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조직배양 시스템으로 농업혁신 꾀하는 ‘파이토리서치’
누구나 조직배양할 수 있게 세균 감염 억제 기술과 1930종 배지 제조법 공급
“버려지는 농산물 줄어들고, 농가에서 직접 종묘 개발 가능”
식물 ‘덕후’였던 20대들의 창업
지금까지 없던 식물 조직배양 ‘대중화 기술’을 보유한 파이토리서치. 대표이사는 전북 전주시 한국농수산대 화훼학과 김연준 씨(24)다. 사과나 배, 귤, 복숭아, 포도 등 과수의 묘목을 조직배양으로 만들면 맛있고 잘생긴 과일이 나온다. 조직배양으로 바이러스 감염이 거의 없는 ‘무병화 묘목’을 만들 수 있어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과수에서 나온 과일이나 작물은 당도가 낮고 모양이 나빠 상품성이 떨어진다. 병해를 입을 가능성도 높아 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이런 식의 피해는 매년 조 단위에 달한다. 이런 비효율을 막겠다며 파이토리서치가 올해 7월 만들어졌다.
조직배양은 식물의 생장점을 떼어내 연구실에서 세포 단위에서부터 키우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조직배양을 하려면 대학 연구실 수준의 장비와 시설이 필요했다. 파이토리서치는 조직배양에 필요한 세균 감염 억제 기술과 1930종에 달하는 품종의 배양에 필요한 배지(medium) 제조법을 갖추고 경제적으로 조직배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23일 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컨테이너로 만든 배양실을 내년부터 농가에 보급해 누구나 손쉽게 조직배양을 통해 무병화 묘목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 바이러스 등 병해 피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과수라고 못 먹는 것은 아니지만 표면에 얼룩이 보이거나 모양이 삐뚤어져 있고, 맛도 없다. 농촌진흥청의 2021년 발표에 따르면 국내 주요 과수는 품목별로 29∼65% 감염돼 있다. 사과황화잎반점바이러스, 포도얼룩반점바이러스 등이 대표적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과나무와 포도나무의 생산량은 각각 최대 46%, 68% 줄었고, 생장이 뒤처지거나 이른 시기에 열매가 떨어지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는 과수뿐만 아니라 고구마나 옥수수 등 대부분의 작물과 대마 같은 특용작물, 관상용의 화훼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국내는 조직배양보다는 잎이나 줄기, 뿌리를 잘라 개체를 늘리는 영양번식이 대부분이다. 칼을 이용해 잘라 개체 수를 늘리는 과정에서 공기나 토양에 있는 각종 바이러스가 대를 물려 퍼지게 된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모르지는 않는다. 종자산업법을 개정해 과수 무병화 인증제를 도입하고 무병화 묘목 보급 확대 사업에 나서고 있다. 2030년까지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 등 5대 과수의 무병화 묘목 보급률을 6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2005년부터 무병화 묘목 확대를 추진해 왔지만 보급률은 2021년 1.7%, 2022년 6.6%에 이어 올해 겨우 10%에 도달했다.
김 대표는 “2015년 농식품부 조사 기준 주요 10개 작물의 바이러스 피해액이 1조600억 원이었다”며 “무병화 묘목을 5대 과수를 넘어 전 농업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조직배양 시설의 확대가 필수적이라 보고 창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과수와 화훼가 이미 무병화 묘목으로 길러진다.
● 세균 감염 억제기술과 배지 제조법
국내에서 무병화 묘목은 지금까지 전문시설을 갖춘 곳에서 생산됐다. 농업인이 새로 참여하고 싶어도 전문적인 무균화 기술과 품목 및 품종에 따라 복잡하게 설계되는 배지 제조법을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 대표는 “세균 감염 억제 기술로 컨테이너 같은 ‘거친 환경’에서도 조직배양이 가능토록 해 무균시설 작업대와 배양실을 간편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품목과 품종별로 1930종에 달하는 배지 제조법 방식도 다 공급할 예정이다. 같은 사과라도 조직배양으로 홍로와 부사의 종묘를 최적으로 만들려면 배지의 성분이 달라야 한다.
조직배양을 할 때는 식물의 생장점을 떼어 세포 증식을 한다. 이때 검증을 거친 건강한 모체에서 나온 생장점을 이용하거나 항바이러스제 등을 이용해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이후 어른 주먹 크기의 배양통에 넣어져 수개월 동안 길러진다. 이때는 곰팡이나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 배양통 내부 전체가 썩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무균 관리가 중요하다. 파이토리서치는 미생물의 발생을 억제하는 감염억제제를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김 대표는 “감염억제제 덕분에 조직배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배우게 되는 무균 조작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했다.
배지 제조법은 고교 시절인 6년여 전부터 연구해 왔다. 김 대표는 2017년부터 네이버 카페 ‘식물 조직배양 아카이브’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 취미로 식물 조직배양을 연구한 ‘조직배양 덕후’였다.
● 고등학생 때의 취미와 노력
김 대표는 수원농생명과학고를 나와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한국농수산대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농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교 때 처음 조직배양을 접하고 시골의 할아버지 댁 창고에 조직배양실을 만들어 연구했다. 여기서 얻은 데이터로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며 관심이 가는 식물 하나씩을 정해 조직배양을 잘할 수 있는 조건들을 알아냈다. 그는 이를 “식물을 하나씩 정복하는 재미가 있다”고 표현했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런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들과도 교류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은 회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박주한 수석연구원(25·건국대 원예학과 졸업 예정)이다. 박 연구원 역시 어린 시절부터 조직배양실을 만들어서 독자적으로 연구를 해 온 조직배양 덕후다. 세균감염억제제는 박 연구원이 만들어 김 대표와 공유했다. 이에 김 대표가 기술 기반의 창업을 제안했고, 박 연구원은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 유학을 포기하고 창업 대열에 합류했다.
김 대표는 고교 졸업 즈음에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던 ‘무늬 바나나’의 조직배양에 성공해 3000만 원가량을 벌기도 했다. 그는 “무늬 바나나는 네덜란드 회사에서 주문이 들어와서 수천 주를 비행기로 실어 수출까지 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식물 재테크’가 유행했다. 그때 유명해졌던 관엽식물인 ‘몬스테라 알보’도 조직배양을 해냈다.
김 대표는 대학에 들어와서도 조직배양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조직배양을 하면 식물의 바이러스 감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농약이나 비료를 덜 쓰고도 고품질의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데서 새로운 길을 본 것이다.
파이토리서치는 내년 1분기에 농업법인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각종 창업경진대회에서 받은 자금 등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기술은 다 확보한 상태에서 내년 상반기면 컨테이너 보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협업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컨테이너 조직배양실이 전국에 보급되면 농업인이 직접 바이러스 없는 모종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자기만의 품종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향후에는 농가의 컨테이너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품종 개발을 고도화하고 의약품이나 그린바이오산업의 원료가 되는 식물 소재를 생산하는 차세대 식물공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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