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쓰는 행정망 먹통 사태가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공공 전산망 구축을 여러 업체에 쪼개서 발주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본다.
대기업 배제 정책이 문제였다는 점이다.
행정망 오류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카카오톡 접속 오류 사태와 결이 다르다. 카카오톡의 경우 문자 메시지·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대체재가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쓰는 정부24는 대체할 도구가 없다.
2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행정망 마비는 ‘엘포’(L4)라는 네트워크(NW) 스위칭 장비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불거졌다. 정부가 밝히진 않았지만 해당 장비를 납품하고 구축한 업체는 중소기업 중견A사로 알려졌다.
◇‘네트워크 트래픽 부하 분산’ 담당 L4 스위칭 장비서 문제…중소기업 납품
‘L4’는 서버 로드 밸런스(네트워크 트래픽 부하 분산)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치다. 7개 계층(레이어)로 구분되는 네트워크 중 하나다. 여러 서버를 한 대처럼 묶어서 사용해준다. 또 통신 장애가 생기면 빠른 복구를 돕는 중요한 기술이다.
쉽게 말해, A 은행 창구(서버)에 사람(트래픽)이 많이 몰렸다면 비교적 한산한 B창구(서버)로 사람(트래픽)을 이동시켜 서비스 접속 오류가 나지 않도록 한다.
이번에 먹통이 된 행정망은 공무원이 행정업무 처리에 쓰는 새올지방행정정보시스템과 온라인 민원 사이트 정부24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새올과 정부24의 서버·네트워크 장비가 있는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16일 내부 장비 교체 및 업데이트 작업을 하다 오류가 발생했다.
다음날인 17일 오전 공무원이 행정업무 처리에 쓰는 새올 시스템에서 L4와 짝을 이뤄 움직이는 GPKI(정부 공개키 인프라) 인증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했고, 그 여파가 같은날 오후 ‘정부 24’ 접속 오류로 이어졌다.
◇업계 “IT 강국? 행정망 마비 황당…분리발주 공공 SW 입찰 개편해야”
업계는 문제 재발을 막기 위해 분리발주 형태의 ‘공공 시스템 입찰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본다. 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 제한 같은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짙다. 공공 전산망 구축시 여러 업체로 쪼개기 발주한 게 문제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L4 같은 스위칭 장비는 라우터(적합한 경로 설정)에 밀착되어 있다. 시스템이 꺼져도 전원을 다시 가동하면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장기간 문제가 이어진데는, 여러 중소기업이 역할을 나눠 폐쇄적인 형태로 시스템을 꾸린 영향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분리된 영역만 계속 개발하다보면 A사가 만든 프로그램을 (같은 컨소시엄인) B사가 확인할 길이 없다”며 “각자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접속 오류가 생기면 서로를 탓할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는 2013년 공공 IT 서비스 시장을 주요 대기업이 독점한다는 이유로 5조원이 넘는 대기업의 공공 서비스 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중소 SW 업체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게 취지였다.
물론 대기업 역시 공공 SW 사업 참여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사업 수주가 가능한 구조여서 중소기업의 업무 비중이 상당하다.
국가기관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한 건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공공 SW 프로젝트에서 규모가 큰 대기업의 비중이 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6월 오류를 빚은 4세대 나이스(NIES·교육행정정보시스템) 역시 중견기업 쌍용정보통신이 컨소시엄을 꾸려 개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장비 업그레이드 작업은 대부분 중소기업 협력사 직원들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담당자들의 이직이 잦은 편”이라며 “내부 업무 절차나 규정을 잘 지키지 않고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원24 서비스, 아현동 전화국, 카카오톡 사태는 우리의 전산망이 얼마나 예민하고 연결된 상태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며 “중소기업 해당 업무 담당자 중에서 전체 네트워크 구성도를 알고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 SW 발주 시스템 자체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IT 서버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프로젝트 수행사를 선정할 때 보통 가격 점수를 중요하게 보는데, 가격을 낮게 책정할수록 유리한 경향이 있다”며 “선정된 기업은 원가 절감을 위해 낮은 수준의 인력과 기술을 투입할 수 밖에 없어 대기업 입장에서도 공공 SW는 탐나는 분야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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