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제주시 5·16도로변에 있는 마방목지. 쌀쌀한 늦가을 날씨 속에서 한라산 노루 대여섯마리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 뛰놀았다. 축산진흥원은 4월부터 제주마를 마방목지에 옮겨 관리하다 11월 겨울이 다가오면 진흥원 내로 옮긴다.
제주마가 떠난 자리를 노루들이 대신한 것이다.
노루들은 홀로 또는 2~3마리가 무리를 지어 주변을 쉴 새 없이 살피며 풀을 먹기 바빴다. 간간이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내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라산 노루들은 겨울철이 다가오면 먹이를 따라 점차 아래로 내려온다. 이동이 잦은 시기이다보니 로드킬도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야생들개와 서식공간 감소, 꽃사슴과의 경쟁 이외에도 로드킬을 노루의 주된 천적으로 꼽는다.
현재 제주에 서식하는 노루수는 지난해 4300여마리보다 500마리(11.6%) 증가한 약 4800마리다.
2019년 7월 유해야생동물에서 해제해 총기 포획을 금지한 지 4년째지만 여전히 적정 개체수 6100마리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세계유산본부가 2018년 발표한 ‘제주노루 행동생태관리’에 따르면 한라산국립공원 지역 1100도로와 516도로 등에서 2010년부터 2018년 9월까지 로드킬로 희생된 노루는 2796마리다.
2010년부터 2012년에는 매년 평균 140마리였다가 2013년에는 330여마리로 증가한 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50여마리로 증가했다.
이후에도 한해 수백마리의 노루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루 등 야생동물 로드킬 처리를 제주도에 위탁받은 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도지부의 처리건수는 2019년 469마리, 2020년 581마리, 2021년 841마리, 2022년 9월 기준 878마리로 매해 증가 추세다. 특히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는 45%나 증가했다.
한편 1980년대 후반 멸종위기에 놓였던 한라산 노루는 보호운동 등에 힘입어 2009년 1만2800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이후 노루가 농작물을 먹어치우거나 훼손해 농가의 불만이 터져나오자 제주도는 2013년 7월부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총기류 등으로 잡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노루 개체수는 2018년 3900마리까지 감소했고 유해야생동물에서 해제된 뒤에도 2019년 4400마리, 2020년 3500마리, 2021년 4200마리, 2022년 4300마리 등 적정 개체수를 밑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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