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작성한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인 프로슈머(Prosumer)란,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더한 말이다.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고,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기업(생산자)이 제품을 개발할 때 일방적으로 기획 생산해 (소비자에게) 판매했지만, 소비자가 기획, 개발, 유통 등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일이 늘어나며 등장한 신조어다. 쉽게 정리하면, 내가 생산한 제품을 내가 소비한다는 의미다.
에너지 프로슈머는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을 뜻한다. 태양광, 풍력, 수력, 조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직접 전기를 생산하고, 직접 소비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독주택, 상업용 건물 등에 태양광패널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해 소비하는 사람은 에너지 프로슈머다. 마을이나 지자체 단위에서 바다나 논, 밭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도 같다. 이렇게 직접 생산하고 남은 잉여 전력은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셈이다.
2010년대 중반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위주로 주목받기 시작한 에너지 프로슈머는 최근 탄소중립과 연결되며 크게 관심을 받고 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신재생에너지를 주로 이용하는 에너지 프로슈머는 온실가스 발생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 집중형 생산 방식의 단점도 보완할 수 있다. 화석연료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의 경우 에너지 프로슈머는 에너지를 자립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인식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주변 국가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했던 국가는 말 못할 고충을 겪었다. 지난 3년 동안 이탈리아는 3배, 영국은 2배 이상 전기세가 폭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유럽을 필두로 전 세계는 온실가스 저감을 통한 탄소중립과 중앙 집중형 에너지 생산 방식에 대한 문제점 보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 프로슈머를 눈여겨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6년, 수원 솔대마을과 홍천 친환경에너지 타운 2개 지역을 대상으로 ‘프로슈머 이웃간 전력거래’ 실증사업을 실시하는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 분산화와 에너지 프로슈머 정책화에 노력 중이다.
직접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판매하는 에너지 프로슈머
독일에 위치한 펠트하임은 55기의 풍력발전기를 통해 약 2억 5000만kWh의 전기를 생산, 생산한 전기의 1% 수준을 주민이 사용하고 남은 전기를 인근 마을과 도시에 판매하는 마을이다. 펠트하임 주민이 내는 전기료는 다른 지역 대비 1/3 수준으로 저렴하고, 마을 견학과 풍력발전기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같은 독일에 위치한 다르데스 하임 마을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에너지 자립도는 10,000%로 펠트하임과 마찬가지로 남은 전기를 주변 마을과 도시에 판매한다. 이렇게 얻은 수익을 추가 발전사업에 재투자하거나 발전 사업에 참여한 주민이 분배해 나눠 가진다. 초기 투자비의 20%를 주민이 부담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을에 환원한다.
덴마크의 미델그룬덴과 삼쇠섬도 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3.5km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 미델그룬덴은 해상풍력발전단지를 통해 에너지 100% 수도에 공급하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마을이다. 삼쇠섬은 지난 2006년 전 세계 최초로 에너지 자립화를 이룬 섬으로, 에너지 보급을 받기 어려운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극복하며 에너지 자립을 이뤄 에너지 프로슈머의 좋은 사례로 평가 받는다.
특히, 에너지 프로슈머로 자립화한 독일과 덴마크의 마을은 전시 생산과 소비 이외에 새로운 가치 창출로 눈길을 끈다.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 시설과 마을 투어 등으로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며 부가 수익을 거두고, 지역내 일자리 창출로도 연결짓는다.
에너지 프로슈머, 새로운 가치 창출로 이어져
에너지 프로슈머는 에너지 분산화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 관리형태의 집중된 에너지 생산 체계를 갖췄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발전과 장거리 송전망에 의존했다. 대도시나 산업단지 등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제 에너지는 공급 문제뿐만 아니라 탄소중립, 환경과 안전, 주민 수용성 등이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설치비용만을 따지던 경제성 기준도 환경, 전력망, 유지비용과 같은 외적 영향을 반영하는 사회적 비용으로 변화하고 있다.
분산화의 첫걸음은 각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다. 아파트단지, 빌딩, 창고, 학교, 병원, 공장 등의 건물에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거나 풍력, 조력, 소수력 발전기 등을 설치하면 필요한 에너지를 쉽게 생산할 수 있다. 펼쳐진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스마트그리드, 마이크로그리드 등의 기술 발전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정부 및 지자체도 에너지 프로슈머에 노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12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시행하고 있는 지능형전력망 구축을 통해 중앙집중화 공급구조에서 분산에너지 확대로 에너지 프로슈머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전력공급 유연성 강화, 스마트한 전력소비 체계 구축, 전력계통 시스템 디지털화, 마이크로그리드 활성화, 지능형전력망 산업 생태계 구축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활용한 에너지 프로슈머 활성화도 촉진한다. 수원 솔대마을, 서울 동작구 상현초등학교, 서울·광주 SG 체험단지 등 국내 실증사례를 확대하고, 해외 에너지 프로슈머 사례를 벤치마킹해 프로슈머와 소비자간 전력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맞춰 전라남도 나주시도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프로슈머를 체험하며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실증사업을 준비 중이다.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 마을에 풍력발전기, 태양광패널, 소수력발전기 등을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고, 마을에서 소비하며 남는 전력을 판매하는 에너지 프로슈머 체험 공간이다. 또한, 마을 각 거점에서 생산한 전력을 배터리에 충전해 이륜차, 다목적 전기차 등의 동력으로 이용하는 스테이션도 마련한다. 이를 통해 이동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관광 산업 활성화 등에 나설 계획이다.
마이크로 모빌리티와 교체형 배터리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는 이노모티브의 김종배 대표는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프로슈머는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자립화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이라며,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생산한 전기로 운용하는 지역 내 이동수단은 노후된 이륜차, 경운기 등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으며, 불편한 지역 내 이동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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