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생산량은 80%가 늘어났지만 온실가스(GHG) 배출량은 오히려 20% 줄어든 업종이 있다. 미국 양돈 산업 얘기다. 탄소중립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시대에서 귀를 쫑긋하게 하는 놀라운 결과다. 생산이 늘면 탄소배출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 상식이다. 예컨대 의류 공장에서 옷 생산량이 증가하면 기계를 돌리는 에너지 비용·운반 비용 등 탄소배출이 많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미국 양돈 산업에서 돼지고기 생산은 증가했지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이 감소한 비결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업계가 효율적인 양돈 기술의 개발에 힘쓴 결과다.
양돈 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은 사료·분뇨 발생과 관련이 있다. 돼지고기 생산에 따른 탄소발자국의 50∼60%가 사료작물로 키운 농작물에 기인한다. 사료를 많이 만들수록 탄소배출은 늘게 마련이란 의미다. 미국 양돈업계는 사료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면서 돼지 배설물을 함께 줄여 나갔다. 돼지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더 효율적인 사료 개발, 양돈 인력 감소, 높은 기계화 수준, 낮은 사육 밀도 등이 온실가스 발생을 줄였다.
둘째, 자연순환 농법을 채택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한 덕분이다. 미국의 돼지는 주로 중서부 ‘콘벨트’에서 양돈농가가 직접 키운 옥수수를 주사료로 한다. 여기서 콘벨트란 미국의 중서부에 걸쳐 형성된 비옥한 옥수수 지대를 의미하는데 사료의 유통 과정을 최소화해 탄소발자국을 절감하는 큰 비결 중 하나다. 무엇보다 영양 높은 옥수수를 먹고 자란 돼지의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고 이 토양에서 생산된 곡물을 돼지에게 사료로 급여함으로써 자급자족 형태의 자연순환 농법을 완성했다.
셋째, 최초로 HACCP의 원칙에 입각한 생산·유통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도움이 됐다. 과도하게 밀집된 성장 환경 속에서 대규모로 사육되는 돼지의 경우 질병으로부터 취약해져 육류 생산에 있어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 양돈농가는 체계적인 돼지고기 품질보장(PQA Plus 5.0) 프로그램과 운송 품질 보장 프로그램(TQA)을 통해 스스로 농장 환경을 개선하고 화학물질의 잔류를 방지할 수 있었다. 이로써 불필요한 이산화탄소 배출은 줄이고 소비자가 믿을 수 있는 안전하고 우수한 품질의 돼지 생산으로 이어졌다.
넷째, 탄소발자국 절감 노력을 넘어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기 위해 힘쓴 생산 농가들이 있어 가능했다. 미국의 돼지 농가들은 기존 관행에 안주하기보다 더욱 환경친화적인 농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덮개 처리 저수조와 같은 기존의 거름 관리 방법에서 더 나아가 ‘생물 침지기’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이로써 농장에서 생성된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에 필요한 열과 전기를 공급하는 비료 및 바이오 가스를 생산할 수 있었다.
1959년에서 2009년까지 50년간 미국 양돈 산업은 여러 기록을 세웠다. 이 기간에 돼지 출하량은 29% 늘었지만 어미 돼지 마릿수는 39% 줄었다. 연간 지육 생산량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육 중량당 사료 효율은 33%나 개선됐다. 이는 사료를 적게 먹이고도 돼지고기를 더 많이 얻었다는 의미다.
2021년에 나온 미국 ‘농장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과 2015년 새 미국의 양돈 산업에서 토지·물·에너지 사용량이 각각 75%·25%·7% 감소했다. 탄소배출량은 8% 줄었다.
미국의 양돈업계는 지속가능한 양돈 산업을 위해 식품안전, 동물복지, 지원교육, 공중보건, 환경,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6대 윤리 원칙을 설정했다. 이는 UN의 지속가능개발 목표(UN SDGs)와 결을 같이한다. 2021년 말 미국 양돈업계가 세운 지속가능성 목표와 지표엔 UN SDGs 지표 17가지 중 15가지가 포함돼 있다.
미국의 양돈 가구(약 6만 호 이상)가 현재 진행 중인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돈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양돈 종사자가 온실가스 배출 감소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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