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가면 힘이 넘쳐요” 사막마라톤 5700km 뛴 ‘오지 레이서’[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6일 12시 00분


2002년 모로코 사하라사막마라톤 250km를 6박7일간 달린 뒤 2019년까지 사막을 달렸다. 50km, 100km, 160km 울트라마라톤은 물론 9박10일간 560km를 달리는 호주 아웃백 레이스 등 전 세계의 극지 마라톤은 거의 다 참가했다. 그래서 ‘오지 레이서’란 별명도 붙었다. 유지성 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OSK) 대표(52)가 4년 만에 250km를 달리는 사막마라톤에 도전한다. 24일(현지시간)부터 30일까지 6박 7일간 칠레 아타카마사막을 질주한다. 이번이 250km 사막마라톤만 24번째 도전이다. 2020년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없었다면 몇 차례는 더 사막을 찾았을 터다.

유지성 대표가 사막을 질주하고 있다. 2002년부터 6박7일간 250km를 달리는 사막마라톤에 참가하기 시작한 그는 2019년 이후 4년만에 24일(현지시간) 시작하는 칠레 아타카마사막마라톤에 출전한다. 유지성 대표 제공.
유지성 대표가 사막을 질주하고 있다. 2002년부터 6박7일간 250km를 달리는 사막마라톤에 참가하기 시작한 그는 2019년 이후 4년만에 24일(현지시간) 시작하는 칠레 아타카마사막마라톤에 출전한다. 유지성 대표 제공.
“1990년대 말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건축 설계사로 일할 때 방송으로 사막을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으면서도 ‘나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달리기보다는 단지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죠. 건축 일에서 비전을 찾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2001년부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사하라사막으로 떠났죠. 낙타 대신 두 발로 사막의 모래 위에 선 것입니다.”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대자연의 품 안에서 포근함을 느꼈다. 유 대표는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 상상할 수 없는 자연과의 조화를 경험했다”고 했다. 그는 “난 불편하면 잠도 못 자는데 모래바람이 불고 발바닥이 물집으로 다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게 사막에만 가면 힘이 넘친다”고 했다.

“첫 도전 땐 정보를 몰라 양말을 잘못 신어 고생을 했죠. 얇은 속건 양말을 신어야 하는데 양말을 구할 수 없어 다소 두꺼운 것을 신었죠. 신발도 좀 커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안에서 발이 놀면서 모래와 섞이다 보니 5일 차엔 발바닥 전체가 물집이 잡혔고 피부가 다 떨어져 나갔죠. 그래도 붕대로 감고 완주했습니다.”

유지성 대표가 사막의 모래 언덕을 질주하고 있다. 유지성 대표 제공.
유지성 대표가 사막의 모래 언덕을 질주하고 있다. 유지성 대표 제공.
체중이 90kg을 넘었던 그는 사막마라톤 준비와 완주를 하면서 67kg까지 빠졌다. 평생 달려보지 않던 그는 걷기로 시작해 1km, 5km, 10km 등 천천히 거리를 늘렸다. 그는 “5km를 넘길 때가 가장 힘들었다. 10km를 넘긴 뒤에는 20km, 30km까지 쉽게 거리를 늘렸고 40, 50km 장거리 달리기를 거의 매일 했다. 대회를 앞두고는 산을 달렸다”고 했다.

사막마라톤은 ‘지옥의 레이스’로 불린다. 사하라는 섭씨 50도가 넘는 모래 위를 달린다. 모래바람도 이겨야 한다. 첫 사하라마라톤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모래 속일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사실상 모래 밥을 먹으며 버텨야 했다. 고비사막은 계곡과 산, 사막을 건넌다. 아타카마는 해발 4000m를 넘는 고지를 달려 ‘고산증’을 극복해야 한다. 남극마라톤은 추위와의 싸움이다. 한마디로 극한을 모두 모아 놓은 대회다. 유 대표는 “극한과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연에 순응하는 과정이다.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대자연에 적응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매일 달릴 거리를 무사히 완주하면 ‘오늘도 자연과 하나가 됐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유지성 대표가 사막을 질주하고 있다. 유지성 대표 제공.
유지성 대표가 사막을 질주하고 있다. 유지성 대표 제공.
첫 대회는 준비가 부족했지만 2003년 다시 사하라사막을 찾을 때부턴 장비를 제대로 갖췄다. 유 대표는 사하라와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완주하는 세계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2007년에 처음 달성했고, 2013년 그랜드슬램 2회째를 완성했다. 그랜드슬램 2회는 그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 170km도 2014년부터 3년 연속 출전해 달렸다.

