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빌리티 업계에게 동남아시아가 새로운 기회의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정책에 맞춰 전기이륜차, 초소형자동차, 다목적운반차 등을 개발하고 있는 전동 모빌리티 업체에게 동남아시아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주목 받는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지자체 및 주요 기업과 전동 모빌리티 관련 시범사업, 실증사업 등으로 협력을 체결하는 국내 업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IT동아가 하일정 한국전기이륜형자동차협회(이하 KEMS) 상임이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토바이의 탄소 배출은 소형자동차보다 많다?
IT동아: 이렇게 만나서 반갑다. 먼저 KEMS는 어떤 기관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하일정 상임이사(이하 하 상임이사): 지난 2020년 설립한 KEMS는 환경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국내 전기이륜차 보급사업과 관련 산업의 발전, 국제 교류를 통한 국가간 기술 협력 등을 토대로 전기이륜형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륜형자동차라고 하지만, 삼륜, 사륜 등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일반 자동차 외에 전기로 움직이는 다양한 소형 모빌리티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제조사 이외에도 수입사, 부품사 등 70개사 이상의 회원사가 활동 중이다. 회원사들과 함께 정책토론회, 기업간담회 등을 개최해 네트워크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환경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산자원부 등 정부 및 기타 기관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관련 사업에 대해 전문적인 자문을 제공, 국내 관련 산업의 향상을 추진 중이다.
IT동아: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이외에 전기 모빌리티를 모두 포함한다면 굳이 이륜형자동차라고 지칭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하다. 오토바이만 해당하는 것처럼 연상되는데.
하 상임이사: 하하. 실제로 고민했던 부분이다. 우리나라 법률에서 이륜자동차를 총배기량 또는 정격출력의 크기와 관계없이 1인 또는 2인의 사람을 운송하기에 적합하게 제작된 이륜의 자동차 및 그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는 자동차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바퀴가 셋인 ATC는 삼륜형 이륜자동차, 바퀴가 넷인 ATV/UTV는 사륜형 이륜자동차로 지칭한다. 이 부분을 바꾸고 싶었지만, 50개 이상의 법령을 모두 변경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이륜형자동차라고 결정했다(웃음).
IT동아: 알겠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모빌리티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는데.
하 상임이사: 동남아시아의 이동 교통수단은 이륜자동차다. 이륜, 삼륜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출퇴근 시간을 비롯해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은 동남아시아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 인구 9800만 명이 살고 있는 베트남의 오토바이 보유 대수는 4600만 대에 이른다. 인구 2명당 1명꼴로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에도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2025년에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시작으로 도심에 내연기관 오토바이 접근을 금지시키는 규제도 시작할 예정이다. 오토바이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2019년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토바이가 배출하는 일산화탄소(CO)는 전체 도로이용오염원의 34%나 차지한다.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배출량도 23%로 상당한 수준이다.
IT동아: 자동차보다 적은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오토바이여서 오염물질도 적을 줄로만 알았다.
하 상임이사: 아니다. 50cc급 내연기관 오토바이는 1600cc 내연기관 승용차 보다 대기오염물질인 CO(일산화탄소)는 12배, HC(탄소수소)는 124배만큼 많이 배출된다는 통계도 있다. 구조적으로 오토바이는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된 오토바이는 더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때문에 점차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대기오염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가 협약한 탄소 중립에 대한 약속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동남아시아 국가에도 퍼지고 있다.
동남아시아가 직면한 친환경 전환과 도시화 문제
IT동아: 그러니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내연기관 오토바이를 전기 오토바이로 교체한다는 뜻인가.
하 상임이사: 맞다. 국가 정부 차원에서 관련 정책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특히,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시화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도시 개발 사업 중 하나로 친환경 모빌리티를 활용한 스마트시티를 적극 도입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이미 대도시화되어 있는 선진국은 구도심을 개발하거나 도시 전체 도로 인프라를 재정비하는 등의 작업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기존에 깔려 있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은 다르다. 말그대로 신도시 개발이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토지에 도시계획을 세운다. 이미 발전한 대도시는 새롭게 리셋하기 어렵지만, 아무것도 없는 지역에 처음부터 건설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IT동아: 이해했다. 현금 결제만 우선시하던 중국이 신용카드가 아닌 QR 결제 등 간편결제로 넘어간 것처럼 말인가.
하 상임이사: 비슷하다. 인도를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는 스마티시티 조성에 친환경 모빌리티를 도입하기에 용이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시스템부터 도로 인프라, 사물인터넷 등을 활용한 스마트시티를 처음부터 설계해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IT동아: 그래서 기회의땅인가.
하 상임이사: 실제로 국내 기업, 기관에 요청을 많이 들어온다. 동남아시아에 배터리 공유 스테이션과 전기이륜차 구동모듈을 납품하기 위해 도전하는 기업도 많다. 중국과 일본보다 우리나라 기업을 더 많이 찾는데, 중국은 제품 품질에 대한 신뢰성과 안전성을 믿지 못하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라 기술 이전 등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술 이전까지 포함한 내용으로 우리나라에 많은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최근에 교환형 스마트 배터리 팩 중심의 특수 목적 친환경차 전기차(PBV)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이노모티브가 베트남 푸동(PHU DUONG ORIGINAL COMPANY LIMITED)사와 160만 달러 규모의 실증 시범 사업에 협력하기도 했다. 양사는 유명 휴양지인 다낭을 중심으로 객실수 65만 개를 가진 3만여 베트남 리조트의 현지에 다목적 전기차를 공급하려던 것을 단일화된 배터리 팩을 이용해 현지 관광택시, 전기 이륜차, 화물 이동용 저속 운반 수단 등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오는 11월 말까지 시범 사업 지역을 3곳을 선정해 태양광 발전과 연계한 배터리 교환 충전소 및 시범용 차량 등을 운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지에 적합하도록 플랫폼을 개선한 후, 본 사업을 추진한다는 목표다.
