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바이오인공지능연구단 운영
올해 연구비 200억 원 지원받아
‘질병 발생 예측’ 등 연구에 매진
“암 진단 시기를 앞당기고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약물을 빠르게 찾아낼 것입니다. 인공지능(AI)과 바이오의 융합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선사할 것입니다.”
지난달 31일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에서 만난 이현숙 서울대 바이오인공지능연구단 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은 “연구단의 매우 도전적인 연구주제들은 당장 성과를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기초과학적 질문들은 혁신적인 차세대 기술의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 등 체외진단 전문 기업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올해 혁신적인 바이오융합 기술 개발을 위해 200억 원의 연구비를 이 교수가 이끄는 바이오인공지능연구단에 쾌척했다. AI와 바이오의 융합에서 출발하는 참신한 연구를 발굴·지원하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큰 규모의 연구 지원인 동시에 특정 성과를 달성하는 등의 미션이 부여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연구 투자다.
평균 연령 30대로 이뤄진 연구단은 주기적으로 모여 ‘난상토론’을 한다. 생명공학, 데이터사이언스,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현재 연구의 난점이나 향후 방향성에 대해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연구그룹이 합쳐져 덩치를 키우기도 한다. 이 교수는 “연구팀 간 칸막이가 없는 유연한 구조는 우리 연구단의 강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엄격한 계약 형식으로 연구비가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은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다른 연구 그룹과 협업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등이 지원하는 많은 연구개발(R&D) 과제는 서로 분절돼 있어 인력과 장비, 그리고 기존 성과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우리 연구단은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자유로운 형태의 연구단’을 표방하는 연구단은 실제 AI 바이오 융합 연구계에 신선한 화두를 던졌다. 지난해 마무리된 1차 공모에서 선정된 연구주제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단백질구조 예측모델 ‘로제타폴드’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진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우리 몸의 단백질이 체내 다른 요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한다. 구글 ‘알파폴드’와 같은 기존 단백질 예측 모델들이 오직 단백질에만 주목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민환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약물에 사용되는 화학물을 디자인하는 모델을 구현한다. 신약에 사용되는 물질에 가장 알맞은 구조를 AI의 힘을 빌려 쉽고 빠르게 찾는다. AI가 화학구조를 설계하는 것은 물리화학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으로 여겨진다. 이현숙 교수 연구팀은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기술인 ‘다중오믹스’를 고도화한다. 향후 환자에게 어떤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지 예측하고 또 현재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최적화된 약물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세포의 분화 과정을 밝히는 실험모델로 유명한 예쁜꼬마선충의 ‘뇌 지도’를 작성하는 연구도 있다. 뇌 지도는 뇌 속에 있는 신경 세포들의 연결을 모두 나타낸다. 현재 완전한 뇌 지도가 완성된 동물 중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진 동물은 초파리다.
이 교수는 “창의적인 실패의 과정이 될 것”이라면서도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얻기 위해선 일종의 ‘도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을 뒤흔들 연구는 경직된 구조나 목표하에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랜 연구자 생활을 하며 내린 결론”이라며 “연구단이 어떤 예상치 못한 성과를 낼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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