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로 항상 우울? ‘마음정비사’를 찾으세요![건강 기상청 : 증상으로 본 질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31일 03시 00분


[인터뷰] 한창수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년 우울증 진료 환자 100만 명 돌파
“규칙적 휴식과 자기 성찰, 적절한 수면 중요”

한창수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 박해윤 기자
어느 날부터였을까? 뭘 해도 흥미가 없고 ‘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에 한없이 외롭기만 하다. 만사에 무기력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 하늘처럼 우울감이 머릿속을 점령해 당최 웃을 일이 없다. 만약 이런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당신은 지금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의학적으로는 ‘우울장애’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질환이다.

우울증은 한 해 100만 명의 환자가 병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있을 만큼 흔한 질환이 됐다. 2018년 75만3000여 명이었던 우울증 환자는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1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의 경우 8월까지 진료 인원이 80만 명을 넘어섰다(보건복지부·백종헌 의원실 통계).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병의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고려하면 실제 환자는 그 몇 배에 달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다. 보건복지부와 백종헌 의원실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이후 5년 동안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한 해 평균 1만3000여 명에 달한다. 2020년 이후 올해 9월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수치다. 국가응급환자 진료정보망(NEDIS)과 백종헌 의원실 통계에 의하면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자해 포함) 시도자는 2012년 2만1875명에서 2022년 3만7024명(잠정)으로 10년 만에 68%나 증가했다.

과연 우울증은 어떤 질환이고 발병 원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우울증을 예방하고 부작용 없이 치료할 수 있을까. 우울증 치료의 명의인 한창수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나 이에 대한 답을 구했다. 한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의료원 대외협력실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정신신체의학회 회장과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다.

우울증의 정의와 정확한 의학명은?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가 정식 진단명이다. 우울증이란 여러 가지 원인(생물학적 취약성, 신체질환, 생활스트레스, 인간관계 등)으로 인해 감정과 사고방식의 변화와 신경성 신체증상 등이 생기고, 이것 때문에 직장과 학업 등의 일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질환을 말한다.”

우울증의 대표적 증상은?

“2주 동안 우울함(소아와 청소년은 과민성, 예민함)이 지속되고 흥미와 즐거움이 저하되며 식욕의 증가나 감소에 따른 체중 증가 또는 감소, 불면이나 과다 수면, 부적절한 죄책감 등 핵심적인 증상 9가지가 있는데, 이것이 우울증의 진단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우울증 선별검사 표 참조).”

사회인 ‘기능의 저하’가 진단 핵심
동아DB



우울증 진단 기준은 무엇인가?

“국가 건강검진이나 국민건강영양조사 등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설문 진단 도구가 있다. 여기서 10점 이상이 나오는 경우 전문의와의 면담을 통해 필요하다면 내·외과적 병력과 신경학적 진찰, 심리학적 평가 및 뇌 영상 검사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ADHD, 불안장애, 알코올중독 등 다른 질환이 없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뇌종양이나 루푸스 등 신체질환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하거나 악화한 경우도 있고, 노인의 경우 치매 초기에 우울 증상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순 우울감과 우울증은 어떻게 구분하나?

“우울증까지는 아니어도 우울 증상이 있는 경우가 전체 인구의 20~30% 정도 된다. 즉, 가벼운 우울증 혹은 우울 증상은 아주 흔하다. 우울증으로 진단되려면 진단 기준에 나오는 증상 기준에 맞으면서 직장과 학업, 가정생활 등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야 한다. 즉, 사회인으로서 ‘기능의 저하’가 있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불안증)의 차이점은?

“우울증 환자 중 불안 증상을 동반한 경우가 30% 이상으로 아주 많다. 불안장애는 공황장애나 사회공포증, 범불안장애처럼 우울 증상보다는 불안 증상이 주로 나타나면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불안장애도 2015년 55만3000명이었던 환자 수가 2022년 86만9700여 명으로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크게 늘었다(보건복지부·백종헌 의원실 통계).”

우울증은 정신뿐 아니라 신체 여러 부위, 즉 전신적 증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피로감, 무기력감, 식욕부진 혹은 식욕항진, 수면장애 등 신경성 신체질환을 비롯해 다양한 전신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비만, 당뇨, 골다공증, 기억력감퇴, 암, 뇌졸중, 알코올중독, 심장병, 위장병, 두통과도 연관성이 있고 성기능, 임신율, 학습능력이 저하하기도 한다.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알레르기나 천식, 위장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고 루푸스 등 기존 면역질환이 악화하는 일도 자주 있다. 또한 통증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예민성이 증가하면서 만성통증 및 이명,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크게 생화학적 요인,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이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생화학적 요인과 관련해 아직 불분명하지만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이 우울증 발생에 어떤 역할을 한다는 최신 보고가 있다. 유전과 관련해서는 가족 중에 우울증이 있는 경우 우울증 발생 확률이 더 높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가족 중에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꼭 우울증에 걸리는 건 아니다. 경제적 문제 등에 따른 스트레스나 심리적 트라우마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심리적 회복력이 약해졌을 때 발생할 수도 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어떻게 다른가?

“공황장애는 급성으로 악화한 불안장애로, 마치 심장마비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조이고 숨이 막히면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게 특징이다. 불안장애는 우울증 환자에게도 흔해서 우울증과 함께 진단받거나 ‘불안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으로 진단되기도 한다.”

자살은 우울증 결과물 아니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우울증과의 연관성은?

“우울증 환자의 자살 시도가 많다고 해서 단순히 이를 우울증의 결과물로만 볼 수는 없다. 알코올중독, 불안장애, 조현병 등과 연관된 경우도 많다. 뇌의학적으로는 충동조절장애가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장기간 심한 우울 증상에 빠지면 비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충동 조절이 어려워진다. 이렇듯 자살은 신체 및 정신의학적 문제와 더불어 경제적, 가정적 문제 등 사회문화적 현상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의 우울증 치료제 오남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의존성(중독)도 문제지만 식욕 저하, 구토, 오심 등의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개발된 우울증 치료제 중에는 세로토닌 수용체나 도파민, 아드레날린 수용체 한두 개를 집중 공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는 높인 약물들이 많다. 또한 충동성을 조절하고 단시간에 항우울 효과를 보이는 비강 흡입용 치료제도 개발됐다. 의존성을 줄이면서도 식욕은 오히려 강화하는 약물도 나와 있다. 다만 사람마다 증상의 특성 및 유전적 차이점에 따라 효과나 부작용이 다르기 때문에 임상적 평가 또는 유전적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잘 맞는 치료제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울증의 일상적 예방법이 있다면?

“항상 마음과 몸의 컨디션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기 성찰’ 혹은 ‘메타인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걷기 등 자신에게 맞는 운동과 절주, 금연 등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도 중요하다. 특히 재충전을 위해 규칙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적절히 수면을 취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아울러 친한 친구나 멘토 혹은 ‘마음정비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주기적 대화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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