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암호 기술은 앞으로 국가 안보를 결정할 중요한 기술이다.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클라우저 박사(81)는 26일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양자암호 기술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클라우저 박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PP)에서 열린 양자과학기술 국제 행사 ‘퀀텀 코리아 2023’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클라우져 박사가 양자암호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건 최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양자컴퓨터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나면 기존 암호 체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서다. 현재 대다수의 암호체계는 복잡한 수학 계산을 기반으로 하는 ‘공개키암호방식(RSA)’을 사용한다. 기존 컴퓨터로 RSA 암호를 풀려면 100만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연산능력이 훨씬 뛰어난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이론적으로 수 초 안에 암호를 풀 수 있다.
반면 양자를 이용한 암호 체계는 측정이나 복제를 하는 순간 정보가 훼손되기 때문에 해킹이 불가능하다. 클라우저 박사는 “(안보 측면에서) 개발 필요성을 직감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 등이 자금을 지원하며 본격적인 양자 연구가 시작됐다”며 “금융이나 스마트폰까지 암호화된 통신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에 양자암호는 가치 있는 기술이라고 평가한다”고 했다.
클라우저 박사는 1972년 양자 암호의 기반이 되는 ‘양자얽힘’ 현상을 실험적으로 처음 증명한 인물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두 명의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양자얽힘은 두 개의 양자가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당시 과학계에는 양자역학을 완전하지 못한 학문이라고 바라보던 ‘아인슈타인 학파’와 양자역학의 대들보 역할을 한 ‘닐스 보어 학파’가 나뉘어 있었다. 클라우저 박사의 연구는 닐스 보어 학파의 승리로 두 학파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실험이었다.
클라우저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인슈타인은 내 ‘히어로’였기 때문에 내심 그가 승리하길 바랐지만 내 실험으로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아인슈타인은) 워낙 훌륭한 과학자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나에게 이 실험은 정말 미친 짓이라고 말했고, 내 커리어를 망칠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클라우저 박사가 증명한 양자얽힘 현상은 양자 산업 전반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2040년이면 양자 산업이 100조 원대 시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클라우저 박사는 학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양자 연구가 미래를 바꿀 신 산업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정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 과학에 대한 국가의 꾸준한 투자와 진실을 밝히겠다는 젊은 과학자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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