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데이터 시대의 막이 열린다. 다양한 의료데이터를 수집, 분석해서 맞춤형 진단·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정밀 의료가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의료데이터는 임상연구를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일 기술, 차세대 의약품의 연구 개발을 도울 핵심 기술로도 주목 받는다. 업계는 의료데이터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면 수집뿐만 아니라 분석·활용 기술을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의료데이터의 활용 계획을 속속 발표했다. 정보통신기술과 융합한 의료데이터가 보건의료, 헬스케어 기술의 고도화를 이끌어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고 수명도 늘릴 것이라고 예측한 까닭이다.
미국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개인 의료데이터로의 접근과 공유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활용한 서비스도 운용 중이다. 의료데이터를 공유한 소비자에게 보험금 청구, 건강관리 앱 등 의료 서비스 전반의 편의를 제공하는 ‘블루 버튼’이 대표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원격 진료를 고도화하려 ‘데이터 인공지능 융합 모델’을 구축 중이다. 의료데이터를 활용해서 자원 배치를 최적화하고, 의료 서비스의 공급을 원활히 하면서 품질까지 높일 목적에서다.
유럽 연합도 의료데이터를 수집, 관리하고 산업·의학계와의 공유 및 연구를 허가하는 플랫폼 ‘유러피안 헬스 데이터 스페이스’를 만드는 중이다. 2025년경이면 이 플랫폼은 유럽 연합 내 소비자 약 4억 5000명분의 의료데이터를 확보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2월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의 규제 개선과 바이오헬스 시장 창출 전략을 논의하고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했다. 이 법률안에는 의료데이터 처리와 활용 촉진, 의료데이터의 제3자 전송요구권 도입, 보건의료데이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활성화 방안이 각각 담겼다.
의료데이터 수집과 저장 방안이 속속 마련되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의료데이터의 분석·활용 기술을 함께 고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리나라 수요 기업의 의료데이터 이용률이 저조한 점, 해외에서는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기술 시장이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은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이 산업이 아직 발전하지 않은 점이 근거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로 의료데이터 구축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의료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기술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탓에 의료데이터가 실제 의료 환경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데이터를 수요 기업이 쓰려고 해도 신청 서류 작성 방법이 복잡하고, 단순 통계 프로그램만 있을 뿐 분석·설계 기술이 없어 이용률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혁신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기술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목소리, 이들의 성공 사례를 앞세워 태동기인 세계 의료데이터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온다.
스스로 사진과 그림을 만들고 질문에 대답하는 생성 인공지능은 올해 정보통신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생성 인공지능의 토대는 방대한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용도별로 알맞게 활용하는 ‘알고리듬’이다.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생성 인공지능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료데이터도 그렇다.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료 부문에 알맞게 활용하는 알고리듬, 이 둘을 합친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능력을 발휘한다.
의료데이터가 능력을 발휘할 부문으로는 정밀 의료와 임상연구, 신약 개발 등이 꼽힌다. 정밀 의료를 하려면 환자의 병력과 증상, 유전자 정보와 생활 환경 등 여러 정보를 면밀히 분석해 기존의 의료 기술과 잘 융합해야 한다. 그래서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기술 도입이 필수다.
임상연구는 동물을 모델로 오랜 시간 실험을 반복하고, 여기에서 확인한 제품의 경쟁력을 초기 임상시험에서 증명하는 절차다. 그래서 자원과 비용을 많이 쓴다. 이 때 모델별 차이 때문에 앞서 확인한 효능이 입증되지 않는 일, 목표 환자군이 불명확해 실패하는 일도 잦다.
의료데이터를 활용하면 기저 질환과 증상의 양상, 치료 반응 등을 반영한 환자의 '층화구조'를 임상연구에 대입해 대상 환자의 범위를 유효하게 좁힌다. 여기에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기술을 더하면 다양한 가설을 단시간에 분석하고 유용한 결과만 골라 임상연구를 기획 가능하다. 자연스레 임상연구의 자원과 비용 소모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은 높인다.
같은 이치로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기술은 신약의 개발 효율을 높인다. 환자나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른 임상 특성을 의료데이터 분석 기술로 이해하면, 환자나 질병에 초점을 맞춰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러한 맞춤형 신약은 기존의 범용 신약보다 효과가 좋다.
이미 미국은 의료데이터의 분석·활용 기술을 활발히 연구 중이다. GE헬스케어는 MRI 영상을 분석, 품질을 높이는 알고리듬을 포함해 40개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FDA(미국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았다. 독일 의료기기 기업 지멘스도 영상 판독과 시각화 기술 30여 개의 FDA 허가를 받아 고도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이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한다. 제이엘케이와 딥노이드는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 병변을 찾고 진료를 돕는 솔루션을 앞세워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메디플렉서스는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기반으로 코호트(대상 집단)를 쉽게 설계, 고차원 DB 임상연구 시뮬레이션을 돕는 솔루션 올리(AllRe)를 선보였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 주제에 맞는 의료데이터 분석과 서비스 경험, 고차원 연구 알고리듬을 함께 접목한 서비스다. 종양이나 고령·만성질환의 고밀도 특화 데이터베이스를 쓰는 점, 연구 흐름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점, 임상연구를 돕는 기능을 여러 개 지원하는 점에서 해외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서비스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이미 국내외의 의료기관과 활용 사례를 만들었다. 이어 임상연구수탁기관, 정부기관과 지역자치단체 등 여러 파트너와 함께 올리를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솔루션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의료데이터 분석·활용 애플리케이션의 가치는 천문학적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 정밀 의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히는 임상연구와 신약 개발 등 의료 서비스 전반의 효용을 높이는 까닭이다.
의료계도 의료데이터의 수집·저장과 함께 분석·활용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의료계 관계자가 모인 토론회 '2023년 제 1회 보건의료데이터 혁신포럼'에서 참가자들은 '보건의료데이터를 활성화하려면, 기업이나 업계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분석하는 영역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규 메디플렉서스 대표는 "우리나라 정부는 지금까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사업 40여 개에 약 9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보건의료데이터를 잘 활용하려면 먼저 공급자와 수요자의 눈높이를 맞추고, 수요를 반영한 고도화 데이터 수집과 분석 서비스를 마련해 간편하게 쓰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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