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게임 시장을 뒤흔드는 게임 기업 중 ‘반다이남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반다이남코의 2022년 매출은 9,900억 엔(한화 약 9조 8,000억)에 달하는데요. 일본 기업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매출을 기록하는 기업입니다.
이 반다이남코는 ‘반다이’와 ‘남코’ 두 회사가 합병되며 탄생했고, 이들 중 남코는 ‘철권’ 시리즈를 비롯해, 게임을 잘 모르는 윗 세대에게도 익숙한 전자오락실 게임 갤러그, 팩맨, 제비우스 등 수많은 명작을 쏟아낸 기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임 기업이자, 수많은 게임 개발자에게 영감을 준 작품을 선보인 이 남코는 사실 백화점에 놀이기구를 납품하던 장난감 기구 제작사였습니다. 놀이 장난감을 만들던 남코는 어떻게 일본 게임 시장을 이끄는 게임 기업이 된 걸까요?
게임 시장에 뛰어든 장난감 기구 사업의 총포상 아들 남코의 시작은 1950년 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코의 창립자 고 나카무라 마사야는 원래 도쿄의 한 총포상을 운영하던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집안 가업을 잇는 일본의 풍토상 나카무라 마사야 역시 총포상을 물려받아야 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고 1959년 자신의 이름을 따 ‘주식회사 나카무라 제작소’(Nakamura Seisakusho Company)를 설립합니다.이 사명은 훗날 ‘남코’(NAMCO)의 어원이 됩니다.
회사를 창립한 후 ‘나카무라 제작소’는 동전을 넣어 움직이는 2대의 흔들목마를 제작해 요코하마의 한 백화점 옥상에 배치합니다. 이렇게 자금을 모은 나카무라 마사야는 도쿄의 백화점 옥상에 흔들 목마 승마장, 금붕어 연못, 기차 등이 배치된 일종의 작은 테마파크를 만드는데요. 이 테마파크가 그야말로 대박을 쳐 백화점 전 지부에 깔리게 됐고,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한 백화점 옥상 테마파크도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규모를 키웠지만 후발주자였던 나카무라 제작소는 후발주자로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새로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바로 ‘아타리 재팬’이 매각된다는 것이었죠. 70년대 ‘퐁’으로 전 세계를 휩쓸던 아타리는 일본에도 진출했는데, 이 일본 지사는 지부장이 실적 부진으로 사퇴하고, 직원들이 회사 물건을 내다 파는 등 상황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 아타리 재팬의 매각에는 ‘세가’, ‘타이토’ 등 당시 유수의 게임사가 입찰에 참여했는데, 나카무라 마사야는 무려 8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제시했습니다. 경쟁사였던 세가가 5만 달러 수준에 입찰했으니 무려 16배가 비싼 가격이었죠. 당시 회사 직원들도 ‘사장이 미쳤다’고 할 정도의 거금이었습니다.
게임 역사에 혁명이었던 남코의 주요 게임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타리 재팬의 인수는 나카무라 제작소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결정이 됐습니다. 아타리의 아케이드(오락실) 게임 유통을 독점한 이후 나카무라 제작소는 1979년 사명을 ‘남코’로 변경하며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나서게 됩니다.
이전까지 남코의 개발 환경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선배들이 일본 전역에 깔린 놀이기구의 보수와 영업으로 뛰어다니며 본업에 집중하고, 신입사원들이 기본 업무 시간 이외에 새로운 놀이기구나 게임 기기를 개발하는 방식이라 상당한 자유도가 보장되어 있었죠.
남코의 이러한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도래한 게임기 시대에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습니다. 1978년 최초의 비디오 게임인 ‘지비(Gee Bee)’를 선보인 이후 1년 후 출시한 ‘갤럭시안(Galaxian)’이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트리며, 회사 전체가 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년 출시되어 일본은 물론 미국에도 엄청난 히트를 기록해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팩맨’을 시작으로, 국내 오락실에서는 ‘방구차’로 유명한 ‘랠리X’, 50~60년대 생이라면 거의 다 한 번씩은 해본 ‘갤러그’, ‘디그더그’, ‘폴 포지션’ 등의 명작을 연 단위로 선보였습니다.
이 중 1983년 출시한 ‘제비우스’는 종스크롤 슈팅 게임을 최초로 선보여 슈팅 게임의 트렌드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뛰어난 그래픽을 도입해 이후 게임 그래픽과 시스템 모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걸작입니다.
80년대 남코 게임은 워낙 대단해서, 80년대 초 ‘비디오 게임의 황금기(Golden Age of Arcade Video Games)’ 시기를 ‘남코 황금기’로 따로 부를 정도입니다. 당시 남코의 게임들은 전 세계 소년들의 마음을 훔쳤을 만큼 그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신의 한 수’가 된 반다이와의 합병
이후 패미컴의 시대를 거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의 서드파티(소프트웨어 개발사)가 된 남코는 1994년 3D 대전격투게임 ‘철권’을 출시하는 등 여전히 히트를 이어갔지만, 1998년부터 시작된 일본 경기 침체의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게임 개발과 함께 매출의 큰 폭을 차지하던 오락실 사업에 큰 타격을 받았고, 2001년에는 매출이 91%나 감소하며, 무려 250명에 달하는 인원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등 회사에 큰 위기가 닥쳤죠. 이 위기의 남코에 손을 뻗은 회사는 바로 일본 최대 규모의 판권을 지닌 회사 ‘반다이’였습니다.
반다이는 남코의 게임 개발 능력을. 남코는 반다이의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고 있었고, 뜻이 맞은 두 회사는 2005년부터 인수합병 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인수는 시작부터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는 건데요. 인수 전부터 양사 직원을 대상으로 ‘합병 이후의 기업상’에 대한 논문 공모가 시행되면서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났던 것입니다.
2005년 반다이와 인수합병 절차를 마무리한 남코는 ‘반다이남코홀딩스’를 지주회사로 설립하고, 이전의 회사 조직을 합치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두 회사의 풍토가 맞지 않아 전혀 시너지가 나지 않았고, 되려 큰 폭의 적자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를 확인한 반다이남코는, 반다이는 캐릭터 판권 관리와 이 판권을 활용한 게임의 개발을, 남코는 기존 게임 라인업에 집중하는 수많은 계열사를 두는 방식으로 서로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했습니다. 이후 반다이남코는 게임 개발력과 괴물 같은 대형 판권을 활용한 사업이 동시에 빛을 발했고, 현재 일본 재계 순위에 손꼽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백화점에 설치된 흔들 목마를 만들던 작은 장난감 기구 회사였던 남코는 1978년부터 300개의 게임을 선보이며, 전 세계 게임 산업에 한 획을 그은 거대 게임사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반다이남코로 활동하고 있지만 개발력은 여전해, 조만간 ‘철권8’ 출시를 예고하며 전 세계 대전격투게임 팬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고 있는데요.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이 회사가 앞으로도 어떤 게임으로 전 세계 게이머를 설레게 할지, 게이머의 한 사람으로서 큰 기대가 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