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 선수를 앞세운 SK T1이 지난 1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에서 중국 LPL의 웨이보 게이밍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8년 이후 5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한국팀이 우승한 것이며, T1은 지난 2016년 이후 7년만에 다시 4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롤드컵 역대 최다 우승이며, 특히 페이커 선수는 팀과 마찬가지로 4회 우승으로, 개인 최초 롤드컵 4회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됐습니다.
최근 연이어 준우승에 그치면서 힘든 과정을 겪었던 롤드컵의 황제가 다시 부활한 것인 만큼, 시청자 수가 1억 명에 달할 정도로 국내외 e스포츠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정치권 인사들의 높은 관심입니다.
경기 전 행사 참여 소문이 돌았던 윤석열 대통령은 경기장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20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T1 선수단 여러분, 7년 만에 롤드컵 우승이자, 네 번째 롤드컵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며, “앞으로 정부는 게임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입니다”라고 장문의 축전을 남겼습니다.
대통령 참석은 불발됐지만,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기를 직관하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유인촌 장관은 15일 부산 지스타 개막 전에 열린 게임대상에 참가한 후 바로 서울에 올라와 롤드컵 경기를 직관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이외에도 e스포츠 관련 법안을 다수 발의하고 있는 이상헌, 하태경, 유경준, 허은아 의원도 앞다투어 T1 우승 축전을 남겼습니다.
정치권 인사들의 e스포츠에 대한 관심 표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전 종목 메달이라는 성과를 달성했을 때도, 안철수 의원, 이상헌 의원 등이 축전을 남겼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스웨덴 스톡홀름 에릭슨 스튜디오에서 ‘서머너즈워 천공의 섬’과 ‘리그오브레전드’ 종목으로 진행된 e스포츠 국가 대항 교류전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e스포츠 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발족하기도 했는데요. 이 같은 국회의원들의 관심만 놓고 보면, 야구, 축구 같은 인기 스포츠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느낌입니다.
이처럼 정치권 인사들이 e스포츠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는 이유는 e스포츠의 주된 시청자 층인 10~30대가 미래의 유권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젊은 층이 대개 정치에 관심이 적다 보니 선거 참여율이 낮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선거일이 휴일이기에 투표 대신 놀러간다는 이들도 많은 편이었죠.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20대 투표율이 50% 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젊은 층도 정치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투표율이 높아지다 보니, 이들의 표심을 사로잡을 필요가 생겼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20대의 표심이 결과를 갈랐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치권은 아니지만, e스포츠 분야를 공략해 젊은 층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사례가 실제로 있습니다. 이전에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 종목을 이끌던 시절에 금융권 최초로 스타리그 후원에 나서 주목을 받았던 신한은행입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06년에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통해 e스포츠 후원을 시작했으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간 프로리그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임요환, 홍진호 선수 등이 활약한 스타 프로리그는 현재의 LCK 못지 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젊은 층에 신한은행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스타리그 매니아 적립예금’이라는 금융상품을 선보이면서 많은 화제가 됐습니다. 어린 시절 처음 사용한 주거래 은행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거의 바꾸지 않으니, 과거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던 청년 고객들이 현재 신한은행의 실질적인 주고객층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예전 프로리그 경기들이 다시 화제가 되면서, 신한은행이 또 다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기도 합니다. 신한은행 사례를 참고했는지, 우리은행이 올해까지 5년째 LCK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 롤드컵 4번째 우승이라는 기록을 쓴 T1 덕분에 SK가 누리고 있는 홍보 효과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앞서 e스포츠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아직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e스포츠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국회위원도 많아지고 있고, 이번 롤드컵 경기에서도 유인촌 장관이 ‘e스포츠가 조금 더 국민과 가까워질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e스포츠는 물론, 게임 업계 전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좀더 늘어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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