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정선군에 자리 잡은 ‘예미랩’
예미산 지하 1000m 아래 실험시설… 중성미자 등 우주 구조와 기원 연구
정선군 일대, 과학문화마을로 변신
지난달 ‘과학 그림그리기 대회’ 열려… 인근 학교서 우주입자 강연도 진행
“우주를 탐험하는데 왜 지하 1000m 아래로 들어가냐고 묻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 아이들에게 중성미자 실험시설인 ‘예미랩’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땅속의 우주’가 됐을 거예요.”
강원 정선군 소재 예미산 지하 1000m 아래 만들어진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실험시설인 ‘예미랩’. 7일 서울 잠실 롯데타워 높이인 555m보다 깊은 600m 터널을 뚫고 검은 먼지가 나는 철광석 레일을 지나 회색빛의 거대한 지하실험실을 맞닥뜨렸다. 그곳에서 만난 소중호 IBS 책임기술원은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이같이 말했다.
정선군 일대를 과학문화마을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에 착수한 그는 “정선군 내 초중고생은 물론이고 주민 누구나 연구단을 방문해 우주를 이루는 암흑물질과 중성미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토론할 수 있다”며 “길에서 마주친 주민들과 수다 떨듯 핵입자물리 이야기를 하는 동네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과학으로 수다 떠는 마을 떠올려
1년여 전인 지난해 10월 5일 준공한 예미랩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관측 등을 통해 우주의 구조와 기원을 연구하는 실험시설이다. 지하 1000m에 실험실을 구축한 건 우주에서 오는 방사능이 지표면에 비해 100만분의 1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관측이 쉽지 않아 ‘유령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 관측은 물론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 연구도 가능하다.
소 기술원은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리드에 위치한 지하실험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당시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간 도넛 가게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눈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그 생각이 과학문화마을의 시작이었다. 평범한 노인들은 우주의 23%를 구성하고 있음에도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암흑물질의 유력 후보 ‘윔프(WIMP)’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 기술원은 “그 순간 ‘동네 전체가 수다 떨듯이 과학 얘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을을 내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소 기술원은 IBS 지하실험연구단에 재직하던 중 예미랩이 준공되자 과학마을을 떠올렸다. 먼저 인근 학교에 직접 연락해 우주입자, 핵물리입자에 대한 강연을 자청했다. 소 기술원의 강연 기회를 마련한 당시 강원사북고에 재직 중이던 김문섭 교사(태백 한국항공고)는 “정선군 아이들이 과학자를 만날 기회 자체가 없다”며 “학생들이 과학자를 직접 만나면서 이공계 진로진학 상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 낮은 출생률에도, ‘꿈은 마을에 있다’
소 기술원의 노력으로 지난달 유아부터 중학생까지 참여한 마을 단위의 첫 행사가 열렸다. 정선 신동읍 함백중고등학교 총동문회의 지원으로 ‘과학 그림그리기 대회’가 개최됐다. 어른들이 간식을 만들어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등 대회는 지역 축제가 됐다. 초등학교 2곳, 중고등학교 각 1곳에서 총 18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예미랩’과 ‘우주’, 그리고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광산’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첫 행사 성공에 탄력을 받은 IBS 연구진과 읍내 교사들은 내년 4월 과학의 달을 앞두고 또 다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지난주 첫 기획회의를 마쳤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퀴즈, 초등생을 중심으로 한 ‘나무젓가락으로 다리 만들기’ 등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공사가 한창인 지하실험연구단 지상연구실은 추후 지역 주민을 위한 세미나실로 개방할 예정이다. 한쪽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검출기 등을 전시해 누구나 관람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예미랩에서 연구를 수행 중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연구자들과의 만남도 기획 중이다.
정선군의 교사들은 3년 내 학교 인원이 한 반에 약 7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도 문제지만 더 나은 교육·생활 여건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꿈꾸는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결국 자신들이 이 마을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직업을 이야기한다”며 “과학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미래의 노벨상을 꿈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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