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씨름의 전성시대였다. 천하장사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화면 속 장사들을 응원하며 울고 웃었다. ‘씨름판의 황제’ 이만기와 ‘인간 기중기’ 이봉걸이 맞붙은 천하장사대회 결승전은 시청률이 무려 68%나 나왔다.
초창기 프로씨름은 이른바 ‘3이(李)’가 이끌었다. 이만기, 이봉걸과 함께 ‘3이(李)’를 형성한 인물은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66)였다. 이만기가 기술 씨름에 능했고, 이봉걸이 큰 키를 앞세운 힘 씨름을 구사했다면 이준희는 힘과 기술을 모두 겸비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전국구 씨름 선수로 유명했던 그는 프로 선수 생활은 5년밖에 하지 못했다. 그의 나이 26살에 프로씨름이 출범했는데 적지 않은 선수들이 20대 중후반에 은퇴하던 시절이었다. 이준희는 26살에 데뷔해 5년을 뛰고 31살에 은퇴했다.
그 5년 사이에 그는 세 차례(1984년, 1985년, 1987년) 천하장사에 올랐고, 7차례 백두장사를 지냈다. 1984년 제5회 천하장사대회에서는 손상주를 이기고 처음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1985년 제8회 대회 때는 당대의 라이벌 이만기를 꺾었다. 서른이던 1987년 제13회 대회에서는 친구 이봉걸을 넘어뜨렸다.
실력만큼 사랑받았던 게 바로 깔끔한 경기 매너였다. 샅바 싸움을 까다롭게 하지 않았고 흔한 신경전도 별로 없었다. 승리한 경기에서도 상대 선수를 배려했고, 경기에 패한 뒤에는 항상 결과에 승복했다. ‘모래판의 신사’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겼다.
씨름판의 슈퍼스타였던 이준희는 여전히 모래판 외길을 걷고 있다. 은퇴 후 LG투자증권과 신창건설 감독을 지낸 뒤 2013년부터 대한씨름협회에서 경기부장을 맡아 행정가로 변신했다. 현재는 협회 경기운영총괄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협회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의 경기 운영을 책임지는 현장 책임자다.
그는 현역 선수 때 못지않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 년 내내 쉴 새 없이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4대 메이저대회(설날, 단오, 추석, 천하장사)와 6번의 민속씨름 대회, 그리고 각종 학생 대회까지 모두 24개 대회가 협회 주관으로 열린다.
예전에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큰 대회가 열리곤 했지만 요즘은 주로 지방 도시들을 돌며 대회를 개최한다. 때문에 그는 일 년에 절반 정도는 집을 떠나 지방에 머문다. 그는 “학생 대회에는 대개 1000~1200명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여기에 학부모와 관계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자기 때문에 대회를 개최하는 지자체에서는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겉만 멀쩡하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그는 양쪽 아킬레스건이 좋지 않아 달리기나 등산처럼 무리가 될 수 있는 운동은 피한다고 했다. 대신 집 주변 공원 등을 많이 걷는다. 그는 “걷는 것도 한 번에 많이 걷기보다는 3~4km 정도를 가볍게 걷는다. 그리고 공원 곳곳에 설치된 운동기구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건 체중 관리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확인한다. 조금이라도 몸이 불었다 싶으면 곧바로 먹는 것을 조절하거나 운동의 강도를 높인다. 그는 “내게 체중은 곧 건강이다. 현재 몸무게가 115~117kg 정도 나가는데 조금만 마음을 놔도 120kg를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한다. 살면서 120kg은 한 번도 넘은 적이 없고 절대 넘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창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하던 현역 선수 시절에도 그의 최고 몸무게는 118kg이었다.
돌이켜 보면 선수 시절부터 그는 소식(小食)을 하는 축에 속했다. 다른 선수들이 공깃밥을 5그릇, 10그릇씩 비울 때 그는 2~3공기를 먹었다. 그는 “성장기 선수들 중에는 고기 10인분에 라면을 10개씩 끓여 먹는 선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3개 이상을 못 먹겠더라”라고 했다.
체중 조절에 신경을 많이 쓰는 요즘엔 밥을 한 공기 이상 먹지 않으려 한다. 그는 “아무래도 덩치가 있고 식탐이 있어 스스로 자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 같은 체질은 먹는 대로 살로 간다. 최대한 덜 먹으려고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출장을 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 그는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 아침은 커피 한 잔이나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오전 11시경 아침과 점심을 겸해서 간단히 먹는다. 그리고 오후 5시경에 이른 저녁을 먹는다. 이후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과일을 먹거나 물을 마신다.
그가 가장 피하는 식사 장소는 뷔페다. 그는 “뷔페는 가능한 한 가지 않으려 한다. 눈앞에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조절을 하기가 쉽지 않아 피하게 된다”고 했다.
씨름 선수들의 회식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다. 일명 무제한 뷔페 등에 가면 제대로 본전을 뽑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요즘 선수들도 뷔페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다. 이왕 먹는 것 좀 더 건강하고 맛있는 걸 자기 양만큼 먹자는 주의다. 예전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에 살던 우리 세대처럼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했다.
술도 크게 줄였다. 그는 동년배들에 비해 술을 즐기거나 주량이 센 편이 아니었지만 한창때는 양주 3~4병을 거뜬히 해치웠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씨름 선수 출신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으면 각자 양주 한 병씩을 챙겨갔다고 한다. 그는 “반주 삼아 한 병씩 마시곤 했다. 서로 따라주기 귀찮고 하니 각자 가지고 와서 각자 따라마셨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엔 절주를 하고 있다. 그는 “지방 출장이 많아 술을 마시려 하면 일주일 내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꼭 참석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면 가지 않고, 혹시 가더라도 반주로 서너 잔 마시는 게 전부다. 나이와 체력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지방 출장을 가면 빠지지 않고 하는 건 바로 사우나다. 선수 때부터 사우나를 즐겨했다는 그는 “예전에는 목욕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사우나로 땀을 빼고 하루를 시작하면 몸이 무척 개운하다”면서 “사우나를 가면 체중을 재고, 거울을 보면서 내 몸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과한 운동 대신 꾸준한 운동을 권했다. 그는 “많은 씨름 선수 출신들이 운동 후유증을 겪는다. 평균 이상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몸을 과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라며 “일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적당한 무게를 들고, 러닝 등도 적당히 하는 게 제일 좋다. 특히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힘자랑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랫동안 꾸준히 즐기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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