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는 어쩌면 영원히 깨질 것 같지 않은 기록들이 여럿 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백인천(MBC)의 4할 타율(0.412), 1983년 투수 장명부(삼미)의 한 시즌 30승이 대표적이다. ‘무쇠팔’ 최동원(롯데)이 1984년 기록한 단일 시즌 한국시리즈 4승, 1982년 김성한(해태)의 한 시즌 두 자릿수 승리(10승)-두 자릿 수 홈런(13개)도 마찬가지다.
위에 열거한 기록들과 더불어 꾸준함으로 일궈낸 ‘불멸의 기록’이 하나 더 있다.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롯데)이 갖고 있는 통산 100경기 완투다.
1986년 1차 지명으로 롯데에 입단한 윤학길 전 롯데 2군 감독(62)은 1997년까지 12시즌을 롯데 한 팀에서만 뛰며 100경기를 혼자 책임졌다. 데뷔 2년째이던 1987년 13완투를 기록한 그는 1988년에는 35경기 중 17번을 완투했다. 1989년에는 38경기의 절반에 가까운 18번이나 완투했다. 더욱 놀랍게도 30세 이후에도 그의 ‘완투 행진’은 계속 이어졌다. 1991년 11완투, 1992년 14완투에 이어 1993년에도 12번이나 완투를 했다. 1993년에는 완봉승도 4차례나 거뒀다.
투수 분업화가 이뤄진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는 “선발 투수라면 완투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선발 투수가 한 경기를 완전히 책임져 주면 불펜 투수들이 쉴 수 있다. 그러면 팀 마운드 운용에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렇게 묵묵히 던지고 또 던지며 개인 통산 1863과 3분의2이닝을 소화했다.
선수 시절 그는 187cm의 키에 90kg 몸무게의 듬직한 체격을 자랑했다. 좋은 신체 조건과 함께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는 그만의 노하우도 있었다. 스프링캠프 때 많은 공을 던지면서 어깨를 단련한 뒤 시즌에 들어와서는 불펜 피칭이나 연습 피칭을 최소화하는 거였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투구 폼을 찾는 게 중요하다. 내 경우엔 불펜 피칭은 밸런스를 잡기 위해 최소한의 공만 던졌다. 그리고 남은 힘은 모두 경기 때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로는 강속구였던 140km대 후반의 공을 간결한 투구폼으로 편안하게 던졌다. 좋은 폼으로 던지다 보니 많은 공을 던져도 몸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았다. 팀 사정상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많은 이닝을 던져야 했다. 최동원이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뒤 홀로 외롭게 롯데 마운드를 지키던 그에겐 어느 날부터 ‘고독한 황태자’란 별명이 붙었다.
1992년은 고독했던 그가 더는 외롭지 않았던 한 해 였다. 그해 그는 후배 투수들인 박동희, 염종석과 함께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를 거둔 박동희는 한국시리즈 MVP가 됐고, 정규시즌에서 17승을 거둔 염종석은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도 205이닝을 던지고 17승을 거두며 롯데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1992년 이후 롯데는 올해까지 30년 넘도록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당시엔 박동희, 염종석, 윤형배 등 투수진이 참 좋았다. 박정태, 전준호, 김응국 등이 버틴 타선도 응집력이 대단했다”며 “요즘도 우승에 목마른 부산 팬들로부터 ‘롯데는 언제 우승할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우승을 하려면 투타 전력이 모두 좋아야 한다. 나도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퇴 후 그는 롯데와 히어로즈, LG, 한화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19년 한화 코치를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그는 요즘엔 ‘윤지수 아빠’로 더 자주 불린다. 딸인 윤지수(30)는 한국 여자 펜싱 사브르 종목의 간판선수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게임 결승에서 중국을 완파하며 한국 여자 사브르 역사상 최초로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된 윤지수는 4년 뒤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6바우트에서 11점을 추가하며 역전의 발판을 놨다. 한 때 10점 이상 뒤졌던 한국은 45-42로 역전승하며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역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윤 전 감독은 “펜싱 단체전도 야구의 선발 투수-중간 계투-마무리 투수처럼 보직이 있다. 나는 주로 선발로 많이 뛰었는데 지수는 마무리로 나설 때 더 좋은 활약을 한다”며 웃었다.
윤학길-윤지수 부녀는 ‘올림픽 가족’이다. 1984년 상무 소속이던 윤 전 감독도 그해 열린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야구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닌 시범 종목으로 치러졌다. 프로 선수들은 출전하지 않았지만 당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윤 전 감독을 비롯해 선동열(고려대), 김용수(한일은행), 류중일(한양대), 이순철(연세대) 등 당대 아마추어 야구 최고의 선수들로 꾸려졌다.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 야구 대표팀은 4강까지 진출했으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만에 패해 메달은 따지 못했다.
윤 전 감독은 “그때 경기가 열린 게 LA다저스의 홈구장인 다저스타디움이었다. 그곳에서 한국 팀의 첫 승을 내가 거뒀다.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보다 훨씬 빨랐다”며 “대만과의 3, 4위 전에도 내가 나가서 홈런을 맞았는데 아마 다저스타디움 한국인 피홈런이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선수 시절 그렇게 많이 던지면서도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던 그는 요즘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 관리는 주로 가벼운 산행과 걷기로 한다. 그가 살고 있는 부산은 해운대나 광안리 등 바닷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부산에는 곳곳에 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산들이 꽤 있다. 그는 “부산에는 야트막한 산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장산(해발 634m), 금정산(802m), 백양산(641m)이 ‘부산 3대 산’으로 불린다”며 “고교나 대학 친구들과 함께 자주 산에 간다. 가벼운 등산을 한 뒤 내려와 소주 한잔하며 이런저런 얘기하는 게 인생의 재미이자 즐거움”이라고 했다.
시간이 날 때면 해변길 산책도 종종 한다. 그의 집이 있는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걸으면 편도로 한 시간~한 시간 반이 걸린다. 그는 “부산으로 여행을 오시는 분들은 대개 차를 타고 이 길을 이동한다. 하지만 정작 부산 사람들은 바닷가를 따라 경치를 즐기면서 걷곤 한다”고 했다. 해파랑길이 시작되는 이기대 해안산책로도 그가 추천하는 부산의 ‘걷기 명소’다. 선수 때부터 해 왔던 사우나도 즐긴다. 그는 “선수 때에도 원정 숙소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뒤 사우나로 땀을 한 번 빼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상쾌할 수 없었다”며 “요즘도 가끔 사우나에 가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고 했다.
선수부터 지도자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그는 요즘엔 한국야구위원회(KBO) 재능기부위원으로 유소년들에게 야구의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일도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충북 보은 KBO 야구센터에서 열린 유소년 투·포수 육성캠프에서는 중학교 3학년 투수 40명을 대상으로 투구 시 상체와 하체를 활용하는 기술을 가르쳤다.
그는 “예전부터 일반 직장인들처럼 58세 정도까지 일을 하자고 생각해 왔다. 많은분들의 도움으로 2019년까지 프로야구 코치 생활을 했으니 목표를 이룬 셈이 됐다”며 “현재는 아흔이 넘은 노모를 보살펴드리고 딸 지수의 선수 생활을 응원하면서 지낸다. 앞으로의 인생도 지금처럼 살아가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야구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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