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건강히 퇴원할 때 가장 큰 보람”[생명 살리는 수술 ①촌각 다투는 중증외상 치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6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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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고려대의료원 공동기획

중증외상 전문의, 연중무휴 근무
매달 10일씩 24시간 당직 강행군
응급 상황에도 침착한 대처 필수
심폐소생 수혈 수술 등 순서 결정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대우
수련의 배출조차 힘든 현실
“정부-지자체 지원 더 늘려야”

《중증 난치성 질환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 신약과 첨단 의료장비가 개발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수술 현장을 지키는 외과 의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외과적 수술은 치료의 기본이자 완결이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기피 과’로 인식되면서 지원자가 줄고 있다. 동아일보는 고려대의료원과 함께 모든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외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싣는다.》

중증외상 환자는 대부분 촌각을 다툴 정도로 시급한 처치가 필요한 상태로 병원에 실려온다. 이 때문에 중증외상 담당 의사들은 24시간 대기해야 한다. 소방헬기가 중증외상 환자를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로 이송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지난달 초순의 한 늦은 밤, 70대 초반의 남성 A 씨가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A 씨는 평소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고 있었다. 그는 술을 먹은 상태에서 자해했다. 병원에 왔을 때는 장기 일부가 배 밖으로 나와 있었고 심장은 정지된 상태였다.

신속한 처치가 필요했다. 조준민 응급중환자외상외과 교수를 비롯해 의료진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몸 밖으로 나온 장기를 씻은 후 집어넣었다. 동시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떨어진 혈압을 끌어올렸다. 이어 의료진 10여 명이 수술에 돌입했다.

수술은 2시간여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A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후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덕분에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많이 사라졌다. 며칠 전, 조 교수는 외래 진료차 병원을 방문한 A 씨와 우연히 만났다. A 씨는 “감사하다”고 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조 교수는 자신이 응급중환자외상외과 의사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24시간 비상 근무하는 의사들
긴박한 응급 상황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중증외상 환자를 연중무휴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고려대 구로병원과 안암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4곳이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는 외과 파트, 정형외과 파트, 신경외과 파트 등 14명의 교수로 구성돼 있다. 간호사와 수술보조 인력을 합치면 30명으로 늘어난다. 조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당장 수술에 돌입할 수 있도록 외과 파트 교수 1명 이상이 24시간 대기한다. 외과 파트는 응급중환자외상외과, 외과, 흉부외과의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모든 교수가 한 달에 10일 정도는 24시간 당직을 서야 한다. 이렇게 하고도 손이 부족하면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뛰쳐나온다.

이처럼 중증외상 분야는 팀워크가 무척 중요하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다. 센터의 최고 연장자인 오종건 정형외과 교수는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의 가장 큰 강점이 바로 팀워크”라고 했다. 오 교수는 이어 “실제로 외과 팀과 정형외과 팀의 협력이 잘 되지 않아 센터 문을 닫은 병원도 있다”고 말했다.

조준민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장은 생명을 구한 환자가 감사 인사를 전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중증외상, 종합적 접근 필요
70대 후반의 남성 B 씨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던 중 레미콘 차량과 충돌했다. 넘어지면서 레미콘 차량에 깔렸다. 이 사고로 양쪽 다리뼈가 크게 부러졌다. 게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 바람에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B 씨의 심장은 멎어 있었다. 구급대원이 급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가늘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려대 구로병원에 도착할 무렵 다시 심장이 멎었다.

중증외상 의료진은 치료 계획을 얼른 짰다. 다리뼈 수술도 필요했지만 우선 심장부터 살려야 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다시 심장이 멎지 않게 하려면 안정적으로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 적혈구, 혈소판, 혈장을 각각 9L씩 번갈아 수혈했다. 심장이 제대로 돌아가고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자 혈압도 올라갔다. 비로소 다리뼈 수술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자 정형외과 교수가 투입돼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을 끝낸 B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50대 C 씨는 공사장에서 추락했다. 약간의 뇌출혈, 가슴 골절, 기흉, 다리 골절이 확인됐다. 부러진 다리뼈는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경우에도 치료 계획이 필요하다.

뇌출혈은 심하지 않아 수술을 미루기로 했다. 게다가 호흡이 불안한 상황에서 뇌수술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일단 가슴에 관을 삽입해 호흡부터 안정시켰다. 이어 몸 밖으로 튀어나온 다리뼈 수술을 했다. 그러면서 뇌의 상태를 관찰했다. 뇌출혈은 멈췄다. 수술하지 않은 채로 15일을 기다렸다. 그동안 C 씨의 의식이 돌아왔다. C 씨는 무사히 퇴원했다.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이처럼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조 교수는 “중증외상 치료를 제대로 하려면 수술 외에도 치료 우선순위를 정하고 체계적으로 협진하는 등의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이런 시스템을 일찍 도입한 덕분에 중증외상 환자들의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동훈 고려대 안산병원 정형외과 교수(진료부원장)는 중증 골절의 경우 신속한 처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중증외상 70%는 정형외과 수술 동반
중증외상 환자 중에는 특히 골절 사고가 많다. 이 때문에 심정지나 심각한 출혈과 같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해결한 뒤 환자의 70% 정도는 정형외과적 수술을 거친다. 다만 심각한 상황이라면 곧바로 수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

50대 초반의 남성 D 씨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고관절(엉덩관절)과 무릎뼈 골절이 확인됐다. 출혈이 심하지 않아 곧바로 수술을 시행해도 무방했다. 서동훈 정형외과 교수(진료부원장)가 집도했고, 수술은 3시간 반만에 끝났다. D 씨는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심각한 골절 사고는 노인들에서 많이 발생한다. 서 교수는 “고관절(엉덩관절) 골절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97%가 노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간혹 20대에서도 골절 사고로 병원을 찾는다.

현역 군인 E 씨는 훈련 도중에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대퇴골경부골절로 응급실로 실려 왔다. E 씨 수술 또한 서 교수가 집도했다. 수술 자체는 20여 분만에 끝났다. 하지만 바로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2년 정도 지난 후 괴사가 진행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나중에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신속한 처치 덕분에 위기를 피한 것이다.

오종건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장은 중증외상 분야에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중증외상 정부 지원 늘려야
중증외상 분야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필수의료 영역이다. 하지만 늘 인력난에 허덕인다. 업무 강도가 세고, 고난도 수술이 많은 데다, 늘 대기하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피한다. 대우도 넉넉하지 않다.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을 뜻하는 의료 수가가 다른 진료과와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의 수술 수가와 비교하면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중증외상 분야의 의사들은 “생사의 기로에 있던 환자가 퇴원한 다음에 외래 진료에서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 얻는 보람만으로는 중증외상 분야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보건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실 중증외상외과를 지원해도 교육받을 만한 인프라도 부족하다. 그나마 고려대 구로병원이 운영하는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가 도움이 되고 있다. 센터는 보건복지부가 2014년 전국 처음으로 지정했다. 현재 이런 센터는 고려대 구로병원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5곳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는 고려대 구로병원이 유일하다. 오종건 정형외과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 센터가 지금까지 배출한 중증외상 전문의는 약 10명이다.

오 교수는 “중증외상 분야는 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병원 적자는 커지는 구조다. 인력과 장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증외상은 많은 의사들이 피하는 분야다. 중증외사 치료 효과를 높이고 인력을 확보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현장 외과 의사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에서 시급한 환자를 옮기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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