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유일한 200승 투수인 송진우 전 독립리그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57)은 숫자 ‘21’과 인연이 깊다. 그는 1989년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2009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21년간 줄곧 한 팀에서만 뛰었다. 프로 2년차부터 등번호 21번을 달았던 그가 승수는 정확히 210승. 그를 상징하는 번호 21번은 한화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가 세운 210승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보통 수준급 투수의 기준을 한 시즌 10승으로 본다. 210승을 하려면 한 해도 쉬지 않고 21년간 10승씩을 거둬야 한다. 그는 210승 투수임과 동시에 103개의 세이브를 달성한 투수이기도 하다. 200승-100세이브 기록은 더더욱 나오기 힘들다.
이 밖에 그는 KBO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이닝(3003이닝)을 소화했고, 가장 많은 타자(1만2708명)를 상대했으며, 가장 많은 공(4만9024개)을 던졌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일한 2000탈삼진(2048개) 투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그는 “부끄러움 없이 몸관리를 했다”며 “다른 무엇보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 행동하려 했다”고 했다.
선수 시절 그는 손톱깎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손톱깎이를 쓰다가 깊게 잘리기라도 하면 손가락 감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사포를 이용해 손톱을 정리했다. 그는 사포를 포함해 각종 손톱 관리 도구가 담긴 필통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사우나에서는 공을 던지는 왼쪽 검지와 중지는 물 밖에 내놨다. 욕탕에 몸은 담근 그는 의도치 않게 항상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뼛속까지 들어올까 봐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지 않았다. 대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선풍기 바람으로 천천히 열을 식혔다. 그는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 나온 행동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효과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야구를 잘할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선수 시절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던 운동 중 하나는 ‘쌀 씻기’였다. 작은 양동이에 쌀을 3분의2가량 채우고 팔뚝에 힘이 빠질 때까지 쌀을 쥐었다 폈다 하면 된다. 이 같은 과정을 3세트 정도 반복했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손목 강화는 물론 전완근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많은 투수들이 제구가 잘 되지 않는 이유를 어깨가 안 좋거나 체력이 달려서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악력이 떨어지면 공을 잡아주는 힘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공이 뜨게 된다. 포크볼 같은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들에게 특히 좋은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도 TV를 보면서 이 운동을 하면 팔 힘이 좋아질 수 있다. 매일 쌀을 씻다 보면 나중에 밥을 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농담을 했다.
50년 가까이 쉼 없이 야구 인생을 달려온 그는 요즘은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다. 2020년까지 한화 코치를 지냈고, 2021년에는 독립구단 스코어본을 이끌며 경기도 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지난해부터는 재능기부를 주로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KBO리그 재능기부위원을 맡았다.
요즘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늦둥이를 보살피는 것이다.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 재혼한 그는 2018년에 셋째 아들을 낳았다. 그는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종의 육아휴직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한창 뛰어놀 나이인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캠핑을 많이 다닌다. 캠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갈 수 없으니 조용하게 다닐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캠핑을 접하게 됐다. 첫해에는 캠핑카를 몰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요즘에는 차와 하우스가 분리된 트레일러를 갖고 다닌다. 그는 “설치하고 정리하는 게 정말 힘들다. 노동이나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래도 자연과 함께 하는 매력이 크다. 공기와 느낌이 도시와는 너무 다르다. 막상 다녀오면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캠핑은 집이 있는 대전 근교와 충청도 일대를 주로 다닌다. 그는 “금요일에 아이의 어린이집이 끝나면 바로 출발해 2박을 하고 다시 일요일에 돌아오곤 한다”고 했다.
그는 캠핑 말고도 골프와 낚시도 즐긴다. 그는 야구계의 대표적인 ‘골프 고수’ 중 한 명이다. 30대 중반인 2000년 정도에 골프를 시작했다. 따로 레슨을 받거나 제대로 배우진 않았지만 아마추어 시절 좋은 타자이기도 했던 그는 좋은 스윙폼을 갖고 있다.
핸디캡이 8인 그는 종종 싱글을 친다. 드라이버 샷은 마음 먹고 때리면 300야드를 날리지만 안정적으로 250야드 안팎을 보낸다. 투수로 제구력이 좋았던 그는 송곳같이 꽂히는 아이언샷이 일품이다. 2008년 충북 센테리움CC에서 열린 제27회 야구인골프대회에서는 이븐파인 72타를 쳐 메달리스트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캠핑을 함께 하면서 만난 아들 친구 학부모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골프를 치기도 한다”고 했다.
혼자 시간이 있을 때는 장비를 챙겨 낚시를 가곤 한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혼자 낚시를 하면서 머리를 식히곤 했다. 붕어 낚시, 배스 낚시, 루어 낚시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우럭이나 광어를 잡으러 서해 바닷가로 갈 때도 있다.
선수 시절부터 그는 몸을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뭔가라도 하면서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살이 찔 일이 없다. 선수 때와 비교해 먹는 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몸무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웨이트트레이닝 같은 체계적인 훈련을 하지 않아도 그는 여전히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육아휴직’ 중인 그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딱히 정해놓은 것은 없다. 지금처럼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재능기부를 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 다만 야구계를 위해 그가 가진 노하우를 전해주려는 의지는 확고하다. 그게 프로일 수도, 아마추어일 수도, 대표팀일 수도 있다.
선수 생활 초반 강속구 투수였던 그는 30대 중반 즈음인 2000년을 전후해 기교파 투수로 변신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30대 중반 이후 많은 승리를 올리면서 중년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며 “그렇게 관심을 받다 보니 자기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었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더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사회는 젊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간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베테랑들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며 “젊은 사람들과 베테랑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팀이 정말 좋은 팀이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위해 나도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