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에서 한 명 이상은 성장호르몬제를 맞는 것 같아요. 이제는 병원에서 예상 키를 검사하는 건 ‘필수 코스’예요.”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A 씨는 서울 소재의 한 대학병원에서 자녀의 키 예측을 하려고 문의했다가 성장호르몬제를 맞으려면 2026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A 씨는 “자녀에게 성장호르몬제를 투여하는 게 이젠 드문 일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초등학생 자녀들의 예상 키를 추측하기 위해 성장판 검사를 받는 게 대중화하며 성장호르몬제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인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18년 1265억 원이었던 국내 성장호르몬제 시장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2385억 원까지 4년간 두 배 수준으로 성장했다.
현재 국내에서 처방되고 있는 성장호르몬제는 7개다. 화이자, 노보노디스크 등 해외 제약사 제품이 5개이고 국내 제약사 제품은 LG화학의 ‘유트로핀’, 동아ST의 ‘그로트로핀’ 등 2개다. 지난해 LG화학의 유트로핀 제품군 매출은 1200억 원으로, 2020년(800억 원)에 비해 1.5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아ST의 그로트로핀 매출도 1.9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성장호르몬제 시장이 급성장한 건 비급여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성장호르몬제는 유전자를 재조합해 만든 사람 성장호르몬으로, 이전에는 주로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나 터너증후군 등 키가 자라지 않는 유전 질환 환자들에게 급여 처방됐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성장판 검사가 가능한 병원이 늘면서 유전 질환이 아닌 환자를 대상으로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비급여 처방이 급여 처방을 크게 상회하게 됐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한 의약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성장호르몬제 시장의 30%는 급여 처방, 70%는 비급여 처방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서구화한 식단과 환경호르몬의 증가 등으로 비만과 성조숙증을 겪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점도 비급여 시장이 커진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비만의 경우 지방 세포에서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이 뼈 성장을 막고, 성조숙증은 키가 자랄 수 있는 기간을 줄여 결과적으로 유전적으로 자랄 수 있는 키보다 덜 자랄 수 있다.
노정기 바른키움성장클리닉 원장은 “심한 경우 비만과 성조숙증으로 10~20cm 정도가 덜 자랄 수 있다”며 “유전적인 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자녀의 키를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이 주로 비급여 처방을 받는다”고 했다.
성장호르몬제의 경우 몸 안에 있는 성장호르몬과 유사한 단백질이기 때문에 독성 등의 부작용에서는 자유로운 편이지만, 순간적으로 혈당이 높아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노 원장은 “위험한 수준으로 혈당이 올라가는 경우는 극히 드문 데다, 진료 때마다 다양한 검사를 통해 신체 상태를 확인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급여로 성장호르몬제를 처방받는 경우 1년 약값이 1000만~1200만 원 정도로 높은 편이다. 다만 비급여로 성장호르몬제를 처방받는 경우 체중에 따라 치료비가 1000만 원~1200만 원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주사를 맞는다고 무조건 유전적인 키만큼 자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보니 투여를 망설이는 부모도 많다. 서정환 신촌세브란스 소아내분비내과 교수는 “키 성장은 다양한 환경 및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자랄지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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