있다. 실전 농업 경험을 쌓아 스마트팜 기술의 연구 개발에 활용하려는 의도다.
세계 스마트팜 기업들이 화려한 기술과 기기를 자랑할때, 퍼밋 임직원들은 묵묵히 농사 현장을 찾아 농민들과 땀흘려 일하고 함께 잠을 잔다. 농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불편을 해소하려 노력한다. 농작물을 직접 기르고 수확한 경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 기술을 연구 개발한다. 이 기술을 현장에서 다시 검증하며 어떤 효용을 내는지,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농민들과 논의하고 개선을 거듭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고민이나 아이디어가 생기면 으레 퍼밋을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힘을 합쳐 달고 향이 좋은 ‘신데렐라 딸기’, 사과 크기에 수박 한 통 분량의 맛을 농축한 ‘애플 수박’ 등 새로운 농작물 품종을 여러 개 만들었다. 퍼밋은 이들 신품종을 자사의 스마트팜에서 재배해 맛과 시장성을 검증한 다음, 농가에 농법을 제공한다.
최근 퍼밋은 닭에게 새송이버섯을 먹여 만든 ‘버섯 먹은 계란’을 내놨다. 먹이의 성분을 그대로 계란에 전달하는 닭의 특성을 활용한 제품이다.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새송이버섯의 특성이 고스란히 계란에 스며든 덕분에, 이 계란은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아주 적다. 이 기술을 응용해 눈에 좋은 성분 루테인을 함유한 ‘강황 먹은 계란’도 연구 개발 중이다.
퍼밋을 이끄는 박선기 대표는 첨단 기술에 실전 농산업 경험을 융합해야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팜이 된다고 믿는다. 기술만 있으면 현장의 요구와 어려움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농산업 경험만 있으면 첨단 기술을 도입해도 좋은 효과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박선기 대표는 기술과 농산업 경험의 융합을 시도하고, 이를 데이터로 만들어 고도화한다.
퍼밋이 파트너 기업 CJ프레시웨이와 함께 노지 작물 사업화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의 90% 이상은 노지에서 이뤄진다. 이들 노지에 있는 온실은 위치와 지형, 기후 모두 달라 스마트팜 기술을 일괄 적용할 수 없다. 노지의 특성이나 농작물의 종류에 따라 스마트팜 기술을 맞춤형 설계해서 적용해야 하지만, 사례가 무궁무진한 탓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할 기술로 박선기 대표는 센서 기술을 주목했다. 노지 온실의 환경과 농작물의 생육 특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데이터로 만드는 센서, 이들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알맞은 농법을 알려주는 중앙 관제 센터가 있다면 어느 곳이든 스마트팜이 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를 증명할 용도로 퍼밋은 스마트팜 모듈형 센서 ‘오렌지 박스’를 만들었다.
퍼밋 오렌지 박스는 이름처럼 노란색 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본체에는 온습도와 이산화탄소, 일사량과 이슬점, 대기압 등 노지 온실의 환경을 시간 단위로 측정하는 각종 센서가 있다. 여기에 흙에 파묻어 설치하는 무선 토양 센서를 더한다. 다른 스마트팜 기술이 대기의 환경 데이터만 얻을 때, 퍼밋 오렌지 박스는 대기는 물론 토양 안팎의 환경 데이터까지 얻는다.
농민들의 유지보수 부담을 줄이려고, 퍼밋은 오렌지 박스의 구조를 간결하게 설계했다. 전력 소모량이 적은 E-페이퍼 화면을 탑재한 덕분에 한 번 설치하면 3년간 배터리 교체 없이 쓴다. 본체 밑에는 자석 탈착식 센서 슬롯이 배치돼 센서와 기능을 손쉽게 더한다. 센서를 통합 제어하는 제어기의 부피는 다른 스마트팜의 그것보다 한결 작고, 구조도 간단해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 비닐하우스나 노지 온실 안 여섯 곳에 퍼밋 오렌지 박스만 설치하면 바로 노지 특화 스마트팜이 된다. 센서만 사용하는 덕분에 구축 비용도 일반 스마트팜보다 훨씬 싸다.
