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기술유출 판례 (6) 세메스 반도체 세정기술 유출 사건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6월 27일 11시 06분


코멘트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세메스 반도체 세정기술 유출 판례’로 본 기술유출 범죄수익 추징 문제(수원지방법원 2023. 2. 16. 선고 2022고합42 등 판결)

“535억원 상당의 재산에 대해 보전 조치를 인정했지만..”


올 2월경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가 개발한 반도체 세정 첨단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전 직원 등 7명과 관계 회사에 대해 1심 판결이 선고돼 세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세메스는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다이닛폰 스크린(DNS)과 함께 세계 3대 반도체 세정장비 제조업체로 인정받는 회사입니다. 세메스는 2018년경 차세대 반도체 세정기술로 알려진 초임계(액체와 기체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 세정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성전자에만 독점 공급해 왔습니다.

그런데, 세메스 전 직원과 협력업체 등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초임계 세정 기술 정보 등을 중국 경쟁업체 PNC, XMC(現 YMTC)를 비롯한 중국 국영 반도체 연구소에 수출한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특히 YMTC는 지난해 말, 시진핑 국가주석이 반도체공장을 시찰할 정도로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적인 국영기업이며,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무섭게 추격하는 상황이었기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기술 유출로 인한 막대한 국가적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근 관대한 기술유출범죄에 대한 처벌로 인해 세메스 재판결과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법원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를 인정해, 기술 유출을 주도한 세메스 전 연구원에 대해서 징역 4년의 실형을, 공범 6명에 대해서는 징역 2년 6개월(가담 정도가 낮은 2명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3년)을, 관계 회사에 대해서는 벌금 10억원을 선고했습니다.

근래 기술유출범죄에 대해 가장 높은 형을 선고한 것인데,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유출 및 부정사용된 자료들은 피해회사가 다년간 연구하고 개발해 얻어낸 성과일 뿐만 아니라 일부 첨단기술 및 국가핵심기술로 평가되는 자료들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범죄를 가볍게 처벌한다면, 기업들은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기술개발에 매진할 동기가 없어지고, 해외 경쟁업체가 인재 영입을 빙자해 우리나라 기업이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기술력을 너무나도 손쉽게 탈취하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피해회사의 피해규모를 지금 당장 명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피해회사의 손해를 가벼운 것으로 치부할 수 없고 그 피해가 전부 회복되기도 어려우며, 피해회사는 피고인들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피고인들에게 공통된 양형 의견을 밝혔습니다.

한편, 법원은 피고인들에 대해 별도로 몰수나 추징을 선고하지 않았습니다. 몰수는 범죄에 의한 이득을 박탈하기 위해 범죄수익 등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제도이며, 추징은 몰수 대상 재산을 몰수할 수 없거나 몰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 그 가액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제도입니다.

당초 검찰은 피고인들이 범죄로부터 얻은 이익을 빼돌릴 것을 우려해 기소 전 3차례에 걸쳐 반도체 세정 장비 등 약 535억원 상당의 재산에 대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추징보전명령(향후 추징을 위해 임시로 재산처분을 금지하는 것)을 집행했습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피고인들이 그 범죄행위로 인해 얻은 재산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별도로 추징을 선고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항소하며, 기소 전 추징보전 결정이 내렸음에도 추징을 선고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현행법은 산업기술보호법상 고의적인 산업기술 침해행위에 대해서 손해로 인정되는 금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두고 있으므로(산업기술보호법 제22조의2), 향후 재판에서 세메스 기술 유출 일당들에 대해 추징이 선고되지 않더라도 범죄로부터 얻은 이익을 향유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기술유출 피해액을 피해회사인 세메스 측에서 입증해야 하는데, 향후 이어지는 소송에서 법원에서 피해액을 얼마까지 인정해 줄 것인지도 귀추가 주목됩니다.

다음 기고부터는 주제를 바꿔 ‘기술탈취’에 대한 판례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처음 살펴볼 사례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이노코퍼레이션에 대한 불공정 하도급 거래 사건입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kdj@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