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섭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등산 건강법
6년 전 49세까지 건강 상태 ‘최악’… 고교 동창에 이끌려 첫 산행
휴일마다 전국 돌며 2, 3곳 등산… 2년 전 100대 명산 오르기 도전
최중섭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교수(55)는 40대 때까지만 해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본업인 의사 업무에만 전념했다. 수술이 끝나면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고 바로 쓰러져 잤다. 업무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이러니 건강이 좋을 리 없었다. 지방간이 무척 심했다. 간 건강의 척도가 되는 간 수치(AST, ALT)가 300U/L(L당 유닛)을 넘어섰다. 간 수치의 정상 범위는 최대 40U/L 정도다. 고혈압약을 먹은 후의 수축기 혈압이 140㎜Hg였다. 체중은 115㎏에 이르렀다. 초고도 비만이었다. 서 있으면 튀어나온 배에 가려 발끝을 볼 수 없었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최 교수는 “이대로 간다면 5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랬던 최 교수의 운명이 6년 전 바뀌었다. 지금은 전국의 명산을 모두 오른 ‘전문 산꾼’이 됐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산, 힘들지만 또 가고 싶어져”
2017년 5월, 고교 동창회가 열렸다. 학창 시절 막역지우(莫逆之友)를 30여 년 만에 만났다.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 친구가 침샘암에 걸렸다. 최 교수는 동료 교수를 추천했고, 친구는 무사히 치료를 끝냈다. 친구가 고마워서 충고 하나 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너, 그러다가 큰일 나.”
친구는 20년 넘게 전국의 산을 다닌, ‘전문 산꾼’이었다. 그는 최 교수를 북한산으로 데리고 갔다.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세 명이 해발 400여 m의 영봉을 올랐다. 초보자도 2시간 이내에 오를 수 있다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최 교수는 “숨이 목까지 찼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도중에 몇 번이나 주저앉으며 포기하려 했다. 친구들이 간신히 말린 덕분에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최 교수의 첫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그날 저녁 최 교수는 끙끙 앓아누웠다. 최 교수는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뜻밖에도 이 결심은 이틀 만에 무너졌다. 산에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상에서 드러누웠을 때 얼굴을 스쳤던 바람이며,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풀의 향기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친구가 다시 주말 산행을 제의했다. 최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자”고 했다. 불암산으로 두 번째 산행을 떠났다. 이번에도 힘들었다. 최 교수는 “내가 미쳤지. 다시는 산에 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산에 올랐다.
● 2년 만에 100대 명산 오르다
며칠이 지나면 산이 궁금해지고, 막상 산에 오르면 후회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토요일에 산에 가면 일요일에는 온종일 끙끙대며 누워있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점차 산에 가는 횟수가 늘었다. 주로 수도권에 있는 낮은 산을 다녔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정말로’ 산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최 교수는 “이때부터는 산에 오를 때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퇴근하다가 방향을 바꿔 산으로 가기도 했다. 혼자 산행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서너 명의 고교 동창생과 함께 다녔다. 이 무렵부터는 지방에 있는 산을 찾아다녔다. 보통은 토요일 새벽에 모여 승용차 한 대로 지방으로 향했다. 4시간 남짓 이동한 뒤 첫 번째 산에 올랐다. 해가 질 무렵 하산하고 근처 숙소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상경하다가 두 번째 산을 올랐다. 최 교수는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 일요일 늦은 밤에 집에 도착하는 게 거의 일상이 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아웃도어 업체의 등산 애플리케이션을 알게 됐다. 전국의 명산 100개를 등산할 때마다 스탬프로 인증하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최 교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2021년 3월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미 다녔던 산이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올랐다. 풍경과 느낌이 또 다르게 다가왔다. 되도록이면 매주 두 곳의 산을 올랐다. 어떨 때는 일주일에 세 개의 산을 오르기도 했다. 올 6월,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의 가야산을 오름으로써 전국의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꼬박 841일 걸렸다.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최 교수는 “산은 다시 올라도 느낌이 다르다. 그 산을 다시 하나씩 오를 생각”이라며 웃었다. 그동안 다녔던 산 중에서 가장 아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단다. 최 교수는 “설악산 공룡능선 코스는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힘들기도 하지만 치명적일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 1년 산행, 몸이 가뿐해졌다
산행하다 보니 저절로 건강 관리가 됐다. 산행을 시작하고 딱 1년 만에 간 수치가 완벽히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세 자리였던 체중은 88㎏까지 떨어졌다. 오히려 급격하게 체중이 빠지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최 교수는 “체중이 많이 빠지니 당장 수술하는데 체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체중 감량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 무렵 병원 회식이 있었다. 대리운전 서비스를 신청하고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회식 장소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15분 거리. 경사가 워낙 가팔라서 평소에도 별로 걷던 구역이 아니었다. 최 교수는 “후배와 이야기하면서 올라갔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후배들이 오히려 뒤처졌다”라고 했다.
이후 최 교수가 달라졌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 보니 6개 층까지는 전혀 헉헉대지 않았다. 수술을 앞두고는 일부러 병원 밖 커피 맛집에 가서 커피를 사 오기도 했다. 이제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면 발끝이 보였다.
다시 1년이 지나자 모든 건강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고혈압 가족력이 있었다. 약을 먹어도 혈압은 140㎜Hg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110㎜Hg까지 떨어졌다. 틈틈이 퇴근 후에 집 근처 양재천 산책길도 걷는다. 최 교수는 “운동이 습관이 되다 보니 밥맛이 너무 좋아졌다. 살찔까 봐 걱정”이라며 웃었다.
● 무릎 근육 보호하려 틈틈이 운동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산에 오르면 무릎이 다칠 수 있다. 최 교수도 그랬다. 1년 6개월 만에 무릎 통증이 나타났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실제로 관절 손상이 확인됐다. 최 교수는 재활의학과 의사인 동생에게 해법을 물었다. 동생은 무릎 관절 주변 근육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 조언에 따라 연구실에 무릎 운동 기구를 들여놓고 매일 100회씩 꾸준히 운동했다.
종아리 근육 운동도 추가했다. 최 교수는 “특히 하산할 때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이 평지의 4배 정도는 된다. 종아리 근육이 강해야 부상이 안 생긴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최 교수는 연구실에서 최소한 100회 이상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닌다. 이 동작이 종아리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
이 재활 훈련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무릎 통증이 크게 줄었다. 이후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한 결과 2개월 만에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최 교수는 “친구들이 특효 주사 맞았느냐고 묻더라. 재활 훈련만 충실히 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 밖에 코어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가방을 메고 다닌다. 가방에는 얼린 물병 6개 정도를 넣는다. 이 경우 가방 무게는 최대 20㎏ 정도가 된다. 배낭이 무거워지면 코어 근육에 그만큼 힘을 더 주게 된다. 최 교수는 “생활 속에서 근력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일부러 팔굽혀펴기와 같은 운동을 하면 오히려 무리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재활 훈련을 하면서까지 산에 다니는 이유가 뭘까. 최 교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좋다”라고 했다. 그는 이를 ‘건강한 중독’이라 표현했다. 물론 지금도 산에 오르는 순간에는 힘이 들고 숨도 찬다. 그런데도 한 주일이 시작되면 주말 산행부터 떠올리는 것은, 산의 향기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등산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단다.
“속도 경쟁은 하지 마세요. 천천히 산에 올라야 부상의 우려도 적습니다. 또 입산 금지 구역에는 가지 말고, 공중도덕은 지켜주세요. 그래야 모든 사람이 쾌적하게 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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