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무술 영화배우’ 이소룡의 영향으로 무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 때 물리학도였던 그는 무예에 심취해 결국 전공을 바꿨고 지금은 한국 전통무예를 수련하며 연구하고 지도하는 무예인(武藝人)으로 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한국무예연구소와 네덜란드십팔기협회를 이끌고 있는 최복규 박사(54) 얘기다. 그는 십팔기 7단의 고수로 매일 2~3시간 수련하고 지도하며 한국 전통무예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제 나이 또래 무예인들의 공통점은 이소룡의 세례(洗禮)를 받았다는 겁니다. 제가 네덜란드에서 와서 무술 사범들을 만나서 ‘왜 무예를 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거의 모두 이소룡이 출발점이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소룡, 성룡, 이연걸로 이어지는 무협 영화의 주인공에 매료되어 어릴 때부터 태권도와 유도, 쿵후를 배웠습니다.”
무협 영화의 주인공을 꿈꾸다 포기하는 대부분의 ‘이소룡 키즈’와 달리 최박사는 실행에 옮겼다. 그는 서강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뒤 본격적으로 무예에 입문했다. 서울 신촌로터리에 있던 한국무예원에서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십팔기(十八技)를 익히기 시작했다.
십팔기는 조선 영조 25년(1749년), 사도세자가 정리해 ‘무예신보(武藝新譜)’에 수록한 18가지 보병무예의 총칭이다. 현재 무예신보는 전해지지 않으나, 정조 14년,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이 왕명에 의해 이를 계승하고 보완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에 기록이 남아 있다. 십팔기는 무예 육기인 장창, 당파, 낭선, 쌍수도, 등패, 곤방에 죽장창, 기창, 예도, 왜검, 교전, 월도, 협도, 쌍검, 제독검, 본국검, 권법, 편곤의 열두 가지 무예를 더한 것이다. 고인인 김광석 선생이 국내에서 십팔기의 전통을 이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 박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련했다. 수련이 목적이었지만 몸도 탄탄해졌다. 최 박사는 도장에서 개인 수련에만 전념하다가 십팔기 전국대학생 연합이 1988년 말에 결성되자, 이듬해 서강대에 한국무예연구회라는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 사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는 학생운동으로 대학가는 늘 혼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창칼을 들고 수련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보였을지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데모의 선봉대로 앞장서 달라’거나 ‘백골단에 맞설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는 총학생회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무예는 단순히 창칼을 휘두르는 기술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무예가 신체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기는 하지만, 그건 껍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무예를 통해 구현되는 신체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 발차기를 잘한다고 해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예의 이면에 담긴 인문학적인 영역을 어떻게 하면 구체화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깊어지면서 졸업할 무렵을 전공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에서 무예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영산대학교 동양무예학과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무예를 학문화하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한계가 많았다.
“2004년 경입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유럽에 나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무예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현지 무예인들을 만났습니다. 무예가 유아 체육으로 전락한 한국 상황과 달리 유럽에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동양의 무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다들 배우려는 열의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무예에 대한 열정을 제대로 충족시켜줄 만한 정보가 제한됐고, 여전히 소림사, 화랑, 닌자의 신화가 어우러져 왜곡된 정보가 만연해 있었다. 무예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익힌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7년 네덜란드로 옮겼다. 곧바로 한국무예연구소를 설립해 레이덴대 한국학 센터와 함께 공동으로 한국 무예사 특강을 진행했다. 무예도보통지 사이클이라는 일련의 특강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아울러 네덜란드의 한국 무예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도자 과정도 개설해 무예 이론과 실기를 가르쳤다. 십팔기협회도 만들어 무예 보급도 병행했다.