“호주의 아웃백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는 죽을 뻔하기도 했죠. 대회 막바지 길을 달리다 대형 트레일러에 치일 뻔했어요. 말 그대로 차가 나를 스쳐 지나갔죠. 가방의 끈이라도 걸렸다면 저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못했을 겁니다. 나미비아에서는 길을 잘못 들어 절벽을 기어 올라간 적도 있죠.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2013년부터는 사막마라톤에 참가하면서도 국내에서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 대회를 기획해 만들었다. 2014년에 코리아 50K 프리레이스를 개최했고, 2015년엔 경기 동두천에서 코리아 50K를 만들었다. 영남 알프스 트레일러닝(현 울주 트레일 나인 피크)도 그의 작품이다. 11월 열리는 울릉도 트레일러닝 대회도 3회째다. 화이트트레일 인제, 산성 투어 등 다양한 트레일러닝 대회를 만들어 보급했다.

유지성 대표가 24일(현지시간) 시작되는 칠레 아타카마사막마라톤 출전을 앞두고 경기 파주 고인돌산책길을 달리고 있다. 파주=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사실 트레일러닝이란 말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막마라톤, 산악마라톤, 오지 마라톤, 엔드리스런 등으로 쓰이다 2012년쯤 트레일러닝 국제협회가 생기면서 트레일러닝으로 통합한 것입니다. 로드를 달리는 게 마라톤, 나머지는 트레일러닝으로 부릅니다. 트레일러닝은 산과 들, 사막 등 자연을 달리는 것입니다. 사막에 가면 사막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산과 계곡, 개울 등 다 있어요. 제가 해외에 나가면서 ‘왜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았지? 이렇게 조금만 벗어나면 또 다른 자유와 새로운 세상이 있는데…’라고 말하고 다니니 국내에서도 이렇게 자연 속을 달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처음엔 그런 사람들과 사막마라톤에 함께 출전했는데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과 함께 되는 순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대회를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일부 마니아들만 참여하는 수준이지만 자연을 달리며 기뻐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유 대표는 코로나19로 대회 개최를 못하게 되면서 트레일러닝 용품 유통을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을 모이지 못하게 하니 대회 개최는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산을 찾아 운동을 계속하고 있고 그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 시장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유럽에서 인정받은 제품들을 직접 현지에 가서 써보고 수입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급했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에 출전한 유지성 대표. 유지성 대표 제공.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에 출전한 유지성 대표. 유지성 대표 제공.
유 대표는 트레일러닝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제가 경험했던 레이스는 사실 극단적인 대회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집 근처의 공원을 뛰어도 트레일러닝입니다. 골목길을 뛰면 씨티 트레일러닝이죠. 걷다 뛰다 쉬고 먹어도 됩니다. 걷기보다는 조금 빠르고, 등산보다는 가벼운 차림으로 산을 걷고 달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혹 산을 달린다면 트레일러닝화가 있으면 다 됐다고 보면 됩니다. 트레일러닝화가 따로 있습니다. 트레킹화를 러닝화로 바꿨다고 보면 되죠. 가볍지만 접지력이 좋고, 쿠션이 있는 러닝화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의류. 장거리를 달린다면 배낭도 필요하죠. 의류는 사실상 개인 취향입니다. 일반적인 운동 티셔츠나 바지를 입어도 되고, 트레일러닝에 특화된 기능성 의류를 입어도 됩니다.”

국내에서 달리기 좋은 트레일러닝 코스는 어디일까?

“한국에 둘레길이 많이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둘레길이 산 주변을 돌아 부담스럽지 않게 갈 수 있어요. 동네에 있는 공원도 좋습니다. 즐겁게 달릴 수 있는 곳이면 다 좋아요. 서울의 경우 서울 둘레길이 좋죠. 남산 둘레길도 잘 정비돼 있어요. 굳이 산을 올라가지 않아도,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아래쪽 길들도 있습니다.”

유지성 대표가 경기 파주 고인돌산책길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파주=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4년간 대회 개최 등 사업에 집중하느라 다시 체중이 조금 불었다. 하지만 꾸준히 달리고 있었고 최근 집중 훈련으로 몸을 4년 전의 80%로 만들었다.

“사막에 가면 모두가 존중받죠. 도전 그 자체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승 등 순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4년 만의 도전,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비즈니스 및 대회 출전을 위해 호주 시드니마라톤에 간 유 대표는 17일 열리는 대회 10km에 출전한 뒤 18일 칠레로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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