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KT 위즈의 2023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반가운 얼굴들이 그라운드 위에 섰다. 1994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배터리인 투수 김용수(63)와 포수 김동수(55)가 각각 경기 전 시구자, 시포자로 나선 것이다. 1990년대 LG 신바람 야구의 주역이었던 김용수는 그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김동수는 우승을 확정 짓는 마지막 공을 받았다.
레전드 선배들의 기운이 LG에 조금은 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LG는 그날 1차전에서 패했지만 이후 열린 2~5차전을 모두 잡아내며 4승 1패로 29년 만에 다시 한국시리즈 정상을 탈환했다. 김동수는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LG의 마지막 우승 포수로 남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LG 후배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LG가 오랜 암흑기를 거쳐 꾸준히 젊은 선수들을 키우고, 또 좋은 선수들을 모아온 게 현재의 LG가 될 수 있었던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1990년 LG에 입단한 김동수는 2009년 히어로즈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포수로 20시즌을 뛰었다. LG, 삼성, SK, 현대, 히어로즈 등 팀도 여러 차례 옮기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4차례나 차지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이 기억하는 건 여전히 ‘LG의 김동수’다. 입단 첫해인 1990년 데뷔와 함께 주전으로 도약한 그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공수겸장 포수였다. 안정적인 투수 리드와 함께 방망이도 잘 쳤다. 그해 타율 0.290(352타수 102안타)에 13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가장 결정적인 홈런은 그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그는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이 결린 OB(현 두산)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1-0 승리를 이끌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그해 그는 포수 출신 최초로 신인왕에 오름과 동시에 생애 첫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김동수는 선수 시절 통산 7개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1994년의 골든글러브는 더욱 특별하다. 그해 그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방위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군인 신분이지만 집에서 출퇴근을 했던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낮에는 부대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프로야구 선수로 뛰는 이중생활을 했다. 부대가 있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일과를 끝내자마자 경기가 열리는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까지 달려가야 했다. 지방에서 열리는 중요한 경기에는 휴가를 내고 출전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95경기를 뛰며 타율 0.288(316타수 91안타), 6홈런, 42타점을 올렸다. 2루타는 20개나 때려 그 부문 10위에 올랐다. 그는 “대부분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경기를 뛰었다. 의욕은 넘치는데 몸이 안 되어 있으니 여기저기 부상을 많이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해 LG는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도 못하고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투표에서 2위 선수를 딱 2표 차로 제쳤다. 한국시리즈 우승 프리미엄도 영향을 끼쳤다. ‘방위병의 꽃’이 된 그는 개인적으로 골든글러브를 하나 더 만들었다. 평소 선수들이 쓰는 글러브를 사서 곱게 금빛을 입혔다. 자신의 소속 부대원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그는 “방위병들이 대외 활동을 하는 데는 부대원 모두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부대장부터 고참, 후배들이 모두 야구팬들이라 한뜻으로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 직접 골든글러브를 만들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며 웃었다.
포수 최초로 20시즌 동안 현역으로 뛰었던 그는 은퇴 후 넥센과 LG 등에서 코치로 일했다. 2018년에는 LG의 스카우트 총괄을 맡은 적도 있다. 지난해부터는 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은 SBS스포츠에서 야구 해설위원으로 팬들과 만났다. 작년부터는 한국체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전공은 스포츠AI빅테이터다. 그는 “한양대를 졸업한 지 30년이 넘어 다시 학교에 와 보니 처음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헷갈리기도 했다”며 “수업도 착실히 듣고 과제도 함께 하다 보니 주변 원우들이 많이 도와준다”고 했다. 그는 “발표 수업도 있어 난생 처음 파워포인트(PPT)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처음엔 막막했는데 막상 해보니 무척 재미있더라. 야구공에 대한 발표를 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고 했다. 이제 논문을 남겨두고 있는 그는 포수에 관한 데이터를 모아 논물을 써 볼 계획이다.
올해 만들어진 KBO 재능기부위원회 소속으로 지방을 돌며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KBO 전력강화 위원 자격으로 국가대표 선수 선발에도 관여했다. 9월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이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는 배터리 코치로 다녀왔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모교인 서울고 감독으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초중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재능 기부 활동을 하면서 보니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며 “아마야구 선수들에게 프로에서 했던 걸 잘 접목해보고픈 생각이 컸다. 다녀보니 좋은 재목들이 많았다. 실력은 물론 좋은 인성까지 갖춘 선수들로 잘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왕성한 활동 틈틈이 그는 자전거 타기와 가벼운 산행, 걷기 등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선수 때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지만 요즘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가벼운 운동을 주로 하는 편이다. 그는 “원래부터 몸을 꾸준히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재능기부를 가거나 하면 주변의 걷기 명소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했다. 작년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다. 그는 “북한산 둘레길이 21코스가 있는데 한 번 갈 때마다 두세 코스씩 걸었다”며 “이제 딱 세 코스만 남겨두고 있다. 한두 번만 더 가면 완주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넥센 선수 시절 그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집에서 야구장이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곤 했다. 요즘에는 경기 팔당이나 양수리까지 라이딩을 하곤 한다. 그는 “아침에 집에서 출발해 양수리에 도착한 뒤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컵라면 하나 먹고 다시 돌아온다”며 “예전에는 어떻게든 속도를 내려고 했다면 지금은 강도 보고, 산도 바라보면서 천천히 탄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잠시 내려 한참 동안 경치를 즐기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자동차를 타기보다는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강남구 쪽에서 약속이 있을 때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새로운 출근지가 된 서울고까지도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그는 “자동차를 타면 길이 막혀 30~40분씩 걸리는 길이 지하철로는 20분 안에 도착한다”며 “목적지보다 한두 정거장 미리 내려 걷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부터 그는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멀리했다. 흡연은 하지 않았고, 술도 맥주 몇 잔을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식사량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먹지만 매 끼니 마다 밥 한 공기 정도만 먹는다. 그는 “술이든 밥이든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게 좋은 것 같다”며 “젊을 때는 운동도 과격하게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정도의 강도로 꾸준히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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