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초반 그의 별명은 ‘싸움닭’이었다. 상대 타자가 누구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공을 믿고 공격적으로 타자를 밀어붙였다. 30대가 넘어가면서 그는 변화를 꾀했다. 패스트볼 위주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에서 다양한 변화구와 경기운영 능력을 활용하는 패턴으로 바꿨다. 이후 그의 이름 앞에는 ‘팔색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조계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장(59)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전성기를 보낸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은퇴를 한 두산 베어스 시절까지 13시즌 동안 320경기에 출전해 126승 92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했다. 1993년과 1994년엔 다승왕을 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평균자책점 1위를 했다. 통산 64경기를 완투했고, 17경기에선 완봉승을 거뒀다.
그는 ‘운’이 무척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해태에 입단한 1989년에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었던 2001년에는 두산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는 그는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여섯 번(해태 5번, 두산 1번)이나 경험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우승 복’이 있었다. 삼성 2군 코치 시절 2번 우승했고, KIA 수석코치로 일하던 2017년에도 또 한 번 우승했다. 그리고 한국 야구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그는 투수 코치로 9전 전승 금메달에 기여했다. 조 위원장은 “큰 경기에 운이 좀 따르는 편이다. 큰 경기라고 해서 쫄거나 긴장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싸움닭’의 모습 그대로다.
다만 그가 선수 및 지도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동안 포기 또는 방치한 게 있다. 바로 ‘건강’이었다.
그는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쉽고 편하게 야구를 했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수면 위에서는 편안해 보이지만 물 아래에서는 쉬지 않고 발을 휘젓는 백조와도 같았다.
불같은 강속구의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어깨와 팔꿈치 상태가 예전 같지 않자 그는 생존을 위해 변화구 투수로 변신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변화구 숫자를 늘리다 보니 ‘팔색조’가 됐을 뿐이다. 그는 “공이 빠르지 않으니까 잔수만 늘었다. 운영으로 이겨내야 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았다”며 “경기를 마치고 나면 그날 경기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또 돌았다. 그걸 잊고 잠들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좋지 않은 습관이 돼 버렸다”고 했다.
지도자가 된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단 관리부터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역할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이기면 좋아서 한 잔, 지면 졌다고 한 잔, 경기 복기하면서 또 한 잔… 그렇게 술과 담배,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KIA 수석코치였던 2017년 1월 1일은 그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팀의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게 금주와 금연을 선언했다.
한 해 전 겨울 받았던 건강검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검진 결과 면역력이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 병이 발병한 건 아니지만 어떤 병이라도 걸릴 경우엔 그 결과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떠나 그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기 없이 까매진 얼굴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죽어 있는 얼굴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단호하게 실천하려 했다”며 “처음엔 쉽지 않았다. 경기 후 집에 돌아오면 금단 현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정신으로 야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해 KIA는 모처럼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전까지 술과 담배, 그라운드가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면 금주와 금연으로 다시 태어난 후 그의 인생 2막은 이후 좀 더 다채로워졌다.
2017년 우승 후 그는 KIA 단장으로 선임돼 2021년까지 프런트의 수장으로 일했다. 2022년부터는 협성대학교 에이블아트·스포츠학과 특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일주일에 한 차례 티볼과 게이트볼, 파크 골프 등 뉴 스포츠에 관한 수업을 한다. 야구 선수 출신인 만큼 티볼은 실기 수업으로도 진행한다. 스타 교수님 강의인지라 인기도 많다. 그는 “처음에는 교수님 소리가 낯설기도 했지만 어린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고 교감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수업이 있는 수요일이 너무 기다려진다. 다행히 학생들도 내 수업에 들어오는 걸 너무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KBO 재능기부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유소년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한다. 올 초에는 KBO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대표 선수 선발부터 한국 야구 국제 경쟁력 강화까지 모두 관할하는 중요한 자리다.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지금까지 야구 선수 및 지도자로 외길을 걸어왔는데 최근 들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접하는 게 무척 즐겁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바쁘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는 등산과 골프다. 코치 시절부터 가까운 산을 오르며 머리를 식히곤 했던 그는 요즘도 집에서 가까운 서울 아차산이나 용마산을 자주 오른다. 시간이 좀 더 있을 때는 관악산이나 도봉산도 간다. 친구들과는 강원 설악산을 찾기도 한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하고 리뷰하면서 혼자 묵묵히 걷는다. 등산은 내게 힐링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최근에는 골프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공이 파란 하늘을 가로지를 때의 시원함과 통쾌함이 매력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싱글(70대 타수)도 쳐 봤다.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니 근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힘을 써야 할 때 여전히 현역 때와 비슷한 파워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도 거르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이런저런 동작을 하면서 몸을 풀어주면 하루를 보다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힘과 열정이 있으니 바쁘게 살게 된다. 고마운 야구 덕분에 내가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재능기부이든 봉사활동이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