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6월 28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현대카드 개인 회원 수는 1,173만 4,000명으로 KB국민카드 회원 수(1,172만 6,000명)를 넘어서며 국내 카드사 가운데 3위로 올라섰다.
애플페이 출시 효과다. 지난 3월~4월 기준 애플페이와 처음 손잡은 현대카드 신규 회원 수는 36만 9,000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다른 경쟁 카드사의 신규 회원 수는 KB국민카드 26만 7,000명, 신한카드 25만 5,000명, NH농협카드 21만 8,000명, 롯데카드 21만 7,000명 순이다. 애플페이 출시 한 달간 신규 발급된 현대카드는 약 35만 5,000장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56% 상승했다. 또한, 2023년 1분기 신용판매 취급액도 전년 동기 대비 16.2% 증가한 33조 7,971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애플페이 제휴 3주차를 맞이한 지난 4월, “가입토큰 수 200만 건을 돌파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애플페이 토큰은 신용카드를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에 등록할 때 카드정보를 암호화해 발행하는 번호를 뜻한다.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국내에 선보일 당시 카드업계는 ‘찻잔 속 태풍’이라 평가하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출시 100일째를 맞이한 시점의 결과는 지각변동 수준이다.
애플페이는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마그네틱보안전송(MST) 결제 방식과 다른 NFC 결제 방식으로 인해 가맹점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애플페이 공식 참여 브랜드 외 중소 가맹점들이 자발적으로 NFC 단말기를 도입했다. 또한, 현대카드가 1년 독점 계약으로 애플페이 국내 출시를 준비했지만, 금융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배타적 사용권을 포기, 올해 하반기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 우리카드(비씨) 3사도 애플페이와 제휴할 예정이다.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는 국내 점유율 1, 2위로 애플페이 가맹점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애플페이가 던진 돌, 삼성페이 유료화?
애플페이 국내 출시와 함께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삼성페이다. 애플페이가 국내 출시를 선언한 3월, 네이버페이와 협력하며 온/오프라인 간편결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활용 범위를 넓혔다. 최근에는 카카오페이와도 협력을 논의 중이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가 점유하고 있는 온라인 간편결제 시장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네이퍼페이와 카카오페이는 오프라인 가맹점 300만 개 이상을 보유한 삼성페이의 영향력을 통해 영역을 넓혀 벽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지난 5월, 삼성전자는 삼성페이 계약을 맺은 카드사에게 자동 연장을 종료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2015년 삼성페이를 선보인 뒤 카드사에 결제 수수료를 포함한 어떠한 비용도 받지 않았지만, 애플페이가 현대카드로부터 0.15%의 수수료를 받자 유료화 전환을 고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페이와 같은 0.15% 수수료를 받을 경우, 삼성페이는 카드사로부터 연간 약 1,050억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카드사에게 피할 수 없는 부담이다. 삼성페이 유료화 후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다른 간편결제 서비스도 수수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이미 애플페이와 제휴하고 있는 현대카드 이외의 다른 카드사는 삼성페이 수수료 계약이 우선이다. 눈치를 봐야만 하는 입장이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간편결제 시장에서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의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도 압박이다. 애플페이, 삼성페이는 결제 방법만 아이폰, 삼성전자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뿐, 제휴 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이는 곧 카드사 매출로 이어진다. 하지만,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는 은행 계좌를 연동해 충전하는 방식으로 결제할 수 있다. 제휴 카드를 거치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이다.
네이버페이 앱은 올해 3월 삼성페이 연동 후 4월 신규 설치 47만여 건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186% 증가한 수치다. 카카오페이도 애플페이 국내 출시 후 할인 혜택 등을 강화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온/오프라인 가맹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0% 늘어난 196만 개에 이른다. 1분기 오프라인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7% 성장했다.
간편결제 시장에서 갈 길 잃은 카드사
애플페이,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 시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하루 평균 간편결제 이용금액은 2020년 4,492억원에서 2022년 7,326억 원까지 늘어났다. 2022년 기준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등 전자금융업자 비중은 47.9%, 카드사와 은행 등 금융사 비중은 26.8%, 삼성페이 등 휴대폰 제조사 비중은 25.3%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카드사 간편결제 비중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삼성전자와 애플 등 IT 테크 기업이 간편결제 시장에서 영향력 넓힐수록 카드사의 입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지는 추세다. 기존 결제 인프라에 안주하고 있던 결과다. 신용카드와 카드 결제 단말기에 머물고 있던 시간 동안 IT 테크 기업은 온라인, 모바일 결제 편의성을 스마트폰 속에 녹였다. 더 이상 사람들은 온라인 결제를 위해 지갑 속 신용카드를 꺼내 정보를 입력하지 않고, 오프라인 결제를 위해 카드 대신 스마트폰을 꺼낸다.
애플이 국내에 애플페이 서비스를 시작한 뒤,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제 시장에서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했던 간편결제는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