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귀여움’의 힘(1)
직장인 이재희 씨(39)는 회사에서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마트폰으로 ‘댕댕이(멍멍이)’를 검색해 본다. 귀여운 새끼 동물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근심이 사라지고 잠깐이라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판다 동영상을 즐겨 보기 시작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귀여운 사진을 발견하면 주변 지인에게 “힐링하라”며 전송해 주기도 한다.
볼 통통·뒤뚱뒤뚱…‘아기다움’에서 찾는 귀여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동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 짓게 된다. 몸에 비해 큰 머리, 짧은 팔다리, 작은 코와 입, 보들보들할 것 같은 촉감…. 귀여운 새끼 동물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이런 특징은 아기의 특징과 똑같다.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 오동통한 손과 발, 큰 눈, 작은 코와 입, 보들보들한 촉감 등이 말이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는 이런 특징을 ‘아기 스키마(baby schema)’라고 개념화했다. 아기를 떠올리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신체적 이미지를 말한다. 아기 스키마에 따르면, 아기는 성인과 비교해 두드러지는 신체적 특징을 갖는다. 우선 머리가 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크다. 생후 6개월 전까지는 머리둘레가 가슴둘레보다 크다. 또 이마가 성인보다 볼록하고, 얼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반대로 턱은 짧고 얼굴에서 낮은 비율을 차지한다. 또 짧은 팔다리는 살이 볼록볼록하게 튀어 나올 정도로 통통하고, 기거나 걸을 때 뒤뚱거리며 움직인다.
인간은 아기 스키마의 전형적 특징이 도드라질 수록 귀여움을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자. 어떤 아기가 가장 귀여워 보이는가?
위 사진은 독일 뮌스터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공동 연구팀이 아기 얼굴을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보정해 연구에 사용한 것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아기 스키마의 특징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도록 편집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위, 아래 두 사진은 작은 눈, 긴 코, 긴 얼굴, 좁은 이마로 보이게끔 했다. 반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동그란 얼굴, 큰 눈, 작고 짧은 코, 볼록하고 넓은 이마로 사진을 보정해 아기 스키마에 더욱 가깝게 보이게끔 했다.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 122명에게 어떤 사진이 가장 귀여운지 고르라고 했다. 예측 가능하듯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진을 고른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아기 사진에서 귀여움을 강하게 느낀 학생일수록 ‘보살펴 주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귀여운 것에 끌리는 건 본능
아기 스키마 개념이 제시된 이후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많은 연구가 이어졌다. 수많은 후속 연구에 의하면, 귀여운 것을 보면 ‘보살펴 주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생명체나 다음 세대를 잘 키워서 종족을 보존해야 한다는 본능이 있기 마련인데, 인간은 아기의 특징을 가진 대상을 보면 생존과 종족 보존의 본능이 자극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기다운’ 특징을 일부라도 가지고 있는 대상을 보면 ‘귀엽다’는 긍정적인 정서 반응이 나타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귀여운 대상을 봤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보면, 귀여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얼마나 즉각적이고 본능적인지 알 수 있다. 모튼 크링겔바흐 영국 옥스포드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성인 95명에게 아기 얼굴 13장과 성인 얼굴 13장을 각각 보여줬다. 이들이 사진을 보는 동안 자기뇌파검사(magnetoencephalography·MEG)를 통해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기록했다.
이들이 아기 사진을 보는 동안 뇌의 내측 안와전두엽(medial orbitofrontal cortex)이라는 부위가 0.13초 만에 반응했다. 이 부위는 보상받았다고 느낄 때 기분이 좋아지면서 활성화되는 영역이다. 이와 반대로 성인 얼굴 사진을 보는 동안 해당 영역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아기를 보는 즉시 0.13초 만에 뇌에서 긍정적 반응이 나타난 것은 어떠한 판단이나 사고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기라는 대상은 합리성을 따져야 하는 주제가 아닌, 생존·번식이라는 본능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내측 안와전두엽은 아기의 얼굴을 특별하게 식별하고, 보살피도록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든다”며 “또 긍정적인 정서를 유발해 아기와 감정적으로 유대하는 데에도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귀여운 건 보호해야 해!” 높아지는 집중력
이런 특징 때문에 귀여운 대상을 보면 보호본능이 발동하고, 주의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경계 태세에 들어가면서 결과적으로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미 버지니아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5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새끼 동물 사진을 보여주고, 다른 그룹에는 성체가 된 동물 사진을 보여줬다. 새끼 동물이 ‘매우 귀여운’ 자극이라면, 다 큰 동물은 ‘덜 귀여운’ 자극을 의미한다. 강아지, 고양이, 호랑이, 사자 등 다양한 동물이 사진에 포함됐다.
그런 다음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핀셋으로 작은 조각을 뽑아서 제거하는 섬세한 작업을 하도록 했다. 집중해서 힘의 강약을 잘 조절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어떤 사진을 본 그룹이 이 작업을 잘 해냈을까?
귀여운 새끼 동물 사진을 본 그룹이었다. 아기 스키마 특징을 가진 새끼 동물을 보자,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면서 아기를 다룰 때 필요한 조심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작고 연약한 아기를 돌볼 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행동하기 때문에, 이때 뇌에서는 주의력을 끌어올려 행동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통제하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세심한 집중력이 필요할 때 귀여운 동물이나 아기 사진을 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무실 책상이나 공부방에 귀여운 인테리어 소품을 배치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기분도 좋아지고, 집중력도 얻을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방법이다. 다만 세심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 국한돼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굵직한 계획을 짜는 등 미시적인 ‘나무’보다 거시적인 ‘숲’을 봐야하는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주 기사에서는 ‘귀여움의 힘’ 2부로 △귀여운데 왜 깨물어 주고 싶을까 △귀여워야 멸종 당하지 않는다 △본능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산업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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