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간 전이된 대장암 최희원 씨
장염-변비-체중 감소 동시에 나타나… 혈변-복통 겹친 후 대장암 3기 진단
대장암 수술에 항암 치료 마쳤는데, 간에 전이…대장암 4기로 병기 조정
매일 2시간 이상 운동하고 뭐든 먹어… “환자의 긍정적 자세가 완치 특효약”
최희원 씨(47)가 30대 후반이던 10년 전. 어느 날 만난 지인이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당시 최 씨는 다이어트 중이었다. 실제로 체중이 짧은 시간에 5kg이 빠졌다. 최 씨는 다이어트가 효과를 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무렵부터 배가 자주 아팠다. 동네 의원에 갔다. 장염 같다며 약을 처방해 줬다. 약효는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르면 저절로 증세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드문드문 의원에 갔고, 그때마다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얼마 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도 제대로 용변을 보지 못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있었던 변비 증세가 심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변비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갑자기 체중이 빠진 것이나 변비가 심해진 것은 모두 대장암으로 인해 나타난 증세였다. 하지만 동네 의원 의사도, 최 씨도 대장암일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 대장암 수술 후 항암 치료 돌입
어느 날 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 무렵부터 복통의 강도도 심해졌다. 배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제야 최 씨는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최 씨의 대장암 수술을 집도한 이윤석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당시 인천성모병원 교수)는 “심한 변비, 혈변, 통증이 나타난다면 암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것이다. 최 씨의 경우 이런 증세가 나타나기 1, 2년 전에 이미 대장암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암은 나이 들어서야 생기는 걸로만 알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맞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젊은 환자가 증가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장암은 60대 이후에 주로 걸렸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집에서 가까운 인천성모병원으로 갔다. 최 씨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림프샘으로 전이된 대장암 3기 진단이 떨어졌다. 서둘러 수술해야 하는 상황. 이 교수가 수술을 집도하기로 했다(이 교수는 나중에 서울성모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2013년 8월, 최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이 교수는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3시간 정도 소요됐다. 암은 대장의 중간 부위인 결장에 있었다. 이 부위를 제거하고 대장의 위와 아래쪽을 연결하는 수술이었다. 대장과 연결된 림프샘도 절제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 암은 완벽하게 제거된 것 같았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한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항암 치료는 2주마다 한 번씩, 꼬박 6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진행됐다.
● 대장암 이겨내니 간에 전이
이제 모든 치료가 끝났나 싶었다. 안심하려던 찰나, 최 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4개월 후였다.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는데, 간에서 암이 발견됐다.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이다. 암이 원격 전이됐기에 병기는 대장암 3기에서 대장암 4기로 조정됐다.
이 교수는 “3기 대장암의 경우 수술을 끝낸 후 1, 2년 이내에 전이가 생기는 확률은 30∼40% 정도”라고 했다. 60∼70%는 재발하지 않고 완치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최 씨는 행운보다는 불운에 더 가까운 사례인 셈이다. 최 씨는 “젊은 나이에 암이 생겨서 전이가 생긴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죽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간으로 전이된 암을 제거하기 위한 치료에 돌입했다. 수술에 앞서 선행 항암 치료를 3회 진행했다. 이어 암이 있는 간의 오른쪽 부위를 제거하는 간 절제 수술을 시행했다. 4, 5시간이 소요된 큰 수술이었다. 이번에도 수술은 잘 끝났다. 다시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추가로 9회의 항암 치료를 마쳤다.
그 후로 5년이 지났다. 2019년 9월, 대장과 간에서 암세포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비로소 최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암이 재발할 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굳이 비교하자면 암에 걸린 적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재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대장암의 경우 일단 완치하면 다른 암에 비해 재발 확률이 낮다. 만약 전이됐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컨디션만 잘 유지하면 다시 완치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최 씨는 매년 병원을 찾아 몸 전체를 살피는 CT 검사와 종양표지자 검사를 받는다. 3년 혹은 4년 간격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도 한다. 이렇게 하면 설령 암이 재발 혹은 전이되더라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 운동하며 24회의 항암 치료 버텨
항암 치료를 받으면 속이 좋지 않아 음식 섭취가 힘들어진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권하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는 환자들이 오히려 드물다.
최 씨도 마찬가지였다. 속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무엇이든 먹으려고 했다. 과일을 자주 먹었다. 팥이 든 도넛이 그나마 괜찮아 1주일 내내 도넛만 먹은 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기왕이면 영양이 더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좋았겠지만, 어떻게든 음식을 먹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운동도 암 환자들의 완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최 씨도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2시간씩 집 주변을 걸어 다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전반부 12회의 항암 치료를 수월하게 견딜 수 있었다.
간으로 전이된 후 다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술 전에 3회, 수술 후에 9회를 받았다. 다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 경우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최 씨도 그랬다. 게다가 항암제는 더 강했다. 손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왔다. 이를 견딜 수 없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버렸다.
메슥거림도 더 심해졌다. 이번에도 먹는 게 고역이었다. 암에 걸리기 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고기는 아예 먹을 수 없었다. 밥 냄새도 맡지 못했다. 그래도 최 씨는 참고 먹었다. 이때는 주로 사과와 바나나, 고구마를 먹었다. 양배추도 데친 후 갈아서 먹었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4, 5년이 지난 후까지 음식 냄새에 민감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정상을 되찾았다.
●“긍정적 태도가 치료에 도움”
완치 비결을 묻자, 이 교수는 “환자인 최 씨가 아주 밝고 긍정적이다. 그런 면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 씨는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단다.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울면 아이들이 속상해할 테니까. 이후 최 씨는 아이들 앞에서 단 한 번도 찡그리거나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암 환자란 사실조차 몰랐다.
최 씨는 또 고치면 나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최 씨는 “수술하고 치료하면 될 것이고,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간 전이 판정을 받았을 때는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간 수술을 집도할 의사를 처음 만났을 때도 환하게 웃었다. 최 씨가 너무도 의연해서 당시 의사가 “혹시 환자 당사자 맞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밝은 성격의 최 씨이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암이 완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암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평생 경계한다는 뜻이다. 최 씨는 “완치됐다고는 하나 무서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 때문에 매일 3시간씩 집 주변에 있는 산을 오르며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 유발 요소인 비만을 막기 위해서다.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을 때 자녀가 같은 암에 걸릴 확률은 2∼3배 높아진다. 최 씨는 이 점이 신경이 쓰인다. 그 때문에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입학 선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켰다. 이 교수는 “대장암 환자였다면 최 씨처럼 자식들을 20대 때부터 관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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