최 박사는 왜곡된 전통무예를 바로잡기 위해 책도 많이 썼다. 최근엔 ‘일본 검술의 한국화’에 대한 책을 썼다. 그는 “일본 검술은 크게 세 단계로 한국에 유입됐다. 중국화한 일본 검술인 장도, 김체건에 의해 도입된 왜검, 그리고 구한말 근대화된 일본 검술인 격검. 하지만 일본 검술은 이 땅에 들어와서 변화하며, 적응했고, 진화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무술이 주류인 서구 사회에 무예의 후발 주자로 출발한 한국 무예가 그간 이룬 성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무예의 성취를 포장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무예계에 만연한 무예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는 무예를 고전 무예와 근대 무예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태권도, 합기도, 검도는 근대 무예이다. 근대 무예는 동아시아가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군사주의와 체육문화가 동아시아 무예 전통과 결합하면서 새로이 만들어졌다. 이전 전쟁터에서 사용되던 고전 무예와는 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무예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무예는 생사를 넘나들던 고전 무예와는 결을 달리한다. 건강, 수양, 스포츠를 위한 무예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근대 무예가 고전 무예에서 갈라져 나온 것은 맞지만 사실 양자는 서로 다른 무예로 봐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무예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대의 전환기에 근대적인 목적과 필요에 맞게 적응하며 발전한 무예가 바로 근대 무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도, 검도, 태권도, 합기도가 다 이 과정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무예들입니다.”
무협 영화 키즈로 무예에 눈을 떴지만 피상적인 인식은 김광석 선생에게서 무예를 사사하면서 바뀌었다. 김 선생은 무예가 단순히 몸놀림이 아니라 전통적인 지식 체계(그는 이를 몸학이라고 했다) 위에 축적된 지식 체계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김광석 선생에게서 전통적인 몸 움직임의 원리, 호흡법, 한약을 다루는 법 등 광범위한 지식을 전수받았다.
“지금 제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의 골간은 모두 해범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입니다. 제가 물리학에서 체육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도 사실 전통적인 몸학을 어떻게 근대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대학원 체육교육과로 진로를 바꿔 무예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체육교육과는 주변 학문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포츠 철학, 역사 뿐 아니라 생리학, 역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미학과와 철학과, 중어중문학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안목을 더욱 넓힐 수 있었습니다.”
최 박사는 몸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서 몸학은 말 그대로 몸에 관한 배움, 학문을 가리킵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기(氣) 개념을 통해 인간과 우주를 이해했습니다. 기는 인간과 우주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무예뿐 아니라 기공, 한의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습니다. 몸학은 바로 이러한 기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거기에서 나온 지식 체계를 가리킵니다. 무예는 맨몸, 혹은 병장기를 사용한 공격과 방어의 기술 체계로 크게 투로(품새), 공법, 격투의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됩니다. 투로는 공격과 방어를 위한 다양한 기술을 연결해서 수련하는 수련법을, 공법은 인체의 내외를 단련하는 방법으로 오늘날의 웨이트트레이닝, 인터벌트레이닝, 서킷트레이닝, 스트레칭과 같은 다양한 방법이 포함됩니다. 격투는 기술을 실제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법으로 흔히 대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수련은 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수련이 되었든 양기(기를 기르는 방법)와 연기(기를 단련하는 방법)의 방법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몸에 관련된 기공과 한의학과 같은 전통적인 지식 체계를 포괄해서 ‘몸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최 박사는 십팔기에 입문한 이래 무예는 그의 삶의 일부분이 됐다. 일상이 무예와 구분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이를 ‘생활 무예’라고 했다. 밥 먹듯 매일 2~3시간 수련한다. 그는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매일 밥 먹는 걸 거르지 않듯이 운동을 거르지 말아야 한다고. 운동하는 시간을 만들기 힘들면 일하는 틈틈이 일어나서 스트레칭이라도 하라고, 낮은 자세의 스쾃이라도 해서 하체의 힘이라도 키우고, 가볍게 발차기라도 하면서 몸을 움직이라고. 좁은 거실이라도 충분히 무예 수련을 할 수 있으며, 자그마한 막대기를 봉, 칼 삼아 움직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어떤 무술이든 배워서 수련하면 몸은 단련됩니다. 무술의 발치기, 주먹 지르기 등은 좋은 유산소 운동이자 근육운동이죠. 우리 몸은 움직이는 수련이 없으면 퇴화합니다. 일상생활에서 걷고, 앉고, 눕고, 일어서는 일거수일투족이 무예화 되어야 한다는 제 주장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로 보면 됩니다.”
30년 넘게 수련한 그는 아직 20대에 버금가는 체력을 과시하며 날렵한 손 발놀림으로 네덜란드 거구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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