IT동아: 기술 이전 이후에는 협력 관계가 끊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 상임이사: 아니다. 그건 과거처럼 단순히 제품을 거래했을 때 발생하는 일이다. 모빌리티는 이제 오토바이 팔고, 자동차 팔고 끝나는 분야가 아니다. 특히, 전기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륜차, 자동차 등은 에너지를 통합 관리하는 솔루션 산업이다. 촘촘하게 연결된 플랫폼 구조를 띄기 때문에 기술 이전 뒤에도 운용관리나 C/S 등에서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없다.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전동 모빌리티 업계
IT동아: 저렴한 가격과 대규모 물량을 앞세우는 중국 시장의 공세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하 상임이사: 확실히 중국이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저렴하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도 알고 있다. 제품 품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베트남을 예로 들고 싶다. 1999년쯤 중국 오토바이 업체들이 베트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일이 있었다. 일본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오토바이 제조 기술을 익힌 중국은 1993년 세계 1위 오토바이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오토바이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절도범죄 상승과 도시 공기오염 문제 등이 불거지자 잇달아 오토바이 운행 금지 조치를 내놓기 시작했다. 중국내 오토바이 제조업체 간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졌다.
그 때 중국 오토바이 업체가 진출한 것이 베트남 시장이었다. 당시 베트남 오토바이 시장은 일본 업체 천국이었다. 혼다, 야마하, 스즈키 등 일본 업체들이 연간 300만 대 규모인 베트남 시장의 98%를 점유했다. 이에 중국 업체들은 대당 1800~2100달러 가격이었던 일본의 오토바이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당 700달러 가격으로 수출했다. 베트남 현지 소매상에서 실제 판매되는 가격은 1200~1300달러 수준이었다.
초기 중국의 공세는 대단했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중국 업체간 가격 경쟁 심화로 판매 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이로 인해 품질에 문제가 발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에는 호찌민에서 중국산 오토바이 운행 도중 차체 절단 사고도 발생하며 사회문제로 커지기도 했다. 잦은 고장과 품질 불량, A/S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점 등이 중국산 오토바이의 치명적 결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중국산 오토바이의 평가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2007년부터 시장점유율은 눈에 띄게 하락해 한때 80%까지 갔던 시장점유율은 30%대로 떨어졌고, 2011년에 이르러 10% 아래까지 내려갔다.
IT동아: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다. 그럼 상대적으로 일본산 오토바이를 선호한다는 것 아닌가.
하 상임이사: 앞서 언급했듯 일본 기업은 기술 협력, 기술 이전 등에 폐쇄적이다. 물론 제품 경쟁력은 좋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연기관 오토바이 얘기다. 일본의 주요 오토바이 제조사들은 아직 전기이륜차에 집중하지 않는다. 간혹 컨셉 형태로 전기이륜차를 발표하지만, 실제 양산화하는 제품은 많지 않다. 적극적이지도 않고, 가격도 비싸다.
이러한 점이 국내 전기이륜차 업계에게 호재로 작용 중이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품질과 기술력, 베트남 현지 업체와 협력하려는 개방적인 움직임 등이 신뢰를 주고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국 오토바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일본에 대척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이래저래 우리나라에게 유리한 측면이 많다.
IT동아: 정리하자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내연기관 오토바이를 전기이륜차로 전환하기를 원하고, 스마트시티처럼 새롭게 도시를 조성하고자 하는 니즈와 맞물려 우리나라와 협력을 요청한다는 뜻인가.
하 상임이사: 맞다. 예상보다 적극적이다.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목적운반차도 찾는다. 캄보디아, 라오스처럼 아직 농업에 집중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는 경운기처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전동기를 원한다. 일명 ‘툭툭이’라고 불리는 삼륜 형태의 이동수단도 전기로 대체할 수 없는지 문의한다. 이렇게 다양한 전동 모빌리티를 하나의 배터리 팩으로 연결해 활용하고, 전기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을 찾는 이유다.
참고로 동남아시아가 요구하는 전동 모빌리티는 특유의 기후 때문에 몇 가지 요구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우기에 엄청난 강수량을 기록하는 지역답게 침수에 민감하다. 때문에 오토바이의 경우 타이어는 13인치 이상 큰 크기를 요구하며, 침수 시 성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배처리 팩 위치도 지상 30cm 이상에 배치하기를 희망한다.
IT동아: K-팝, K-드라마, K-영화 등 우리나라 이미지가 상승한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하 상임이사: 동의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남아시아에서 오토바이는 무조건 일본산이 최고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여러 요인과 함께 최근 한국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좋아졌다. 점차 발전하며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 현상,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탄소 배출 감소 노력, 새롭게 조성하려는 스마트시티 등 동남아시아는 모빌리티 업계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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