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유전자, 자손 많이 낳는데 도움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0일 13시 29분


美연구진 “진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유 풀 실마리”

PIXABAY 제공

알츠하이머 발병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자손 번식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위험한’ 유전자가 진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후손에게 전해지는 이유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클 거번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교수팀은 9일(현지시간) 브라질 아마존에서 거주하는 여성 795명의 유전자와 자손의 수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그 결과 ‘APOE4’ 유전자를 가진 여성의 경우 평균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낳았다고 밝혔다.

APOE4는 혈액에서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전자는 두 개의 대립유전자가 한 쌍으로 존재하는데, APOE4 대립유전자를 하나 가지면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이 3배, 2개 가지면 12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발병 위험이 높은 유전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5명 중 1명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흔하다. 학계에서는 이런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왜 사라지지 않고유전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 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APOE4 대립유전자를 하나 가지고 있는 147명의 여성은 평균(9명)보다 0.5명 더 많은 9.5명의 자손을 낳았다. 2개를 가진 12명의 여성은 2명이 더 많은 11명을 낳았다. 출산을 시작한 시기도 APOE4 보유자가 0.8년 빨랐으며 출산 주기는 0.23년 더 짧았다.

연구진은 “APOE4 유전자가 생식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알츠하이머는 주로 생식 후 나이가 많아진 상태에서 발병하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생식이라는 이점이 더 크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APOE4가 기생충과 같은 병원균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고, 이것이 생식력의 증진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연구를 주도한 벤자민 트럼블 미국 아리조나 주립대 교수는 “면역에 사용되는 많은 에너지를 뱃속 태아가 자라는 데 더 많이 양보할 수 있고, 그만큼 더 빨리 번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특히 아마존과 같이 병원균이 많은 환경에서는 이런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2017년 에릭 반 악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VU대 의학센터 교수팀도 유사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연구진은 이번 연구보다 작은 규모로 연구를 진행했다. 피임률이 0.7% 미만인 가나의 한 마을에 거주하는 여성 413명을 조사한 결과, APOE4 유전자를 1개 보유한 여성은 평균 1명, 2개 보유한 여성은 3.5명의 자식을 더 낳았다.

이에 대해 미국 연구진은 “저피임, 고병원체 집단에서 유사한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을 미뤄봤을 때 해당 환경에서 APOE4 유전자와 높은 생식력은 높은 연관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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