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보다 정밀한 기술로 백혈병 치료 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기업 ‘베이스 편집 기술’ 임상

DNA의 특정 부분을 다른 염기로 변환하는 ‘베이스 편집 기술’로 미국 내 첫 임상시험을 실시한 미 바이오기업 빔 테라퓨틱스의 직원들이 실험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빔 테라퓨틱스 홈페이지 캡처
DNA의 특정 부분을 다른 염기로 변환하는 ‘베이스 편집 기술’로 미국 내 첫 임상시험을 실시한 미 바이오기업 빔 테라퓨틱스의 직원들이 실험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빔 테라퓨틱스 홈페이지 캡처
과학자들이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서 원하는 유전자만 편집, 교정하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기술을 고도화해 백혈병 치료에 도전한다. ‘베이스 편집 기술’로 불리는 이 기술을 적용한 치료법이 첫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21일 과학계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미국 생명공학 기업 빔 테라퓨틱스는 ‘T세포 급성림프모구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베이스 편집 기술을 활용한 치료법 임상에 처음으로 나섰다. T세포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은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세포 T림프구가 백혈병 세포로 감염되는 질환이다.

● 암세포와 더 오래 싸우는 면역세포 생성

베이스 편집 기술은 유전자의 이중나선을 여러 개 절단할 필요 없이 DNA를 다른 DNA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DNA를 구성하는 염기를 상당 부분 잘라내는 기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보완, 발전시켰다. 기존 기술이 작은 흠을 고치기 위해 ‘칼’을 대는 기술이었다면 베이스 편집 기술은 정밀한 화학적 처리에 가깝다. 베이스 편집 기술이 실제 질환을 치료하는 임상시험에 적용되면서 보다 정밀한 유전자 교정 치료법이 통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빔 테라퓨틱스가 진행하는 임상시험은 ‘BEAM-201’이란 치료 물질을 사용해 환자의 체내에서 ‘CD7’, ‘CD52’, ‘TRAC’, ‘PDCD1’이라는 4개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바꿔 새로운 면역세포를 형성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빔 테라퓨틱스 측은 “백혈병을 포함한 암과 싸울 수 있는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세포)’가 소진되지 않도록 해 환자에게 안정적인 치료 효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상시험을 이끈 와셈 카심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그레이트 오르몬드 스트리트 아동 건강연구소 연구원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베이스 편집 기술 치료법을 받은 환자들의 세포는 일반 세포보다 암세포와 더 오래 싸울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정밀한 교정 기술로 희귀 질환 치료에 도전

과학자들은 베이스 편집 기술의 가장 큰 장점으로 예측 가능성을 꼽는다.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이라 불리는 기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캐스9(Cas9)’이란 효소를 사용해 마치 가위질을 하는 것처럼 유전자의 특정 염기를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Cas9이 원하는 부위에서 DNA 이중나선의 양쪽 가닥을 잘라내면 세포의 DNA 복구 메커니즘이 작동해 염기를 삽입하거나 삭제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질병의 원인이 되는 타깃 유전자를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DNA 복구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조절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DNA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통상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교정할 확률은 10%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스 편집 기술은 일반적으로 DNA 이중가닥의 한 가닥만을 잘라낸다. 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과는 달리 DNA를 구성하는 4가지 염기인 시토신(C)과 아데닌(A)을 각각 티민(T)과 구아닌(G)으로 치환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보다 유전자 교정 결과를 더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 DNA 절단으로 인한 세포 사멸도 줄어든다.

빔 테라퓨틱스는 앞서 암 치료에 사용되는 CAR-T세포 치료법 개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CAR-T세포는 유도탄처럼 암세포만 찾아 공격한다. 이때 CAR-T세포가 암세포를 찾기 쉽도록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s), 즉 암 표적 단백질을 많이 생산하는 또 다른 조작 세포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치료법은 일부 유형의 백혈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를 보였지만 희귀·난치성 암인 T세포 급성림프모구 백혈병을 치료하진 못했다. CAR-T세포를 더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과학계는 베이스 편집 기술을 사용한 이번 임상시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에서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기 날디니 이탈리아 산 라파엘레 텔레톤 유전자치료연구소 연구원은 “베이스 편집 기술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유발하지 않는 또 다른 DNA 변화를 일으킨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베이스 편집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베이스 편집 기술
DNA를 구성하는 4가지 핵염기를 치환하는 방식의 유전자 편집 기술. 시토신(C)과 아데닌(A)을 각각 티민(T)과 구아닌(G)으로 바꾼다. 대표적인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와 비교했을 때 DNA의 이중가닥 구조의 손상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베이스 편집 기술#백혈병 치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