퍼밋 오렌지 박스와 무선 토양 센서는 노지 온실의 환경 데이터를 측정해 통합 관제 센터로 보낸다. 퍼밋은 이곳에서 데이터를 가공, 분석해서 노지의 환경을 개선하거나 농민들이 농작물을 더 잘 재배하도록 도울 해법을 찾는다. 그리고 해법을 누구나 알기 쉽게 가공·편집해서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한다. 농민들은 퍼밋 앱이 주는 정보를 참고해 노지와 농작물을 손본다. 고민을 해결하고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박선기 대표는 오렌지 박스로 농민에게 고효율·저비용 스마트팜 기술을 전달하는 한편, 각종 데이터를 취득해 농산업 기술 전반을 더 좋게 만들려고 한다. 이들이 가진 데이터는 특정한 환경이나 지역에서만 추출한 좁은 영역의 데이터가 아니다. 우리나라 농산업 영역의 90%를 차지하는 넓은 노지와 가지각색 농작물에서 얻은 방대한 데이터다. 퍼밋은 이들 데이터를 취득하면서 라벨링(분류 작업)도 철저히 한다.
라벨링이 없는 데이터는 오히려 독이다. 예를 들어, 같은 지역이라고 해도 산간과 평지의 환경 수치는 다르다. 산간의 온습도 데이터를 평지에 적용하면, 혹은 반대로 평지의 이산화탄소량 데이터를 산간에 적용하면 효과가 없다. 심지어 농작물을 죽이거나 수확량을 줄이는 역효과도 낸다. 산간과 평지의 특성을 정밀히 구분하는 라벨링 작업을 거쳐야만 유효한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퍼밋은 그래서 라벨링된 농산업 데이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데이터를 라벨링하려면 풍부한 농산업 경험이 필수라고도 말한다. 한두 해 농사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오랜 기간 농사를 짓고 수많은 변수, 돌발 상황을 체득한 사람이어야 데이터를 온전히 가공하고 다룬다고 믿는다. 퍼밋 임직원들이 농민의 노하우를 배우고 기록하는 한편, 농산업 경험을 쌓는데 열심인 이유다.
박선기 대표는 충남 천안에 세운 통합 관제 센터에서 매일 전국 농가 2,300여 곳의 데이터를 관리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서 농작물의 품종 특성, 환경 정보를 분석해 가장 알맞은 시기에 농작물을 수확하도록 돕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수확량 증대와 수고의 절감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곳곳의 농가의 환경과 작물 생장 현황을 실시간 분석해 농작물의 유통 구조를 간소화, 비용을 줄이는 기술도 있다. 퍼밋의 자체 실험 결과 이 기술은 농작물의 유통 비용을 30% 이상 절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퍼밋은 자사 스마트팜의 완성도를 높이고 유지보수를 잘 하려고, 그리고 소중한 농산업 경험을 얻으려고 ‘팜 매니저’ 제도를 운영한다. 한 주에 한 번꼴로 우리나라 20개 시·군에 있는 농가 150여 곳에 팜 매니저를 파견한다. 그리고 기술과 기기가 잘 동작하는지, 새로운 변수나 환경 변화는 없는지 점검하는 제도다. 농작물의 재배와 수확 현황을 파악하고 비료, 농기구 등 필요한 장비를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이 제도를 고도화해서 2025년에는 우리나라 전역에 팜 매니저를 파견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박선기 대표의 목표는 센서와 데이터, 스마트팜 등 정보통신기술에 수십년 동안 쌓인 농산업 업계의 지식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가치를 농산업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 계획의 중심에 CJ프레시웨이와 구축 중인 ‘월드 퍼밋 센터’가 있다.
충남 공주에 약 6,000평 규모의 건물로 만들어질 월드 퍼밋 센터는 소규모 농산업 클러스터가 될 예정이다. 퍼밋은 스마트팜과 정보통신기술, 농작물 재배와 신품종 개발, 상품 디자인과 포장, 배송과 수출 등 다방면의 파트너 스타트업을 이 곳에 초청한다. 농작물 연구 개발과 재배, 상품화와 국내외로의 유통 방안을 함께 논의할 목적이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자동화 농산업 기술도 연구한다. 신선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샐러드나 가정간편식 등으로 상품화하는 동시에 포장까지, 모든 과정을 로봇이 하는 구조도 궁리한다.
월드 퍼밋 센터는 농산업 클러스터이자 교육 기관 역할도 한다. 농산업 종사자와 대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농산업 스타트업 창업을 유도한다. CJ프레시웨이와 함께 유망 스타트업의 성장, 농산업 기업의 해외 진출과 상품 수출을 진작한다. 농산업 기업이나 관계자가 꿈을 펴는 장이 되도록 월드 퍼밋 센터를 가꾸려 한다.
박선기 대표는 “지금까지 농산업 경험과 기술을 갈고 닦았다. 농산업 현장의 불편을 줄일 새로운 스마트팜 기술과 가치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이 기술과 가치를 이제 다른 농산업 구성원들과 나누면서 함께 성장하려고 한다. 농산업 스타트업, 종사자 누구나 월드 퍼밋 센터로 와서 꿈을 이루고 함께 성장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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