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에 유럽 딥테크 이끌 과학자 모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5일 03시 00분


물리학 전진기지 ‘가르힝 연구센터’
1957년 원자력에너지 실험로 짓고, 3년 뒤 물리연구소 문 열며 조성
국가 지원 받으며 장기 연구 전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2명 배출
코로나19 ‘게임체인저’ 역할 한 mRNA 백신 기반 기술 개발도

독일 바이에른주 가르힝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플라스마 물리연구소 전경. 가르힝=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독일 바이에른주 가르힝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플라스마 물리연구소 전경. 가르힝=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17km 떨어진 한적한 소도시 가르힝엔 거대 연구단지 ‘가르힝 연구센터’가 있다. 이곳에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2명 배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서 전환점을 가져온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기반 기술이 나온 곳도 여기다.

가르힝 연구센터 내 하인츠 마이어라이프니츠 연구소는 중성자 산란장치(KWS-2)를 개발했다. 화이자의 mRNA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는 이 장치를 활용해 지질나노입자(LNP)를 어떻게 조합해야 mRNA를 체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지 규명했다.

19일(현지 시간) 가르힝 연구센터에서 만난 과학자들은 “독일 연방정부와 바이에른주 정부의 꾸준한 지원으로 장기적 연구가 가능했기 때문에 mRNA 백신 기반 기술도 나올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 바이에른주 정부, 매년 세수 3.6% R&D에 투자
독일 최초의 실험용 원자로 FRM Ⅰ. 달걀을 닮아 ‘원자달걀(아톰아이)’이라는 별칭이 있다. 2000년 가동을 멈추고 폐쇄됐다. 가르힝=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독일 최초의 실험용 원자로 FRM Ⅰ. 달걀을 닮아 ‘원자달걀(아톰아이)’이라는 별칭이 있다. 2000년 가동을 멈추고 폐쇄됐다. 가르힝=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가르힝 연구센터는 1957년 독일 최초 원자력에너지 실험로 ‘FRM Ⅰ’을 지은 뒤 1960년 독일 막스플랑크 플라스마 물리연구소(IPP)가 문을 열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IPP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막스클랑크협회 소속이다. 올해 설립 75년을 맞이한 막스플랑크협회에서는 그동안 3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매년 독일 전역 막스플랑크협회 소속 85개 연구소에서 나오는 논문은 1만5000편이 넘는다.

독일 연방정부가 3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자연과학 분야 R&D 예산은 62억 유로(약 8조8100억 원)다. 2020년에 비해 12.4% 늘었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인 28억 유로가 기초과학인 물리학과 천문학에 투자됐다. 바이오엔테크가 mRNA 백신의 핵심 기술인 지질나노입자를 개발한 것도 KWS-2라는 물리학 분야의 경쟁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바이에른주 정부도 가르힝 연구센터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1993년 주 정부가 가르힝 연구센터에 투자한 약 10억 유로(약 1조4000억 원)는 FRM Ⅰ을 잇는 새 원자력에너지 실험로 ‘FRA Ⅱ’에 쓰였다. FRA Ⅱ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독일 중성자 연구의 핵심 자원이다. 바이에른주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주 정부 세수입의 3.0%였던 바이에른 주 정부의 세수 대비 R&D 예산 비중은 2020년 3.6% 수준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막스플랑크 플라스마 물리연구소의 루돌프 노이 교수(왼쪽). ‘프록시마 퓨전’의 프란체스코 시오르티노 CEO.
막스플랑크 플라스마 물리연구소의 루돌프 노이 교수(왼쪽). ‘프록시마 퓨전’의 프란체스코 시오르티노 CEO.
플라스마 물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루돌프 노이 뮌헨공대 물리학과 교수(IPP 소속)는 “국가 차원의 기본적인 예산 지원 덕분에 장기적인 연구가 가능해진 것”이라며 “이와 함께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과 연구소가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으로 5년 이상 장기 목표를 갖는 안정적인 연구그룹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전 세계 인재들 모여… 미래 에너지 개발 ‘박차’
기초연구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가르힝 연구센터는 전 세계 과학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 유학생 샤오밍 씨는 “물리학은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드는 기초과학”이라며 “장기 연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이곳의 최대 장점으로, 향후 이곳에서 다양한 연구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신 공학·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 에너지 개발을 겨냥하는 젊은 기업가들도 뮌헨에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곳이 5월 뮌헨 동역 인근에 둥지를 튼 핵융합에너지 스타트업 프록시마 퓨전이다. 핵융합에너지는 화석연료를 사용한 발전과 달리 탄소 배출이 없고 원자력 발전처럼 방사성 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미래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프란체스코 시오르티노 프록시마 퓨전 최고경영자(CEO)는 이곳에서 창업한 이유에 대해 “뮌헨이 유럽 딥테크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딥테크는 사회에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중요한 기술이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기술을 말한다. 그는 “가장 강력한 연구 파트너인 IPP가 근처에 있는 데다 도시에 스타트업을 장려하는 산업 생태계가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노이 교수는 “장기적으로 딥테크를 뒷받침할 연구를 이어갈 인적 자원을 발굴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전 세계 과학계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독일#가르힝 연구센터#유럽 딥테크#바이에른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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