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IT 업계 거물로 스티브 잡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스티브 잡스는 1977년 최초의 일체형 컴퓨터 ‘애플2’를 선보여 가정용 컴퓨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고, 2007년 공개한 ‘아이폰’을 통해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 놓았습니다. 잡스는 두 제품 외에도 수많은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며 세상에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2011년 잡스 사망 후 일론 머스크가 또 다른 혁신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머스크는 남다른 발상과 도전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데요.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지형도를 바꾼 전기차 그룹 ‘테슬라’와 민간 항공우주 기업으로서 지금까지 엄청난 성과를 거둔 쌓은 ‘스페이스 엑스’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잡스와 머스크라는 두 IT 거물의 배경에 게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게임 분야는 이들 거물의 삶은 물론 기업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벽돌깨기 게임 ‘브레이크 아웃’
잡스는 1974년 미국의 게임사 아타리의 문을 두드립니다. 아타리는 ‘퐁’으로 유명해진 게임사로, 당시 ‘즐기면서 돈 버세요‘라는 광고를 걸고 인력 충원이 한창이었습니다. 광고 문구를 보고 무작정 아타리를 찾아간 잡스는 “일자리를 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아타리 대표인 놀란 부쉬넬은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배짱을 보고 그를 고용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게 대학교를 자퇴하고 온 히피 청년인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의 초기 사원 50명 중 한 명이 됐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아타리 동료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게임 개발을 위한 전자공학도 잘 몰랐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면서 몸을 잘 씻지 않으며 땀 냄새 제거제 등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죠.
잡스는 사내 규정까지 바꿔가며 야근할 정도로 오기와 끈기로 버텨내던 어느 날, 그에게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고 기기에 들어가는 칩 수를 최대한 줄이라는 미션이 떨어집니다. 1970년대 아케이드 게임기는 소프트웨어 개발보다 하드웨어 구동용 칩 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질 정도로 칩 가격이 비쌌습니다. 당연히 게임기에 들어가는 칩 수를 줄이는 게 중요했습니다.
당시 아타리가 준비하던 게임은 화면 위에 벽돌이 있고, ’퐁‘처럼 공을 튀겨 화면의 벽돌을 박살을 내는 콘셉트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벽돌깨기’ 게임 류의 시초로, 게임의 이름은 ’브레이크 아웃‘이었죠. 다만, 브레이크 아웃의 문제는 너무 많은 칩을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제품이 약 150개의 칩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잡스는 게임기에 들어가는 칩 수를 줄이기 위해, 컴퓨터를 잘 아는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을 찾아갑니다. 당시 워즈니악은 HP(휴렛팩커드)에 재직 중이었죠. 잡스의 부탁을 받은 워즈니악은 3일 밤을 새워가며 ’브레이크 아웃‘에 들어가는 칩을 45개로 대폭 줄이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제품과 동일하게 작동했죠.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잡스는 ’브레이크 아웃‘ 설계 단순화 보수로 5,000달러(현재 환율로 한화 약 650만 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워즈니악이 대가로 받은 돈은 350달러(약 45만 원)에 불과했죠. 잡스가 회사에서 700달러만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워즈니악은 이를 반으로 나눈 돈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각자의 영역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던 둘은 1974년 판매가 시작된 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 8800)’를 보게 됩니다. 이를 보고 가정용 컴퓨터 시장이 올 거라 확신한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합니다. 그리고 1976년 ‘애플1’, 1977년 ‘애플2’을 개발해 컴퓨터 시장에 돌풍을 일으킵니다. ’브레이크 아웃‘ 게임 개발 경험이 애플2 개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죠. 즉 게임이 애플이라는 기업의 탄생에 든든한 기반이 된 셈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한결같은 게임 사랑
일론 머스크는 게임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국제 게임쇼인 E3 2019 좌담회에 등장해 “게임은 어린이를 기술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며, 나도 어린 시절 게임 덕분에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머스크는 그가 만 12세가 되던 1984년 코모도어 ‘VIC-20’와 IBM PC ‘XT’를 구입하고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을 혼자 공부해, ‘블라스타’라는 슈팅게임을 동생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우주에 가고 싶었던 꿈이 담긴 게임이죠. 특히, 머스크는 이 게임을 잡지 회사에 500달러에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이 게임의 개발 코드 167줄이 실린 출판물이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시작이 됐습니다.
남아공과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자리를 잡은 머스크는 1994년 낮에는 피더클 연구소에서 슈퍼축전기 연구, 밤에는 로켓 사이어언스 게임즈라는 게임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습니다. 머스크는 로켓 사이어언스 게임즈가 SEGA CD로 출시한 우주 배경의 슈팅게임 ‘로드스타(Loadstar)’ 등의 개발에 참여해 게임 개발자로 경험도 쌓게 됩니다.
머스크는 또한 비디오 게임 사업도 잠시나마 고려했을 정도로 게임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워낙 큰 스케일에 도전하려는 그의 성격 때문일까요? 게임 쪽 진로는 점점 멀어졌고, 그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기반 도시정보 제공 업체 ‘Zip2’, 핀테크 기업 ‘페이팔’ 등을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현재 그의 업무와 사업 분야는 게임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머스크의 게임 사랑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인기 게임이 출시되면 직접 플레이해보는 게이머라고 밝혔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전기차 테슬라를 통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비디오 게임이 그가 어릴 적부터 게임을 사랑했던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닐까 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